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림 1>은 자기 자신을 기니피그로 삼아 업적을 이룬 것에 다름 아닙니다. 웨스 크레이븐과 케빈 윌리암슨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던 카데바를 모아 조각조각 결합시킨 프랑켄쉬타인이었습니다. 그냥 기발한 게 아니라 적지 않은 실험정신이 가미됐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의 실험은 2편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졌고, 케빈 윌리암슨이 떠난 3편에선 에런 크루거가 빈 자리를 메웠습니다. 앞선 두 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인내할 만했던 3편 이후로 장장 11년이 흐른 올해, 오리지널의 파트너였던 웨스 크레이븐과 케빈 윌리암슨이 다시 뭉쳐 <스크림 4G>로 돌아왔습니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스크림 4G> 속의 세상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고스트 페이스에게 쫓기던 시드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습니다. 어리바리했던 신참 보안관 듀이는 이제 어엿한 베테랑이고, 야심찬 기자였던 게일은 듀이와 결혼해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우스보로에서 오랜만에 재회하면서 사건은 다시 시작됩니다. 시드니가 팬 싸인회를 위해 고향에 들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스트 페이스의 살인이 벌어진 것입니다. 'Angle of Death'라는 별명처럼 또 한 번 시드니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꼴을 지켜보게 됩니다.
<스크림 4G>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웹캠을 통한 실시간 방송, 블로그 등의 현 세태를 반영하는 소재가 여럿 등장합니다. 이것들의 쓰임새가 얼마나 유용했는가에 대한 평가는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게 한 가지가 있는데, 결말의 스포일러로 직결되는 부분이라 언급을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차마 실체는 밝히지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크림 4G>가 그려놓은 마지막 그림이 꽤 맘에 듭니다. 얼마 전에 '약수동 여신'이라고 세간에 오르내린 이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고 보면 케빈 윌리암슨이 세태를 꿰뚫어보고 영화에 도입하는 능력은 탁월한 것도 같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스크림 1>에서 파격적으로 선보였던 드류 배리모어의 그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크리스틴 벨과 안나 파킨이 잠시 등장하는 <스크림 4G>의 오프닝도 꽤 기발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화를 희생양 삼아서 시리즈의 전매특허를 거침없이 선보입니다. <쏘우 4>를 언급하며 씹어대고 자신이 모델인 'Stab' 시리즈의 오프닝도 연이어 보여주면서 조롱을 일삼습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자기반성이나 변명 혹은 종용이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누워서 침 뱉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됐든 간에 시리즈의 특성은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건, <스크림 4G>가 이번에 타겟으로 삼은 것은 당연하게도(?) 리메이크와 리부트입니다. 이 영화는 시리즈를 통틀어 자기복제를 통한 패러디- 오마주라고 해야 하나? - 의 절정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즉 <스크림 1>을 노골적으로 해체하여 재조립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만 보면 나쁘진 않습니다만, 눈에 익은 장면이 하나둘씩 펼쳐지면 감탄보다는 기시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재탕이라는 느낌이죠. 결국 결말부에 다다라 "원작을 망치지 마라"는 대사가 들려오면 웨스 크레이븐과 케빈 윌리암슨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당신들은 원작을 망치지 않았다고 자부하느냐고.
북미에서 흥행에 실패한 것을 봐도 아마 <스크림 4G>가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보고 나서 깨달았는데, 사실 이건 그 누가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더라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한계입니다. 스크림 시리즈의 핵심을 이미 관객에게 철저히 간파당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참신함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곤 제 살을 깎아 먹는 것밖에 남아있질 않은데, 그마저도 이미 다 먹어버린 이 시리즈에는 돌파구가 없어 보입니다. 차라리 'Stab'처럼 또 다른 영화를 만들어서 스크림 시리즈를 까는 것이 더 잘 먹힐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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