현대 오일뱅크 K리그 2011 15라운드가 열린 25일,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K리그는 멈춤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경기 열기는 더욱 뜨거웠습니다. 전국 7개 경기장에서 모두 22골이 터져 지난 14라운드 29골 골폭죽 기세를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빗속에서도 모든 경기에서 골이 나왔고, 그에 맞게 명승부다운 경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빗물이 온 몸을 적셔도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선수들의 투혼은 그야말로 대단하기만 했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이른바 '경인 더비'로 불리는 FC 서울-인천 유나이티드 경기가 열렸습니다. 아직 완성된 더비로 부르기는 어렵지만 지리적인 특수성, 상대 팀 감독과 선수 간의 사제지간 대결 등 조건들을 갖추면서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이 '경인 더비'는 많은 팬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습니다. 14라운드에서 강원 FC에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FC 서울, 최근 리그 6경기 연속 무패를 달렸던 인천 유나이티드, 두 팀 가운데 어느 팀이 상승세를 이어갈지, 전반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겨졌던 경기였습니다.

▲ 서울-인천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1층이 거의 꽉 찬 것이 눈에 띈다. (사진-김지한)
하지만 많은 비 때문에 과연 얼마나 많은 관중이 찾을지 걱정됐습니다. 기존 FC 서울이 구단 차원에서 준비했던 이벤트도 취소되고, 그 때문에 경기장 주변은 평소 경기 때보다 다소 한산해 보였습니다. 경기 시작 30분 전까지도 많은 관중이 들어오지 않아 더욱 우려는 커졌습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갑자기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한 관중은 서서히 채워지기 시작했고, 역시나 1만 5천여 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오며 뜨거운 열기를 발산해냈습니다. 엄청난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K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서울 팬들의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물론 원정을 와서 엄청난 함성을 뿜어낸 인천 서포터, 팬들의 열정도 대단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층에 있는 관중들은 비를 맞으면서 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90분 내내 자리를 뜨지 않고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뜬 관중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6월 날씨 치고는 제법 서늘했고, 여기에 비까지 내려 경기를 보기에는 악조건이었음에도 팬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끝까지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 전반 37분, 인천 한교원이 골을 넣고 전반 40분, 서울 데얀이 동점골을 넣으며 1-1 균형을 이뤘다. 경기가 점점 치열해지자 FC 서울 서포터 가운데 일부는 윗통을 벗고 응원하기도 했다. (사진-김지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서울, 인천 선수들은 90분 내내 활발한 경기력과 치열한 혈전을 벌이며 수준 높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인천이 먼저 한 골을 넣고, 서울이 곧바로 한 골을 따라붙었을 때는 그야말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결국 그 이상 추가골이 나오지 않고 1-1로 끝났지만 선수들은 굵은 빗줄기 속에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듯 치열한 경기를 펼치며 경기를 보는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팬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고, 경기가 끝나서야 하나둘씩 자리를 떴습니다.

감독대행 데뷔전에서 흠뻑 비를 맞으며 90분 경기를 지휘하고 승리까지 이끌어 강한 인상을 남겼던 최용수 FC 서울 감독대행은 이날도 90분 내내 양복을 입고도 비를 맞으며 선수들을 독려했습니다. 특히 최 대행은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1만 5천여 명의 관중이 온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더 잘 하고 싶어 했고 마지막까지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여줬습니다.

▲ 90분 내내 비를 맞으며 경기를 지켜본 최용수 감독대행. 그러나 1-1 무승부로 끝난 뒤 아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진-김지한)
이는 허정무 인천 감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의 상승세를 이어 서울을 꺾고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만큼 평소보다 과한 액션을 취하면서 선수들을 지휘했습니다. 최 대행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터치라인 쪽으로 나와 비를 맞으며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감독 간 장외 대결도 흥미로웠지만 경기는 그대로 1-1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최 대행은 한동안 비를 맞으면서 그라운드 쪽을 오랫동안 응시하기도 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최 대행은 "팬들에게 승리해서 즐거움을 안겨주고 싶었는데 실패했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경기는 비겼지만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를 펼친 양 팀 선수들에게 1만 5천여 관중들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장맛비 속에서도 선수와 팬은 그렇게 함께 호흡하고 있었고, 그렇게 K리그는 서서히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듯 했습니다. 이 경기 외에도 다른 6개 경기장에서는 모두 15404명의 관중이 찾아 평균 2천여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숫자가 아니라 해도 굵은 빗속에서 직접 경기를 보기 위해, K리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찾은 관중들의 모습에서 K리그가 발전을 위한 씨앗을 서서히 싹 틔우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어떤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힘을 내고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던 서울-인천 경기, 그리고 K리그 15라운드였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