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새삼스럽게 단체예능임을 온몸으로 증명해보였다. 물론 일곱 명 모두라고는 할 수 없지만 2년 만에 돌아온 무한도전 가요제 탄탄대로 첫 방송은 미존개오 정형돈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졌지만 전반적으로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치열한 예능감을 쏟아 부으며 디너쇼를 웃음의 뷔페로 만들었다. 그런 정형돈이 처음부터 노린 대상은 파리지앵 정재형이었다. 말이 파리지앵이지 누가 봐도 정재형이라는 낯선 이름보다 이봉원이라는 친숙한 얼굴이 먼저 다가온 사람이다.

얼굴만 이봉원이 아니었다. 예능에 전혀 적응치 못하는 것 같으면서도 무도 멤버들만큼이나 자주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유재석, 노홍철의 꾸준함과 달리 모았다 한방 터뜨리는 스타일인 정형돈의 선택은 처음부터 정재형이었다. 그 노림수가 노래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웃음만으로는 대상을 노리고 있는 눈치였다. 가수면서도 예능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싸이가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재형의 예능 존재감은 미존개오 정형돈과 이미 찰떡궁합을 암시하고 있었다.

정재형에 대한 정형돈의 구애는 영리하게도 낯을 가리는 역설을 사용했다. 무한도전 어색함의 대명사답게 정형돈은 정재형의 옆자리에서 슬그머니 가장 먼 길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이것을 사람 가린다고 정색하고 볼 수 없다. 이것은 정형돈이 어색을 가장한 관심법이었고, 그런 정형돈의 눈짓을 정재형도 충분히 알아차렸다. 정형돈, 정재형 두 사람은 무한도전 탄탄대로 가요제의 첫 번째 커플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앞날은 결코 평탄치 않을 것이다. 아니 평탄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프로듀서의 선택을 돕기 위한 무도멤버들 매력발산을 통해서 정형돈은 스튜디오를 일순 초토화시킬 정도의 최악의 노래솜씨를 뽐냈기 때문이다. 그런 정형돈을 선택한 정재형이 음악으로 승부할 생각을 가졌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은가.

정형돈이 조관우의 늪을 선택한 것은 길이 무색해질 정도의 엄청난 무리수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임재범의 고해를 선택해 공해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리수였다. 촌철살인의 무도 자막이 음악의 밑바닥, 음악의 늪이라고 평가한 정형돈의 늪은 그러나 웃음으로는 메가톤급 폭탄을 터뜨렸다. 방송 초반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너무 많은데 자신들이 노래하는 것이 어울리겠냐는 소심한 반응을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발칙한 반전이었다.

이봉원 도플갱어 정재형과 음악의 늪 정형돈의 결합은 무시무시한 웃음을 예고하고 있다. 무한도전 가요제가 나가수처럼 음악 자체로 승부하고자 하는 것도 아닌 이상 정정커플의 활약은 의외의 다크호스로 부상할 기대감을 크게 부풀리고 있다. 그 기대감의 서막은 정정커플이 결정되는 순간 지체 없이 증명되었다. 마지막에 정준하, 길 그리고 정형돈까지 무도 뚱보 삼총사가 공교롭게도 정재형에게 마이크를 내밀며 선택을 기다렸다. 그들 중에 정재형은 길이 아닌 정형돈을 선택했다. 그러자 정형돈 특유의 진상부리기가 곧바로 터져 나왔다.

정형돈의 마지막 외침이 기가 막혔다. “형이 날 까줘야지 내가 계속 나오면서...”하는 개연성까지 갖춘 완벽한 연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노홍철도 울게 할 사기라는 것은 다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전에 계획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정커플이 맺어짐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다른 멤버들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물론 예능전사들이 다 된 무도 멤버들이 두 손 놓고 있지는 않겠지만 이대로 간다면 이 둘의 웃음을 당해낼 커플은 없어 보인다.

레슬링에 이어 가요제에서 정형돈의 미친 존재감이 작렬할 거라 예상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 정정커플이 즐겁다. 싸이가 아닌 정재형이, 한동안 잠잠했던 정형돈의 기습에 터진 웃음으로 무한도전의 세 번째 가요제는 이미 반쯤 성공하고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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