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흥국씨가 삭발을 했다. 그는 1년 넘게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던 서울 여의도 MBC 정문 앞에서 결국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훔쳤다.

MBC는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MBC 라디오 <두시만세>의 공동 진행자 김흥국씨가 일신상의 이유로 프로그램을 하차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김흥국씨의 한나라당 선거 유세 관련 의혹을 제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당시 MBC노조는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최종 책임자인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의 책임을 요구했지만, MBC는 ‘김흥국 하차’를 통해 논란을 매듭지으려 했다.

하지만 MBC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갑작스럽게 라디오에서 하차하게 된 김흥국씨가 직접 거리에서 하차의 부당함을 알리고 나섰기 때문이다.

▲ 가수 김흥국씨가 삭발에 앞서 성명서를 읽고 있다. ⓒ송선영
김흥국씨는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내가 왜 라디오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알리고자 한다”며 13일부터 17일까지 MBC 정문 앞에서 약 3시간 동안 1인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하차 심경을 밝혔고, 현재 MBC 라디오를 둘러싼 문제점의 원인으로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을 지목했다.

김흥국씨의 1인 시위 마지막 날인 17일 오전, MBC 정문 앞에는 수십 명의 취재진이 자리를 잡았다. 취재진 뿐 아니라 김씨를 지지하는 대한가수노동조합 등 관계자들도 함께 자리를 지키며 MBC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었다.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도 자리를 찾았다. 정 의원은 자신과 연루돼 라디오에서 하차하게 된 김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며 “어떻게든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낮 12시, 삭발에 앞서 김흥국씨가 굳은 표정으로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퇴출 통보를 받았다. 청취자들에게 사죄하고, 일방적인 진행자 퇴출을 방지하기 위해 나섰다. MBC는 친정같은 방송사다. 열심히 방송을 진행했다. 친정을 떠나는 마음이 너무 무겁다. 청취자들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삭발을 한다”

그는 정몽준 의원과의 친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방송에서 정치적 견해를 말한 적이 없고, 방송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적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일신상의 이유로 하차한다’는 MBC의 일방적인 퇴출 통보는 너무 하다”고 덧붙였다.

▲ 김흥국씨의 삭발식이 진행되고 있다. ⓒ송선영
성명서를 읽은 뒤, 김흥국씨의 삭발식이 시작됐다. 김씨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께 라디오를 진행하던 코미디언 김경씩씨도 먼발치에서 김씨의 삭발을 지켜봤다. 삭발 장면을 지켜보던 김경식씨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삭발이 진행되는 동안, 김흥국씨와 함께 손팻말 시위를 진행하던 이들은 “MBC는 각성하라” “이우용은 물러가라”등을 외치며 MBC를 향해 책임을 촉구했다.

▲ 삭발을 한 김흥국씨가 눈물을 보이고 있다. ⓒ송선영
MBC 라디오를 둘러싼 불협화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쩌면 지난 2월, 구성원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본부장에 이우용 본부장이 내정되었을 때부터 갈등은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3월,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이 임명되자마자 MBC 내부에서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을 손볼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라 나왔다. 이에 구성원들은 라디오본부 평PD협의회를 구성, 본부장을 향해 명확한 개편 입장을 밝히고, 밀실에서 행해지는 개편 논의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결국 지난 4월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코미디언 김미화씨는 ‘자진 하차’라는 방식으로 진행자에서 물러났다. 이후, 김미화씨는 MBC노조와 인터뷰, 트위터 등을 통해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의 행태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후 지난 5월,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11년 넘게 뉴스브리핑을 전하던 시사평론가 김종배씨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차했다. MBC는 김종배씨가 <프레시안>에 기고하고 있다는 점, 과거 조선일보와의 소송에 연루돼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사실상 김종배씨를 ‘경질’했다.

이 밖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프레시안> 기자 수를 문제 삼고, 상담 프로그램에서 신공항, 세종시 등 시사 관련 내용을 말하지 말라고 하는 등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MBC 라디오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일, MBC는 김흥국씨에 대해 ‘일신상의 이유’를 내세워 갑작스럽게 하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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