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이 일본 대지진 사태를 보도하면서 시간과 지면, 방송 분량을 할애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다뤄야 할 사안을 다루기보다는 자극적인 제작기법을 사용하면서 지나친 선정주의 경향을 보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KBS는 일본 공영방송인 NHK보다 많은 건수의 뉴스를 방영했으나 재난 현실을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데 매우 부족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3일 오전 11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시각에서 본 한국 언론의 재난 보도’ 토론회에서 김춘식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일본 대지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언론 보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3일 오전 11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글로벌 시각에서 본 한국 언론의 재난 보도’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송선영
KBS, NHK보다도 많이 보도

일본 대지진에 대한 TV 뉴스 분석 결과, KBS는 NHK보다 많은 건수의 뉴스를 방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KBS는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당일인 3월11일 29건, 12일에는 32건의 뉴스를 보도한 데 이어 3월18일까지 매일 20건 이상의 뉴스를 전했다. 이와는 달리, 일본 NHK는 첫 날 16건 뉴스를 보도한 데 이어, 14일에는 8건의 뉴스를 전했다. 이후에도 NHK의 보도 건수는 10건을 넘기지 않았다.

KBS와 NHK 보도 내용의 차이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분석 결과, NHK는 분석 대상 기사 가운데 55.8%가 지진과 원자력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이와는 달리, KBS는 28.7%만이 지진과 원자력에 관심을 집중했다. KBS는 NHK와는 달리 ‘지진이 다른 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에 준 영향’(11.1%), ‘인간적 차원의 관심’(9.7%), ‘일본의 민심 혹은 여론’(4.3%)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

또, NHK는 사망자나 실종자 숫자를 표제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자극적 어휘를 사용한 표제가 한 건도 없었다. 이에 비해 KBS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한 헤드라인의 비율이 30%가 넘었다. 이 밖에 KBS는 NHK보다 피해를 예측 혹은 전망하는 헤드라인의 비율이 현저히 높았으며, 그 방향 또한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이 뿐 아니다. 앵커 도입부를 중심으로 기사의 토대가 된 정보의 신뢰성을 분석한 결과, NHK는 ‘~로 확인됐다’는 표현으로 확인된 정보만을 뼈대로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KBS는 ‘~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인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는 표현을 쓰는 등 미확인된 정보를 뼈대로 기사를 작성한 비율이 45.9%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춘식 교수는 이와 관련해 “KBS는 NHK보다 3.24배 더 많은 기사 건수를 방영했지만 아이템당 평균 방영 시간은 NHK의 1/3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고, 보도 내용의 심층성 면에서도 매우 부족했다”며 “더구나 KBS는 NHK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건수의 뉴스를 방영하면서 재난 현실을 심층적으로 다루기는커녕 시청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제작기법을 과도하게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또 “방영시간, 영상기법 활용, 자극적 어휘 사용 등을 고려할 때 KBS의 뉴스 품질이 NHK의 품질보다 결코 낫다고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 신문들,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보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본 대지진과 관련한 한국의 신문(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과 일본의 아사히 신문, 요미우리 신문, 그리고 미국의 뉴욕타임스 보도를 분석한 결과도 발표됐다.

분석 결과, 한국 신문의 일본 대지진에 대한 관심 수준은 매우 높았지만 보도 내용은 사건의 단순 진행을 전하는 데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재난을 전하는 보도 내용 역시 한국 신문은 일본 신문, 뉴욕타임스 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 신문은 헤드라인에서 재난 당사국인 일본의 신문보다 추정, 예측한 사망자와 실종자 숫자를 빈번하게 사용했고, 자극적인 어휘나 문장을 사용한 헤드라인을 채택한 기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 우에 이치로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장이 일본 대지진과 관련한 중앙일보의 보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송선영
요미우리신문 서울 지국장 “한국 신문 보도 공격적인 자세 있어”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본 대지진 보도에 대한 한국과 일본 현업 언론인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일본 언론인들은 한국 언론의 선정성을 지적했으며, 나아가 언론의 재난 보도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한국 언론인은 일본 대지진 보도의 선정성을 지적하는 교수의 분석 결과를 되레 반박했다.

먼저, 우에 이치로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장은 조선, 중앙, 동아의 일본 대지진 관련 보도를 직접 언급하며 “사실 보도도 있지만 선정적인 요소도 있다. 명확하게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신문 타이틀 제목과 사진 크기만 보더라도 한국의 언론, 특히 신문 보도는 공격적인 자세가 있다”며 “이러한 차이에 대해 (왜 이러한 차이가 있는지) 한국의 언론,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토 료지 NHK 서울지국장은 이번 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언론이 피해자에 대한 인터뷰에 큰 초점을 두지 않은 것에 대해선 “지난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언론들이 잘 몰라서 피해자를 인터뷰 해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이 있었다”며 “그 이후, 피해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재난 보도 준칙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기자 “신문방송학 교수들, 언론 선정주의로 모는 강박관념 있나?”

이와는 달리, 문갑식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재난 보도와 관련한) 세미나를 두 차례 보면서 한국의 신문방송학 하시는 교수들은 한국의 언론을 선정주의로 몰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며 다소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일본 대지진 참사 현장에서 힘들게 취재를 했다는 점을 전제로 밝히며 “(일본 취재하면서) 열흘 동안 떨고 굶다 온 거 밖에 없다. 현장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명 보도를 했는지 안했는지 지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선재 KBS 취재주간도 “KBS 보도가 NHK보도 보다 흥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분명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현장에서 오열한 장면, 처참한 모습 등을 배제하고 나가면 괜찮을까. 저널리즘의 1차 사명은 현장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큰 틀에서 선정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동의하지만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장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 한국 언론인들을 향한 교수의 지적도 이어졌다.

김춘식 교수는 “(한국의 언론은) 빈라덴 보도, 정치, 문화 등 관계없이 모두 선정적이다. 야마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고, 지금과 같은 취재 관행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훈수했다. 또 “기자들이 자기 직업 세계에 너무 매몰된 거 아닌가 싶다”며 “신문안에 담기는 콘텐츠를 논의해야 한다. 언론이라는 것은 시민 입장에서 재난 상황을 보고 이를 진정으로 고민해야 한다. 기자들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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