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은 혐의로 기소된 대학강사 박 아무개씨 등 2명의 선고 공판이 오는 13일 예정된 가운데, 이창동 감독,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선처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잇따라 제출하고 나섰다.

앞서 검찰은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어 공용물건 손상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아무개씨와 연구원 최 아무개씨에 대해 지난 4월22일 3차 공판에서 각각 징역 10월과 8월을 구형한 바 있다. 이들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다.

▲ 대학강사 박모(39) 등이 검은색 스프레이로 쥐그림을 그려 넣은 G20 정상회의 홍보포스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창동 감독 “그라피티, 새로운 예술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이와 관련해, 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자 <박하사탕> <밀양> <시> 등을 만든 이창동 감독은 지난 4월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10단독부 이종언 판사 앞으로 탄원서를 보내 이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이창동 감독은 탄원서에서 “표현의 자유를 정신적 양식으로 삼아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의 영화감독으로서, 그리고 한 때 문화관광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아 문화예술 창작을 고취시키기 위한 행정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이번 ‘G20 정상회의 포스터 쥐 그림 사건’으로 기소된 박아무개 피고인에 대한 법적 처리가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척도, 예술적 방법에 의한 풍자와 비판에 대한 관용과 이해라는 중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재판장님의 현명하고 관대한 처분을 호소하기 위해 이 탄원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그는 “박아무개의 행위는 국민들에게 풍자적인 웃음과 해학을 제공해 주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심대한 피해를 끼치지 않았으며,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킨 바도 없다”며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그라피티는 이미 세계적으로 수십 년 전부터 새로운 예술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것이 생성되게 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매체의 특성상 일정한 도발성과 기존권력에 대한 풍자와 비판, 그리고 ‘허가 받지 않은 장소’에 그려진다는 위법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처를 호소하는 박찬욱, 봉준호, 정윤철, 김조광수 감독 등의 탄원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이르면 오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박찬욱 감독 “쥐 그림, 국가 위신 실추시킨 바 없어”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을 만든 박찬욱 감독은 미리 공개한 탄원서에서 “피고인 박아무개가 G20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비록 공용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였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관용되는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여 표현의 자유를 높이고 우리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 일이었음을 양지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박아무개의 행위는 국민들에게 풍자적인 웃음과 해학을 제공해 주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심대한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며,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킨 바도 없다”며 “오히려 이러한 가벼운 사안에 무거운 형벌이 가해지는 것이 국가의 위신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염려하는 국민들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점을 널리 헤아려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봉준호 “G20 치러내는 사회, 이 정도 풍자 소화하지 못한다면 실로 큰 모순”

<괴물> <마더> 등을 만든 봉준호 감독 또한 “G20과 같은 국제적인 대규모 행사도 훌륭히 치러내는 우리사회, 이 정도의 풍자와 유머조차 가볍게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이는 실로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1976년 필리페 페팃이라는 프랑스 청년이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불법적으로 와이어를 설치하고 고공 외줄타기 퍼포먼스를 펼친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뉴욕 법원은 이 프랑스 청년에게 “공원에서 뉴욕시 어린이들을 위해 외줄타기 무료공연을 1회 이상 실시토록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는 이를 언급한 이유에 대해 “현재의 우리 사회가 1976년 미국 사회만큼의 여유는 최소한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이 정도의 관용과 유머도 없이 어떻게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냐”며 이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말아톤>을 만든 정윤철 감독 역시 탄원서를 통해 “공공기물을 훼손하며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 사회가 그 이상의 것, 즉 예술적 발언의 정치성과 권력비판을 문제로 삼아 더 큰 벌을 내리려 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불행한 사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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