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은 가장 정직한 종목 가운데 하나라고 말합니다. 흘린 땀, 노력에 따라 실력이 나타나고, 여기서 나온 기록에 따라 승패를 갈리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신체적인 조건도 있겠지만 그만큼 많은 노력, 연습이 뒤따르지 않으면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운 종목이 바로 육상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스포츠', '기초 종목'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육상 종목을 우리 안방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구광역시에서 열릴 예정인 2011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가 꼭 99일 앞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오는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열리는 이번 대회는 우사인 볼트, 옐레나 이신바예바, 류시앙 등 세계적인 육상 스타들이 총출동해 모두 47개 세부 종목에서 기량을 겨루며 달구벌에서 뜨거운 육상 열기를 발산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아직 대회 개막까지 여유 있게 남아 있는데도 경기 예매율이 50%를 넘어설 만큼 대회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요. 뜨거운 여름날,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 가운데 하나인 세계육상선수권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 관심이 이번 D-100이 깨진 것을 계기로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 마당에서 열림에도 뭔가 모를 허전함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세계적인 대회가 열리는 마당에 정작 주최자, 주인공인 우리 육상 선수들의 실력이 크게 두드러게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올해 열린 국내외 육상 대회에서 세계육상선수권 출전 기준 기록을 통과한 한국 선수는 남자 세단뛰기 간판 김덕현, 단 한 명에 불과합니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한국 육상은 기적과 희망을 꿈꾸며 세계육상선수권에서의 선전을 위한 막판 스퍼트를 하고 있습니다.

▲ 오는 8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전초전이 될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주요 선수 기자회견에서 100m 여호수아 등 한국의 간판 선수들이 선전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창던지기 박재명, 100m허들 이연경, 110m허들 박태경, 100m 여호수아. ⓒ연합뉴스
한국 육상이 이번 대회에서 내건 목표는 바로 '10-10' 입니다. 이는 10개 종목에 걸쳐 톱10 이상의 결선 진출자를 내겠다는 것입니다. 당초 세계 대회를 유치하면서 동메달 1개를 따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에 비하면 다소 소박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내건 목표라 메달 목표보다는 좀 더 현실성이 있고 구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회가 3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올 시즌 단 1명밖에 기준 기록을 통과한 선수가 없을 만큼 이 목표마저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육상은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의 기적처럼 철저한 준비와 연습을 통해 또 다른 기적을 꿈꾸고 있습니다. 두 대회 모두 개막 100일 전까지 그 어느 누구도 최고의 성적을 내리라 예상하지 않았지만 꾸준한 준비와 투지, 그리고 홈 이점 등을 살려 종합 4위, 월드컵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한국 육상도 개최국의 자존심을 걸고, 이번 대회를 통해 육상 종목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꽃피운다는 생각으로 대회 개막 직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기대하고 있는 종목은 바로 필드, 마라톤, 경보 종목 등입니다. 그나마 세계적인 격차가 조금은 좁혀져 있다고 판단한 이들 종목에서 한국은 반드시 톱10 이상의 성적을 많이 내서 희망적인 미래를 내다보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땄던 멀리뛰기의 김덕현, 정순옥, 남자 마라톤 간판 지영준 등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육상이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선수들입니다. 그밖에도 남자 창던지기 간판 박재명, 남자 경보 김현섭 등도 톱10 진입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또 남자 마라톤 단체전, 남자 400m 계주 등 단체 종목에서는 내심 메달 획득도 노리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합숙 훈련을 하는 등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육상은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매우 힘든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외국인 코치를 데려오고, 선수가 외국에 나가서 전지훈련을 하기도 했지만 환경 적응, 문화 차이 등으로 잇달아 실패를 맛봤습니다. 무엇보다 기록이 아닌 순위 경쟁에 주안점을 두고 대회, 경기에 나선 선수, 일선 지도자들의 의식을 돌리는 데도 엄청난 시간, 비용을 투자해야만 했습니다. 이런저런 노력에도 뚜렷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다보니 발을 동동 굴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세계 대회 유치를 통해 안방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는 것 자체로도 한국 육상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다가올 것입니다. 큰 차이가 나기는 해도 직접 세계적인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거나 직접 경기를 지켜보고 경험하면서 상당한 동기 부여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를 통해 '더 잘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보다 더 나은 기록, 자신감 향상 등의 이익을 얻으며 장기적으로 더욱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침체기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했던 한국 육상에 새로운 전환점, 희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욕심을 내지 않는 듯 보일지 몰라도 한국 육상은 이렇게 현실성 있는 목표 달성을 통해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려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철저한 준비를 통해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내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두드러지는 선수가 없다 해도 아직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나름대로 투자도 있었고,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보다 명확해진 목표를 갖고 한국 육상이 끈기 있는 모습으로 도전해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의미 있는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많은 팬들은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세계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던 한국 육상이 제대로 된 전환점, 진정한 도약기를 맞는 안방에서의 세계육상선수권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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