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코드>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소재를 다룬 영화입니다. 주인공 콜터 스티븐스는 난데없이 다른 이의 육체를 가진 채로 잠에서 깨어납니다.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그는 곧 자신이 탄 열차가 폭발하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알고 봤더니 콜터는 '소스 코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열차에 탔던 한 남자의 마지막 8분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범인을 색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콜터는 8분의 시간여행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사건을 해결하고자 고군분투합니다.

여기까지 읽으니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이야기죠? 가깝게는 <데자뷰>와 <나비효과>가 있고, 멀게는 <레트로액티브>와 <사랑의 블랙홀>이 있습니다. 넓게 보자면 당연하게도 <백 투 더 퓨처> 역시 동류의 영화겠군요. 이 밖에도 지금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가 몇 편 더 있으니, <소스 코드>는 아주 기발하거나 참신한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관건은 '무엇'을 보여주느냐보다는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달렸을 것입니다. <소스 코드>가 던컨 존스 감독의 신작이라기엔 아쉬운 감이 있으면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던컨 존스 감독의 데뷔작 <더 문>은 분명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는 <소스 코드>가 그렇듯이 색다르진 않았으나 그가 이것을 다루는 방식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소재와 한정된 공간 그리고 단 한 명의 배우로 이뤄진 이 심플하기 그지없는 영화는, 멜로나 드라마와의 이종교배를 시도하여 물리적으로 보이는 이상의 것을 완성했습니다. 덕분에 다분히 철학적인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었죠. 그러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던컨 존스 감독이었기에 <소스 코드> 또한 어떤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소스 코드>의 콜터 스티븐스는 영문도 모르고 임무에 투입됐습니다. 자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는데 별안간 눈을 떠보니 열차 안에 있었습니다. 물론 왜 다른 이의 몸에 들어간 건지도 모르고,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스크린으로 그걸 지켜보는 관객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보면 <소스 코드>는 단순히 시간여행을 통해 테러리스트를 색출하는 임무를 띈 자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초반부에는 드러나지 않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더 있을 것임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일례로 콜터는 열차에서 테러리스트와 함께 폭탄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폭탄해체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형사나 연방요원도 아니고 그저 헬기 조종사일 뿐입니다. 여기에 그가 임무에 투입된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더하면, <소스 코드>는 일반적인 시간여행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임을 눈치 채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콜터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있을 텐데 굳이 그를 투입한 배경에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사실 그것도 굉장히 획기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단 8분의 시간이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이 영화에 흥미를 더해줍니다.

이건 마치 에반게리온과 메칸더 V가 시간의 제약에 막혀 맘껏 날뛰지 못하게 만든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집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저 두 로봇에게 각각 3분과 5분이라는 활동의 한계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이처럼 <소스 코드>가 도입한 한계시간은 기존에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에는 거의 없던 설정입니다. 가사상태에서 사후세계를 체험하던 <유혹의 선>이 비슷한 설정을 두긴 했지만 이 영화는 엄연히 시간여행을 한 건 아니죠. 따라서 이 작은 차이가 <소스 코드>의 차별화를 꾀하고 흥미를 더해주는 동시에, 단순히 오락거리 이상의 이야기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던컨 존스 감독은 <더 문>과 마찬가지로 <소스 코드>에서도 꽤 진중하고 철학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아울러 8분이라는 짧디 짧은 시간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콜터를 비롯한 등장인물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놀랍고도 특출한 대목입니다. 던컨 존스 감독은 역시 <더 문>에서처럼 <소스 코드>도 서로 다른 장르의 혼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영화는 SF를 가미한 액션이나 미스터리로 시작하지만 종국에는 멜로를 만난 드라마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장르에서 장르로 이동하는 과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아주 매끄럽습니다.

이렇듯 <더 문>과 <소스 코드>는 유사점이 많습니다. 특히 주인공 캐릭터에게 주어진 운명이 그렇습니다. 언뜻 <소스 코드>는 9.11 이후로 테러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미국인의 절박한 심리를 반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 이 영화는 전체주의에 의해 부당하게 희생을 강요당하는 개인을 화두로 떠올립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더 문>의 샘 벨도 정확히 그런 처지였죠. <소스 코드>는 <더 문>에 비하면 조금 유약하면서도 전형적인 계산이 깔린 결말을 맺습니다. 보다 투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어쩌면 이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덧 1) 콜터는 정확히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다고 몇 번을 말하는데, 자막은 계속 '중동'이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

덧 2) 던컨 존스 감독이 데이빗 보위의 아들이란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역시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었군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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