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수원 삼성과 대구 FC의 현대 오일뱅크 K리그 2011 14라운드 대결이 있었던 수원월드컵경기장에 낯익은 인물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바로 수원 삼성 창단부터 8년 동안 팀을 이끌면서 정상급 팀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김호 전(前) 감독이었습니다.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유소년 제자들을 기르며 소박한 마지막 꿈을 만들어 가던 그가 모처럼 수원 삼성의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은 아주 반가워했습니다.

▲ 김호 수원 삼성 전 감독 ⓒ연합뉴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경기를 보러 간 곳이 다름 아닌 서포터석이었던 것입니다. 통상 감독이나 선수가 경기를 관전한다면 본부석이나 팀에서 마련한 지정된 장소에서 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골대 뒤 서포터석에서 경기를 보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감독, 선수들에게는 많이 생소할 수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것도 응원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서포터석을 고집했고, 90분 동안 내내 서서 경기를 지켜보며 친정팀의 힘을 실어주려 했습니다. 최근 부진에 빠졌던 수원 삼성을 응원하고 언제나 지지한다는 마음을 몸으로 직접 보여준 것입니다. 응원 구호를 외치고 내내 서서 보는 것이 일흔을 바라보는 노년 신사에게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김 감독은 자신과 팬들 사이에 했던 약속을 지키며 '90분 풀타임' 응원을 했습니다. 그 마음에 수원 선수들도 자극받고 힘이 났는지 모처럼 골폭죽을 터트리며 4-1 대승을 거두고 8경기 만에 승점 3점을 챙겼습니다.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걸 모두 보여주며 팀 사기도 높이고, 팬들과 모처럼 직접 교감한 모습을 보여준 김호 감독의 의미 있는 행동은 매우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김 감독이 그만큼 수원 삼성에서 해낸 일들이 많았기에 더 주목을 받았던 점도 있지만 현역 감독이 아님에도 지금까지 자신을 지지해준 팬들에게 제대로 서비스를 하고, 그것도 팀 마케팅의 일환이 아닌 자발적인 생각에 의해 서포터 응원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습니다.

수원 삼성을 응원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더 나아가 K리그를 응원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 K리그에 자신의 서포터 응원을 통해 조금이나마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입니다. 한국 축구가 살려면 클럽 축구, 프로 축구가 살아야 한다는 지론을 늘 갖고 있던 만큼 최근의 시기를 넘고 더 크게 성장하는 K리그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서포터 응원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러면서 보다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러면서 축구장에서도 언제든 즐기고 놀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습니다.

평소 소신 있는 발언을 하며 한국 축구에 좋은 말을 많이 했던 김 감독은 어쨌든 자신과 팬들과의 약속, 나아가 K리그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든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당연히 이를 지켜본 팬들이나 선수, 감독, 그리고 구단 관계자들은 그 응원에서 우러나온 신선함과 더불어 많은 자극을 받았을 것입니다. 팬과의 교감이 만들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진심이 더 해진다는 것을 수원 삼성 뿐 아니라 K리그 16개 구단에도 일종의 메시지를 던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역 감독 시절, 김호 감독은 기존 감독들이 하지 않은 축구를 시도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짧은 패스를 위주로 한 콤팩트 축구, 기술 좋은 선수를 발굴해 키워 최고의 테크니션을 만든 그의 노력은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 덕에 미국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새롭게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살렸고, 수원 삼성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현역 은퇴 후에도 김 감독은 유소년 선수를 육성하고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해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유소년 클럽팀을 운영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단 한 경기이기는 했지만 모처럼 찾은 K리그에서 매우 의미 있는 행동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하나하나가 한국 축구에 힘이 되고, 의미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김 감독의 이번 응원이 모든 걸 변화시킨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안에 내재돼 있는 의미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면이 많아 주목할 만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한국 축구 발전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김 감독의 '서포터 응원'은 어쨌든 올 시즌 K리그 뿐 아니라 한국 축구에서도 깊이 기억할 만한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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