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부작 <내 마음이 들리니>가 절반을 넘어서며 그들의 복수극이 점점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에서 가장 주목해야만 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남궁민이 연기하고 있는 장준하입니다. 복수극의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친부에게 복수를 해야만 하는 운명에 놓은 그의 슬픈 사부곡은 그래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원수인 아버지와 그리움의 대상인 아버지
준하에게는 두 명의 아버지가 존재합니다. 아직은 알지 못하는 친부 최진철과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리움의 대상인 영규가 그들입니다. 누추한 인생이 싫어 집을 박차고 나온 그는 최진철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만 가진 태현숙에 의해 철저하게 길들여진 복수 머신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처음 가질 수 있었던 새엄마. 그 새엄마에게 비로소 마음을 열기 시작하던 그는 최진철에 의해 불이 난 화장품 공장 안에 갇혀 죽어야만 했던 엄마를 기억합니다. 자신에게 줄 시계를 가지러 다시 들어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새엄마.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사랑스러운 존재가 죽어야만 했던 충격은 그에게도 힘겨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복수를 꿈꾸면서도 동주는 현숙의 보호 아래 피 흘리지 않고 복수하기를 요구받습니다. 현숙이 준하를 통해 복수를 주도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준하를 자신처럼 옥죄지 말고 자유롭게 놓아주라고 합니다. 그가 왜 우리의 복수에 나서야 하느냐는 그의 발언과는 달리, 현숙은 철저하게 최진철의 아들을 이용해 가장 지독한 복수만을 꿈꾸고 있을 뿐입니다.
준하가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복수보다는 가족의 정과 사랑을 원했던 그의 순수한 탐욕은 그를 독한 복수극의 주인공이 되라고 요구합니다. 현숙의 무릎에 얼굴에 대고 진짜 엄마와 아들 같은 평범한 삶을 원하지만 현숙은 단 한 번도 마음으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내색할 수는 없지만 불안하고 두렵기만 한 이 행복이 영원히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치임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농담처럼 건넸지만 한 번도 따스하게 자신을 감싸준 적 없이 말로만 사랑을 이야기하는 현숙도 그에게는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워 동주의 집에서 잠깐 잠이 든 영규를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준하는 외면하고 싶었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단 한 번도 자세하게 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겼구나"라며 우는 준하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아픈 영혼이었습니다.
동주가 그토록 복수를 하고 싶은 만큼 준하 역시 복수해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준하. 자신을 위하는 동주에게 자신이 왜 복수를 해야만 하는지 이야기하는 장면은 어떤 결말일지 알 수 있게 합니다.
동주가 할아버지의 호흡기를 빼는 것을 본 것처럼 자신도 새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너의 할아버지도 내 새어머니도 그렇게 최진철에게 숨 막혀 돌아가셨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너희 엄마, 내 어머니 또 잃을 수는 없어"라는 준하의 말에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동주. 그들의 사랑은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요? 지독한 막장 분위기를 내며 공공의 적이 되어가는 진철과 신애의 악행은 회를 거듭할수록 그 강도를 더해갑니다. 자신을 호되게 꾸짖는 순금에게 "정신병원에나 보내버려"라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 진철과 맞으면서도 그에게 매달리는 신애는 철저하게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진철과 신애의 모습은 우리시대 졸부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서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