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무패 8연승의 기아를 맞아 초반 터진 타선에 힘입어 LG가 승리하며 2위로 복귀, 선두 SK에 승차 없이 육박했습니다.

이번 경기의 수훈은 이택근 - 박경수로 연결되는 테이블 세터입니다. 이택근은 2회초 무사 2, 3루의 절호의 기회가 자칫 무득점으로 귀결될 수 있었던 2사 만루에서 3타점 싹쓸이 2루타를 터뜨렸고, 박경수는 1회초 솔로 홈런과 2회초 이택근을 불러들이는 적시타 등 2타점으로 모처럼 활약했습니다. 부동의 1번 타자였던 이대형의 부상과 이탈 이후 LG의 테이블 세터는 이택근, 양영동, 박경수, 서동욱 등 다양한 선수들이 기용되었지만 꾸준히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해 붙박이 3번 타자 이병규가 고타율에도 불구하고 많은 타점을 올리지 못했는데 오늘만큼은 이택근 - 박경수의 테이블 세터가 출루가 아닌 타점으로 팀에 기여했습니다.

▲ 2회초 2사 2루 상황. LG 박경수가 적시타를 때린 뒤 코치와 기뻐하고 있다(좌) 2회초 2사 만루 상황. LG 이택근이 3타점 2루타를 치고 있다(우) ⓒ연합뉴스
2회초 이택근의 2루타가 터지기 전 무사 2, 3루 상황은 복기할 여지가 있습니다. 선두 타자 정성훈의 타구에 대한 신종길의 실책성 수비에서 비롯된 기회였기에 반드시 파고들어 역전을 노렸어야 했지만 무사 2, 3루에서 정의윤과 박병호는 모두 잡아당기는 타격으로 각각 유격수 땅볼과 3루 땅볼로 3루 주자를 불러들이지 못했습니다. 무사 혹은 1사에 3루에 주자가 있는 태그 아웃 상황에서는 내야 땅볼이 유격수나 3루수로 향할 경우 3루 주자는 홈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들어오더라도 횡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유격수 혹은 3루수의 송구와 3루 주자를 동일 선상에 놓고 포수가 수비를 하기에, 1루수나 2루수 쪽 땅볼 타구로 인한 홈 송구보다 상대적으로 3루 주자를 아웃시키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깨가 강한 외야수를 좌익수보다 우익수로 기용하는 것 역시 3루로부터 홈으로 파고드는 주자를 잡기 위한 송구를 포수가 처리할 때 좌익수의 송구가 우익수의 송구보다 처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는 레너드 코페트의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 역전시키는 1점이 절실한 동점 상황에서 잡아당기는 타격으로 3루 주자를 불러들이지 못한 정의윤과 박병호의 타격은 아쉽습니다.

반대로 정의윤과 박병호의 범타 이후 침착하게 트레비스로부터 스트레이트 볼넷을 골라 기회를 이택근에게 연결시킨 김태완의 선구안은 훌륭했습니다. 이어 이택근이 2루타를 터뜨린 순간이 상대 투수의 손으로부터 공이 출발한 직후에 모든 주자들이 스타트하는 2사 풀 카운트 후로 덕분에 1루 주자 김태완까지 여유 있게 득점한 것은 승운이 LG로 따랐음을 의미합니다.

만일 2회초 무득점으로 이닝이 종료되었다면 트레비스의 호투로 반전되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리즈가 2회말부터 4회말까지 무실점한다는 보장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연승 중인 기아 타선이 9회말을 빅 이닝으로 만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2회초 2사 후 대량 득점은 그만큼 결정적이었습니다. 1회말 폭투까지 범하며 흔들렸지만 1사 2, 3루에서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껄끄러운 상대인 기아에 2연승을 챙긴 리즈도 나름대로 제몫을 했습니다.

▲ 세이브 올린 임찬규 ⓒ연합뉴스
6월 14일 잠실 한화전에서 보크 오심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지만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임찬규가 1점차로 추격당하는 최희섭의 만루 홈런이 터진 9회말 2사 후 등판해 김상현을 직구로 윽박질러 스탠딩 삼진으로 씩씩하게 세이브를 챙겼습니다. 김선규가 강판되고 정의윤이 부상으로 병원에 후송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임찬규가 김상현을 출루시키기나 장타를 허용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지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졸 신인에게 마무리의 중책을 부여하는 것이 가혹하며 장기적으로 선발로 전환하는 것이 선수 생명에도 바람직하지만 현재 마무리가 마땅치 않은 LG의 사정상 임찬규가 흔들리지 않고 페넌트 레이스 종료와 포스트 시즌까지 마무리 투수로 자리를 잡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최선입니다. 임찬규의 가장 큰 장점은 고졸 신인답지 않은 두둑한 배짱입니다. KBO와 야구판 전체를 뒤흔든 일대 사건 이후 초미의 관심이 쏠린 첫 등판에서 임찬규가 최대 장점인 두둑한 배짱을 잃지 않아 다행입니다.

벤치의 계투진 운용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7회말 구원 등판한 김선규는 2이닝 연속 삼자 범퇴로 호투했으나 9회말 최희섭에게 만루 홈런을 내주며 7:6 1점차로 턱밑까지 추격당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8회말이 종료되었을 때 김선규의 투구 수는 불펜 투수의 일반적 한계인 30개에 육박하는 28개였으며 이후 9회말에는 사이드암 김선규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좌타자들을 연속으로 상대하다 4실점했습니다. 김선규의 세이브 기록을 챙겨주기 위한 벤치의 배려로 볼 수도 있지만 내일 경기 선발 투수 심수창이 많은 경기를 소화하기 어려우며 어차피 LG가 앞서가면 김선규를 다시 등판시키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8회말 28개의 투구 수를 끝으로 한희나 이동현을 등판시키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9회말 김선규를 아꼈다면 정의윤의 불의의 부상도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선규는 오늘 무려 48개의 투구수를 기록하며 만루 홈런을 얻어맞은 뒤 강판되었기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내일 경기에서 가동시키기 어려워졌으며 정의윤을 부상에 이르게 했다는 부담감에 시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부디 정의윤의 부상이 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늘 경기에는 2009년 6월 14일 잠실 SK전 이래 2년 동안 승리를 따내지 못한 심수창이 선발 등판합니다. 8연승의 기아가 한번 쯤 질 때가 되었고 어제 패했듯이 (9일까지 기아가 두산을 상대로 3연전을 스윕하며 8연승을 이어간 것은 LG로서는 긍정적입니다. 만일 기아가 9일 두산에 패해 연승이 끊겼다면 어제 LG전부터 재정비해 다시 연승을 시작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수창도 한 번 쯤 이길 때가 되었습니다. 상대 선발이 예상되었던 윤석민이 아닌 차정민이라는 점도 심수창의 승리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봉중근의 시즌 아웃과 박현준의 최근 부진 속에서 심수창이 LG 선발진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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