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엄마와 같은 청각장애자 동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청각이 상실되었음을 숨기고 있는 그를 위해 영규와 함께 비밀로 하자는 그들의 다짐은 과연 차갑게 식어 있는 동주를 어떻게 변화시켜줄지 궁금해집니다.
복수심을 키우는 상황은 또 다른 피해만 만들어 낼 뿐이다
동주가 청각장애자가 되었음을 확인하고 그를 따라가며 눈물로 고백하는 우리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로서는 동주가 청각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이런 자신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기만 하지요. 어린 시절,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멸시를 받아야만 했던 엄마의 눈물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동주가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속이고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최진철에 대한 복수를 위해 지금까지 버텨왔던 동주 어머니 현숙은 마루를 이용해 잔인한 복수를 꿈꾸고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그 복수를 위해 마루가 가족들을 만나는 것도 극도로 경계하고, 이런 상황은 역설적으로 동주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입니다.
마루를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통해 비밀병기처럼 친부 최진철에게 복수하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현숙의 노력은 오랜 시간 집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청력을 잃고 삶을 자포자기 한 채 살았던 어린 동주를 위해 마루를 자극해왔습니다.
억눌리고 만족할 수 없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기 원했던 어린 마루의 마음을 이용해, 복수 도구로 만들어낸 현숙은 어쩌면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복수를 시작하려는 시점 동주는 독립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평생 준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동주는 그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습니다. 항상 자신은 준하가 없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지요. 국내로 돌아와 스스로 계획했던 복수극을 시작한 이 시점에도 어머니는 준하만을 살피고 그가 여전히 곁에 남아 있기만을 고집합니다.
준하의 마음을 자극하며 그가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계획한 복수극의 중심에서 아바타가 돼주기를 바라는 현숙으로 인해 점점 상황은 복잡해져만 갑니다. 보면 볼수록 애착이 갈 수밖에 없는 가족들. 그리고 이미 자신을 알아본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여전히 자신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동생 우리를 바라보는 준하의 마음은 힘겹기만 합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이룰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꿈을 현실적으로 이루기 위한 대안적인 가족만이 필요했던 셈인데, 세상에 대가없는 배려는 없다고 자신이 꿈꾸었던 환상적인 삶에는 그간의 삶 모두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악마의 서약'이 있었던 셈입니다.
준하는 여전히 친어머니라고 생각하는 현숙. 그러나 현숙에게 준하는 자신의 복수를 완성해줄 완벽한 도구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해준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원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준하는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자신은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친부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아야만 하는 상황은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며 치유할 수 없는 내상을 입을 것입니다. 그것이 준하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피를 묻히기 싫어 바보처럼 만들어버린 동주 역시 현숙의 생각과는 달리, 피해자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복수에 눈이 어두워 타인을 더욱 지독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현숙은 그녀가 그토록 증오하는 최진철보다 더욱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철저하게 복수만을 위해 마루를 망가트려버린 그녀는 이제 아들 동주에게마저 버림받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복수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재가공되어 진행될지 알 수 없지만 복수가 성공한다 해도 현숙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존재로 기억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상처로 범벅이 된 동주와 준하를 따스하게 감쌀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영규 가족들. 그들은 과연 잔인한 복수극에 눈 먼 이들에게 어떤 깨우침을 전해줄까요? 마루의 얼굴을 알고 있는 순금이 숨긴 준하 그림을 과연 영규와 우리가 어느 시점에서 발견하게 될까요? 그 그림을 발견하는 순간이 극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 될 수밖에 없기에, 누가 먼저 그 그림을 발견하느냐는 극의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글씨를 모르는 영규가 동주에게 그림 편지를 써서 전해주는 장면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영규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어내는 동주의 마음도 대단했지요. 영규 우리 부녀와 함께라면 세상이 아름답기만 한 동주. 자신이 마루임을 알릴 수 없는 준하는 우리에게 시계를 선물합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 우리에게 시계를 맡기고 떠났듯, 복수극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에게 시계를 선물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올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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