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함을 생각하고 느끼는 날, 바로 '스승의 날'입니다.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우리들의 스승님, 선생님은 한없이 높아보였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중에 선생님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나타나고, 가끔 옛 스승님을 만나 뵐 때 보면 그 분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분들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히려 우리와 똑같이 자신의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제자들 개개인의 성공을 위해 더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 아무나 스승이 될 수는 없구나' 하는 걸 깨닫곤 했습니다.

축구 감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목표하는 바도 있겠지만 선수 개개인의 성공을 위해, 그리고 팀의 성공까지 생각하며 정말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직업이 바로 축구 감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축구 감독이라는 자리는 아주 무거운 자리이며, 특히 국가대표팀이나 클럽팀을 맡는다면 그 자리에 올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지난 19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한 뒤 모두 83명의 감독(대행 포함)들이 K리그를 거쳐 갔습니다. 때로는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해 중도 하차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선수, 팀의 운명을 짊어지며 83명의 감독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K리그의 역사를 쓰고, 한국 클럽 축구의 발전을 이끌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많은 선수들에 영향을 끼치고, K리그에 큰 족적을 남긴 '명장'들이 존재합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 지금은 K리그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지 않지만 K리그 역사에 큰 공을 세웠던 '명장' 5명을 소개하려 합니다.

▲ 김호-김정남 감독
K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감독을 맡았던 지도자는 바로 김호 감독입니다. 1984년부터 3년간 한일은행 팀을 맡으면서 프로축구 감독으로 선을 보였던 김 감독은 1996년에 수원 삼성 창단 감독으로 이름을 올려 무려 8시즌동안 이끌면서 수원을 정상급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어 수원 감독을 그만 두고 4년 뒤인 2007 시즌 중반, 대전 시티즌 감독에 부임해 기적 같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어내는 저력을 발휘하는 등 2009 시즌까지 무려 17시즌을 K리그 팀 감독으로 활약해 그야말로 'K리그 지도자 산 증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 감독의 축구 철학은 바로 '창의적인 플레이, 세밀한 축구'입니다. 클럽 축구에 대한 기억이 흐릿한 팬들이라면 아마 94 미국월드컵에서 스페인, 독일 등 유럽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걸 기억하면 '아!'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김 감독은 자신이 맡은 팀마다 자신의 철학을 철저하게 이식시켜 궁극적으로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을 꾀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김 감독의 축구는 한일은행, 현대, 수원 삼성, 대전 시티즌 등을 맡으면서 곳곳에서 발현됐고, 이를 통해 김 감독의 철학을 잇는 축구를 구사하는 감독, 즉 제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닥공 축구'로 K리그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전북 최강희 감독과 리그 중반 흐트러진 팀을 다 잡고 지난해 FA컵 우승을 일궈냈던 수원 윤성효 감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비운의 천재' 고종수 매탄고 코치는 김호 감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선수 그리고 지도자였습니다. 수원이 강팀으로 거듭나기까지, 그리고 대전이 6강에 진출하기까지 고종수가 주인공급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김 감독 덕분이었습니다. 부상, 몇몇 사생활 문제 등으로 위기를 맞이했을 때도 김 감독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많은 힘을 얻었던 고종수는 김 감독의 조언에 따라 수원 삼성 유스팀 매탄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올해 시작하며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스타급 선수 외에도 많은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 김호 감독은 2009년 대전 감독을 끝으로 물러난 뒤,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유소년들을 지도하며 지도자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습니다.

17시즌 동안 통산 207승을 기록한 김호 감독이지만 이보다 약간 더 앞서 K리그 통산 최다 승 감독을 세운 지도자가 있습니다. 바로 김정남 감독입니다. 김 감독은 1985년 유공 감독을 맡기 시작해 유공에서만 7년, 울산 현대에서만 9년을 지도하는 등 총 16시즌동안 K리그 팀 감독을 역임해 209승을 기록, 역대 통산 최다 승 감독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팀을 오랫동안 맡을 만큼 김 감독에 대한 팀의 신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데요. 1989년, 그리고 2005년에 각 팀에서 한 차례씩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걸 보면 유공, 울산 모두 김 감독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보낼 만합니다.

김정남 감독이 강조하는 축구 철학은 바로 신뢰와 화합입니다. 부진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선수라 해도 믿고 기다려보면 언젠가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는 신뢰감을 김 감독은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신뢰감과 더불어 선수들 모두 한 마음으로 뭉쳐 경기를 한다면 어느 팀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그러한 철학 덕분에 김 감독이 맡은 팀들은 빼어난 조직력과 강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늘 상위권 성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천수 같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최고 전성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현재 김 감독은 울산 감독에서 지난 2008 시즌 이후 물러난 뒤, 프로축구연맹 부회장직을 맡아 전면에 나서 K리그 발전에 힘쓰고 있습니다.

