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평구에 사는 김모(31)씨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김 씨는 이사하며 케이블 TV 상품을 지역 케이블 업체인 'CJ헬로비젼'의 HD급으로 결정했다. 전에 보던 SD급 상품보다 6000원 정도 비쌌지만, 케이블 채널까지 HD화질로 볼 수 있단 말에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김 씨는 스포츠 채널을 주로 보는 TV 시청 패턴을 갖고 있다. HD상품 가입 전 김씨는 두 차례나 스포츠 채널이 전부 나오는가를 확인했다. 지역 케이블 업체에서는 SD상품보다 HD 상품이 더 스포츠 채널이 많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 스포츠 방송 채널 KBSN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막상 케이블을 연결하자, 'KBS N 스포츠'가 나오지 않았다. 'KBS N 스포츠'는 'MBC스포츠 플러스', 'SBS ESPN'과 함께 대표적인 스포츠 채널이다. 이에 김 씨는 "애초 스포츠 채널이 더 많아진다고 했지만 정작 나와야 할 스포츠채널이 나오지 않는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지역 케이블 업체는 "'KBS N 스포츠'는 HD 기본형 상품에선 나오지 않는다"며 "스포츠 채널이 모두 나온다고 했던 건 골프 채널과 '스포츠 원' 등이 나온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씨는 "스포츠 채널이 모두 나오느냐고 물어봤을 때, 'KBS N 스포츠'는 나오지 않는다고 대답해줬더라면 HD 상품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의했지만, 케이블 업체는 "KBS N 스포츠를 보시려거든 고급형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며, "요금을 조금 할인해 줄테니 고급형에 가입하라"고 종용했다. 프로야구 중계를 봐야 했던 김 씨는 결국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가입 상품을 업그레이드 할 수밖에 없었다. SD급 케이블을 볼 때보다 요금은 10,000원 가량 늘어났다.

#.2
동대문구에 사는 윤모(34) 씨는 SK와이번즈의 팬이다. SK의 에이스 김광현이 등판한단 소식에 퇴근길을 재촉한 윤 씨는 치킨에 맥주를 사들곤 곧장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 채널을 틀어도 SK의 경기는 중계하지 않았다. 그날 SK의 경기는 스포츠채널이 아닌 'MBC LIFE'에서 중계하는 일정이었다. 'LG U+' IPTV 가입자인 윤 씨는 "왜 MBC LIFE'가 나오지 않느냐"고 항의했지만 가입한 상품에서는 그 채널을 볼 수 없다는 대답 밖에 듣지 못했다.

#.3
부천에 사는 김모(32) 씨는 아직 HD 케이블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역시 지역 케이블 가입자인 그는 HD 상품에 가입할 경우 원하는 채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가입을 망설이고 있다. 그는 현재 지상파 채널만 HD 화면으로 볼 뿐이다. 대부분의 케이블 채널은 화질이 많이 떨어진다. 그는 HD 상품에 가입하고도 원하는 채널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인터넷에서는 그와 유사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 HD 기본형 상품에 가입한 이후, 나오지 않는 채널을 보고 싶을 때는 디지털 셋톱박스를 끄고 케이블 단자를 이용해 일반 유선을 보면 가능하다는 정보를 얻었지만 매번 그러기는 번거로울 것 같아, 아직 실행해보지는 않았다.

HD 상품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유료 방송 사업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KT의 HD 상품 가입자는 이미 300만을 넘어섰고, 결합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SKT의 가입자도 기록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에 걸맞은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인 불만은 이른바 '킬러 채널'의 의도적 누락이다. 기본형 상품에 가입할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스포츠 채널 중 하나가 안 나오거나 음악 방송 중 한 곳이 안 나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HD 상품은 업체에 따라, 결합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SD 상품에 비해 대략 만 원 정도 비싸게 판매된다.

하지만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HD 상품을 가입할 경우 나오는 기본 채널수는 늘어나지만 실제로 꼭 봐야 하는 채널의 경우 '고급형'에 가입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게 하는 영업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면서 야구 중계를 하는 채널 가운데 하나가 안 나오거나 젊은층에게 인기가 높은 음악 방송 가운데 한 곳이 배제되는 식이다.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이러한 영업 전략에 대해 소비자들은 '한 마디로 얌체 짓'이란 불만이 높다. 통신비 절감을 주요한 목표로 갖고 있는 방통위는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채널 편성의 권한은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고유 권한이자 독자적인 사업 영역으로 볼 수도 있고, 상품 가입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그래서 그동안 가입 상품의 종류에 따른 채널 편성 문제는 일종의 관심 사각지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청 욕구를 교묘히 이용하는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얌체 영업은 고스란히 통신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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