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민간인 사찰 문건 중 명진 스님에 대한 사찰-언론 공작 계획이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국정원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등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 명진 스님을 봉은사 주지직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보수 언론과 인터넷 여론을 동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12일 MBC와 오마이뉴스 단독보도에 따르면 명진 스님 관련 국정원 불법 사찰 문건은 총 13건이다. 지난해 12월 명진 스님이 국정원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정보비공개처분 취소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면서 공개된 문건이다. 이마저도 일부 내용은 비공개 삭제처리됐다.

MBC '뉴스데스크' 12일 방송화면 갈무리

이 문건들에는 '봉은사 주요 현황', '명진의 각종 추문', '명진의 종북 발언 및 행태', '봉은사 내 명진 지지세력 분포 및 시주금 규모', '사설암자 소유 의혹',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의혹 등 비리 수사로 조기퇴출' 등의 제목이 달려있다.

국정원은 보수 언론과 인터넷 여론, 보수성향 신도단체 등을 통한 명진스님 퇴출 계획을 세웠다. 2010년 3월 31일 작성된 '명진 봉은사 관련 각종 추문 확인 결과 및 평가' 문건에서 국정원은 "명진은 (삭제 처리)이 많으나 승려생명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확실한 물증이 부족"하다면서 "종단 차원의 주지직 퇴출 유도와 함께 면밀한 동향 점검 및 보수언론을 통한 부조리 실태 부각 등 입체적인 압박 전개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어 ▲(삭제 처리)에게 직영사찰 전환 조기집행은 물론 종회 의결사항에 대한 항명을 들어 호법부를 통한 승적박탈 등 징계절차에 착수토록 주지 ▲(삭제 처리)보수언론 대상 명진의 실체를 알려 명진과 봉은사를 옹호하는 논조 전개는 자제토록 협조 강화 ▲(삭제 처리)보수 인터넷 언론으로 하여금 명진의 부조리 의혹-설 등을 기획연재 보도토록 하여 명진의 신뢰도에 타격 ▲보수 성향 신도단체로 하여금 명진 실체 폭로 유인물을 봉은사 등에 배포함으로써 봉은사 신도들의 지지 차단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이런 국정원의 기획이 언론사와 단체들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됐는지는 문건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 "하지만 당시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의 보도 기사와 행동을 보면 국정원 기획의 실행 여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썼다. 당시 '명진 스님은 사실 종북주의자에 가깝다', '주지 더할 욕심 발언에 속물 명진 비판', '명진 스님은 종법 파괴자' 등의 인터넷 매체 보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문건 작성 직후 보수성향 신도단체들의 명진 스님 퇴출 행동이 불거졌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국군예비역불자회, 해병전우불자회 등의 단체는 2010년 4월 1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명진스님! 제발 그만 하십시오. 이러다가 불교 다 죽습니다'라는 제목의 비판광고를 게재했다. 이들은 비판광고에서 "왜 신성한 종단을 정치 싸움터로 만들려 하나"라며 "지금은 조용히 떠나야할 때"라고 명진 스님의 사퇴를 요구했다.

2010년 4월 1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는 보수성향 신도단체들의 명진스님 퇴출요구 광고가 게재됐다.

2010년 1월 7일 작성된 '명진 봉은사 주지 최근 특이 동향 및 평가' 문건에서는 언론매체와 보수단체를 통한 반 명진 분위기 조성을 병행해야 한다며 ▲(삭제 처리) 보수언론 대상 명진 및 봉은사 관련 홍보성 보도가 명진을 미화하는 효과를 주고 있음을 지적하고 기사화 자제 촉구 ▲(삭제 처리)보수 인터넷 매체 대상 명진의 좌파활동 실체를 조명하는 기획보도 독려 ▲3대 국민운동단체 등 보수권 대상 명진의 비이성적 반정부 행태 실상을 전달, 소속 회원들로 하여금 종교인 본분 일탈에 대한 비난 댓글달기를 전개하여 입지 위축 등의 대책을 내놨다.

2010년 4월 16일 작성된 '명진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비리 수사로 조기 퇴출' 문건에서도 국정원은 "명진의 비위 행태를 보수언론·교계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부각 보도하는 등 부도덕성의 실체를 공론화하여 불교계 퇴출 당위성 확산"한다고 했다.

2009년 11월 13일 작성된 '좌파인물들의 이중적 행태 및 고려사항' 문건에는 국정원이 주요 월간지를 비롯한 언론을 통해 명진 스님 등 '좌파 핵심 인물'들에 대한 비난 기사를 기획한 흔적도 고스란히 남았다. 국정원은 이 문건에서 ▲공식·비공식 루트를 통해 좌파 핵심 인물들의 비위 사실을 언론에 적극 전파하는 한편, 폭로기사 및 비난 사설·칼럼 게재 측면 지원 ▲주요 월간지 등을 통한 좌파실상 관련 특집·종합기사 보도 방안도 모색 등의 방침을 세웠다.

한편 MBC 보도에 따르면 명진 스님 관련 제목을 확인한 국정원 불법사찰 문건의 수는 30건이다. 소송을 통해 일부 내용이 삭제된 채로 13건의 문건이 공개됐을 뿐이다. 국정원은 불법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이 불거져 정보공개 청구를 받을 때마다 이를 국가안보 사안 등의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 국정원 문건 '불순활동혐의자 목록'에서 명진 스님은 28번으로 나머지 명단은 모두 삭제돼 있는 상태다. 명진 스님 외에도 상당 수의 민간인 사찰이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국정원 개혁과 이를 뒷받침할 국정원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원은 국내 정보 파트를 폐지했지만 이번 문건에서는 국정원 방첩국도 민간인 사찰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 법 개정 논의에 있어 국정원 개혁은 검찰개혁, 경찰개혁보다 먼저 대두됐지만 현재 논의가 실종된 상태다. 시민사회 등에서는 국정원이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 근거로 들고 있는 '국내보안정보 수집'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직무범위 관련 법개정 논의가 필수적이라는 비판이 이어져 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