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비단 무한도전 뿐만은 아닙니다. 잘나간다고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의 프로그램에서, 가장 부진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게는 의당 매서운 손가락질과 하차 요구가 있었거든요. 최근만 보더라도 1박2일의 김종민은 지난 1년 내내 비난을 받았었고, 런닝맨의 김종국은 유재석 바지 내리기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남자의 자격에서 하차하게 된 이정진의 결정도 이런 부적응과 부진에 따른 맘고생의 결과였겠죠. 누구 하나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벌떼 같이 몰려드는 시청자들과 그 때문에 점점 더 움츠러드는 해당 출연자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에요.

뭐 굳이 다른 프로그램에서의 예를 찾아볼 것도 없습니다. 무한도전 안에서도 이런 여론의 흐름은 수시로 뒤바뀌고 있었거든요. 지난 레슬링 특집 때 몸을 사린다며 프로답지 않다는 박명수를 향한 비난이 일각에서 있었습니다. 다시 복귀한 하하가 꼴 보기 싫다는 비판도 많았었죠. 멀리는 지금은 공익근무를 하고 있는 전진에 대한 불만도, 지금은 에이스라며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정총무, 정준하를 향한 공격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연한다는 것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대중들의 질타를 기다린다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길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이런 유행 같은 한시적인 비난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부진과 침묵에 비판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거든요. 다른 멤버들에 비해 현저하게 활약이 떨어지고, 별다른 역할도 하지 못할뿐더러, 심지어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 다는 것이 그 이유죠. 한마디로 말하면 너는 그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빠지는 게 더 좋다는, 냉혹하지만 일리 있는 비판입니다. 현재 무한도전 안에서의 그의 모습은 확실히 맥이 빠져 있거든요.

이런 부진은 길이 처음에 무한도전에 등장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작진의 확실한 지원을 받은 덕이기는 했지만, 전진의 부진으로 인해 전체 분위기가 다운되었을 당시, 길의 등장은 제작진의 의도를 출연진에게 적절하게 전달하는 중간다리로서 확실히 효과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었거든요. 그는 육빡빡이가 되어 다른 멤버들의 동선을 조율하기도 했고, 고궁을 넘나드는 멤버들의 안내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죄와 길에서 폭발했던 소재 만들어주기 역시도, 그가 했던 것은 거의 없지만 훌륭한 명분과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었구요.

그렇지만 길의 활용도는 딱 거기에서 멈춰 버렸습니다.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을 때, 그가 무도 안에서 했던 것은 거의 없어요. 옆에서 도와주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가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캐릭터와 관계의 설정에 있어서 길의 모습은 낙제점입니다. 제작진의 배려가 정준하와 하하에게 향하고 있는 지금, 그동안 부진했던 길이 무한도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요. 새로운 신입 멤버로서의 부담감을 말하기에는 이미 그가 무도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나도 길기에, 시청자들의 불만은 확실히 타당하고 그렇기에 길에겐 더더욱 뼈아픈 것입니다.

같은 리쌍의 멤버이면서 런닝맨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개리를 봐도 그 아쉬움은 더더욱 큽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그리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하하와 함께 김종국과 아이들이란 작은 유닛을 조직하며 미션 수행과 대립구도에서 나름의 자리를 잡더니, 송지효와의 월요 커플을 만들어 가장 중요한 웃음 소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저 평온 개리라는 밋밋한 캐릭터를 벗어나 자신 있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역시 관계. 다른 출연진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언제나 그 개성을 뿜어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무한도전 내에서 길이 맺고 있는 관계는 어떤 특정한 소스도, 웃음도 만들어내기 힘듭니다. 그나마 정형돈과 함께 뚱스 조합을 이루어내긴 했지만, 혼자 튀기보다는 조용히 전체 조율이나 빈자리를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정형돈과 함께 무언가를 독창적으로 만들어내기엔 그 추진력이 부족하죠. 근래 들어 노홍철이 폭로의 대상으로 길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떤 관계라기 보단 노홍철의 개인플레이를 위한 소재로 쓰이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길은 무도의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어요.

그러니 살고 싶으면 어서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라는, 어떻게든 조합을 만들어내고 관계를 구성해서 그 둘, 혹은 셋이 있으면 무언가 특정한 캐릭터나 웃음의 색깔이 보이는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죠. 무도는 그런 관계들이 빼곡하게 숨어 있습니다. 유재석과 박명수, 박명수와 정준하, 정준하와 정형돈, 정형돈과 유재석, 유재석과 하하, 하하와 노홍철, 노홍철과 박명수. 이런 수많은 콤비들은 둘만 있어도 어떠한 관계와 이야기가 저절로 나오는 조합들입니다. 지금 길에게 과연 이런 그럴싸한 버팀목이 있나요? 성실함과 빼어난 개인기를 요구하기 이전에, 현재 무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덕목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어서 자신의 파트너를 찾고, 그를 살려줄 관계를 구축해야 해요. 더 늦어버린다면, 결코 헤어 나오기 쉽지 않은, 시청자들의 집중관리대상으로 분류되어, 일거수일투족이 비난받는 침묵과 추락의 늪에 빠져 버릴 겁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지말고, 어서 주위의 멤버들이 던져주는 끈을 부여잡아야 할 거에요. 그는 이미 무릎까지 그 모래지옥에 빠져 있거든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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