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 재벌처녀 차예련이 과로로 입원해 당분간 촬영이 어렵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의외로 조용한 반응인 것이 놀랍다. 그러나 사실은 싸인 종방의 컬러바 노출보다 더 심각한 방송사고라는 의미를 안고 있다. 차예련은 대사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조연급으로 출연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로로 쓰러질 정도라면 로열패밀리 촬영 스케줄이 얼마나 살인적인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는 대부분 후반부에 접어들면 생방송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얼마 전 종영한 욕망의 불꽃의 작가와 배우가 서로 설전을 벌이게 된 상황에 노배우 이순재는 마침내 침묵을 깨고 드라마 제작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생방송 드라마와 함께 관용어가 되다시피 한 말이 또 있다. 바로 쪽대본이다. 이처럼 쪽대본과 생방 드라마의 관례가 깨지지 않고는 방송의 퀼리티는 둘째 치고 사람 잡을까 걱정이다.

물론 차예련이 다른 배우에 비해 유난히 체력이 약해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지만 근본 문제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에 있다. 대부분 이 일을 그저 한 여배우의 건강문제로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고질적인 현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는 언젠가는 촬영하다가 과로사하는 배우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때 가서 모든 언론이 나서서 떠들어봐야 죽은 목숨을 되살릴 수는 없다.

싸인의 컬러바 방송 사고부터 시작해서 요즘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한 문제점들이 하나둘 불거져 나오는 이 조짐들이 정말 비극적인 사태를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때임에 분명하다. 용두사미의 오욕이야 드라마 제작진이 감내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것은 꾹 참고 넘길 일이 아니다.

그 위험은 비단 배우만의 일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최근 모 자양강장제 CF 촬영 중 피로에 못 이겨 붐 마이크를 열연하는 두 배우 사이에 떨어뜨리는 오디오 스태프의 에피소드가 나오고 있다. 배우들은 그나마 매니저 등 돌봐줄 사람이라도 있겠지만 배우들보다 먼저 그리고 나중까지 현장을 준비하고 정리해야 하는 촬영 스태프들의 과로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드라마 제작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제작이다. 그러나 한국은 사전제작을 못내 기피하고 있으니 억지로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쪽대본과 생방 시스템에서 드라마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본을 최초 방영 분량만이라도 확보하는 것을 제도한다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기도에 따라서 반드시 따라붙는 연장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최근 배우 이나영과 정지훈이 도망자 제작사를 상대로 출연료 지급 소송을 낸 것처럼 드라마 제작사 입장에서 될 때 뽑겠다는 상업적 기회마저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장을 하더라도 최초 기획된 회차 만큼의 대본이 확보된 상태라면 최소한 현재보다는 모든 면에서 나아질 것이다.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않은 채 드라마 완성도와 배우, 스태프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그대로 안고 가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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