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모 방송국에서 <시티헌터>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 1g의 관심이라도 가지게 된 건 순전히 '하라~구' 때문입니다. 따라서 드라마 자체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눈에 불을 켜고 봤던 만화와 제목이 같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 드라마가 그 만화와 제목만 같은 게 아니라 무려 판권(!)까지 구입하여 제작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충격적이었죠.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체 어디가 츠카사 호조의 <시티헌터>고, 누가 '사에바 료(한국명 우수한)'이란 말인가!!!

애당초 만화 <시티헌터>의 맛을 그대로 공중파 드라마에서 살린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설마 제가 아는 만화의 드라마 버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원작은 스케일도 크지만 야한 장면이 꽤 있습니다. 이것으로 빚어지는 유머가 <시티헌터>만의 독창적인 색깔이자 제가 눈에 불을 켜고 봤던 이유입니다. 당시 친구가 일본 원판을 가지고 있어서 검정색으로 덧칠하지 않은 나신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발그레...) 츠카사 호조의 그림체가 워낙 예뻐서 손이 떨릴 정도였어요. 아, 지금 드라마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니 추억은 잠시 접어두고!

결론을 말하자면 <시티헌터>를 보면 볼수록 딱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리뷰를 쓰고 있는 이 영화, 형민우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프리스트>를 보면서도 똑같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럴 거면 대체 판권은 왜 산 거지?"

예고편으로 관객을 낚는 영화는 있어도 경고를 해주는 그것은 보기 참 힘듭니다. 어떻게 해서든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야 하는 목적을 가진 예고편이 밑천을 다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게 당연한 건데 <프리스트>는 일찌감치 예고편을 통해 적어도 국내 관객에게는 자신의 정체를 다 까발렸습니다. 우리나라의 만화가 할리우드에서 최초로 영화화된다는 것에 기뻐했던 관객들은, 막상 공개된 <프리스트>의 예고편을 보면서 불안과 우려를 넘어선 분노를 토했습니다. 잔존했던 일말의 기대마저도 본편을 보면서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실은 수 년 전에 동생을 통해 만화를 접하자마자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침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오랜 인고의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되었건만, <프리스트>는 원작의 세계관은 물론이고 캐릭터까지 모조리 파괴했습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원작의 유전자 자체가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럴 거면 대체 왜 판권을 산 건지 의문입니다. 원작을 보신 분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보지 못하신 분들도 실망하시긴 매한가지일 겁니다. 다시 말해서 원작과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프리스트>는 평작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프리스트>의 연출을 맡은 이는 시각효과 전문가 출신인 스콧 찰스 스튜어트입니다. 그의 연출력은 이보다 앞서 동일한 주연배우를 기용하고 역시 종교적인 내용을 다룬 <리전>에서 한 차례 검증이 됐습니다. 이 영화가 혹평을 면치 못하면서 <프리스트>에는 사실상 망조가 깃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각오했던 연출은 차치하더라도, <프리스트>를 졸작의 반열에 기꺼이 올릴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각색입니다. 영화화에서 원작의 수정을 통한 각색은 어느 정도 필수불가결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프리스트>는 그 정도가 심해 작품의 정체성이 산산이 부서질 지경입니다.

원작의 매력은 반종교적이고 반영웅적인 주인공 이반입니다. 그로 인해서 심오한 세계관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스스로 저주받은 운명을 짊어진 사내는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기본적으로 영화 <프리스트>에는 이게 없습니다. 할리우드가 숱하게 보인 병폐를 그대로 따르면서 원작의 세계관을 축소하고 내러티브를 단순화시켰습니다. 심지어 영화의 주인공은 숫제 신부 버전의 람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폴 베타니가 가진 고독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이반 역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너진 각색 앞에서 배우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습니다.

주인공이 단순한 영웅 캐릭터로 전락하고, 세계관은 왜곡됐으며, 웨스턴과 호러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하이브리드 장르의 매력도 사라졌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왜 굳이 원작이 내세울 수 있는 변용의 묘미를 버리면서까지 무리를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포장만이라도 원작을 따랐더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작품이 됐을 텐데 말입니다. 그나마 원작의 자취가 엿보이는 것이라면 반종교적인 이야기인데, 이마저도 수박 겉핥기에 그쳤습니다. 민감한 소재일수록 조심히 다뤄야 하건만 <프리스트>의 그것은 액세서리 수준에 불과합니다.

안됐지만 <프리스트>는 B급 영화에 가깝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무게를 실은 액션이 조금 봐줄 만하지만, 퀄리티가 높다고 단언할 정도에는 결코 미치지 못합니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조잡하기 그지없으며,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곤 하지만 6천만 불의 제작비가 낭비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작자인 마이크 데 루카가 말했듯이 엔딩은 속편을 염두에 둔 흔적이 역력하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전 <프리스트>를 더더욱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작을 배제하다시피 한 영화가 이 이상의 무엇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기 힘드니까요.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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