▲ 박종환 , 니폼니시 감독
박종환 감독도 K리그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지도자입니다. 이미 1983년 세계청소년대회 4강을 이끌며 지도력을 검증받았던 박 감독은 1989년부터 일화 팀을 맡아 성남 일화(당시 천안 일화)의 첫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지도자였습니다. 프로축구 최초로 3연패(1993, 1994, 1995)를 이뤘고, 고정운, 이상윤, 신태용 등을 스타급 플레이어로 키운 데는 박 감독의 역량이 아주 컸는데요. 물론 지금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강한 훈련'이 있기는 했어도 투지와 체력, 기동력으로 승부를 거는 '박종환식 축구'는 한국인의 특성과 잘 맞아 떨어져 많은 팬들을 열광시키고, 심지어 개인 팬도 따라다니는 보기 드문 일도 발생했습니다. 성남 신태용 감독 역시 '박종환 감독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기도 했는데요. 국가대표, 클럽 축구 모두 엄청난 열정을 갖고 헌신적으로 팀을 이끌었던 박 감독의 큰 족적은 지금도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K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 감독 중에서 가장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감독은 바로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었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카메룬팀을 맡아 8강까지 진출시킨 명장이었던 니폼니시 감독은 1994년부터 5년간 부천 유공을 맡아 '제2의 전성기'를 이끌며 주목받았습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른바 '니포 축구'로 대변되는 니폼니시 감독 특유의 축구 철학이 상당한 관심을 끌었는데요. 미드필드의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과 기술의 축구인 이 '니포 축구'는 윤정환 같은 빼어난 기량을 갖춘 플레이메이커 탄생, 한국 축구에는 보기 드물었던 기술 축구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니포 축구 5년'의 영향을 받고 조윤환, 최윤겸, 윤정환 등이 감독으로서 계보를 이어가려 했고, K리그 최고의 '성실맨' 포항의 미드필더 김기동이 20년 가까이 활약하는 데 탄탄한 초석이 되기도 했습니다.

▲ 김학범 감독
지금은 중국 리그 허난 팀에서 감독직을 맡고 있는 김학범 감독도 강한 인상을 남긴 지도자입니다. 2005년부터 4시즌동안 성남 일화를 맡아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김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서 국내 감독 가운데서는 드물게 탄탄한 전술,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경기를 이끌어 '전략가'로서의 면모로 성남 그리고 K리그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스타 선수,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비주류 출신'이라는 한계를 깨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김 감독의 역량은 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김 감독의 영향을 받아 김두현, 장학영 등이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주목받았고, 우성용은 2006 시즌 득점왕을 차지하며 K리그 개인 통산 최다 골을 넣는데 가장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 밖에도 럭키금성, 울산 현대의 전성기를 이끌고 현재 관동대에서 10년 넘게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고재욱 감독, 수원 삼성의 2차례 리그 우승을 이끄는 등 김호, 김정남 감독에 이어 가장 많은 승리(157승)를 거뒀던 차범근 감독,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나락에 빠졌던 성남 일화를 서서히 끌어올리며 다시 명문팀으로 발돋움하는데 초석을 다졌던 차경복 감독, 약체라는 편견을 뒤집고 오직 실력, 전술로 무장해 2005 시즌 시민구단 최초로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해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조명됐을 만큼 큰 주목을 받았던 장외룡 감독, 그리고 '코리안 드림'을 이루며 2000년대 후반 K리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세르히오 파리아스, 세뇰 귀네슈 감독 등도 K리그에서 꼭 기억해야 할 감독, 우리들의 지도자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감독들 모두 지금은 K리그에서 볼 수 없는 감독,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 가운데는 이미 고인이 된 분도 있고 K리그 감독직을 하기에는 다소 나이가 많은 감독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더욱 박진감 있는 K리그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름대로 저마다 족적을 남겼던 이들이 있었기에 K리그는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를 잇기 위한 후배 선수, 감독들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저마다 스타일도 다르고, 나름대로 공과를 따져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K리그에 상당한 영향을 준 이 '옛 스승'들을 스타급 선수들만큼이나 조금이나마 돌아보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선수들이 활기찬 플레이를 펼치고, 명승부가 나오는 데는 이들의 역량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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