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영이 또 다시 극적으로 생존에 성공했다. 두 명을 걸러내는 두 번째 위대한 탄생 서바이벌에서 첫 번째 무대에 서는 불리함과 애초에 소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고음역이 대부분인 무리한 선곡의 난맥을 딛고 거둔 성적이라 의외지만 예선부터 현재까지 손진영은 늘 그런 식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손진영이 지금까지 써온 생존의 방식대로 다시 TOP 8에 든 것이다. 김태원이 손진영에게 미라클맨이라고 별명을 지어준 것처럼 다시 기적을 일으켰다.

그런데 손진영의 생존 아니 그의 눈물에 대해서 방송 뒤에 말이 많다. 마치 동정표를 바라는 듯한 억지 눈물이었다는 투의 비난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우선 말이 되지 않는다. 손진영이 눈물을 보인 것은 무대 뒤에서부터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눈물을 화면을 통해 본 것은 문자투표가 끝나고 한참 뒤였다. 최종 발표 상황에서 손진영이 눈물을 흘리건 뭘 하건 당락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악플러에게 이유가 따로 있을 턱이 없지만 그의 눈물 아니 그의 생존을 쭉 지켜봤다면 차마 하지 못할 비인간적인 야유다. 손진영은 매번 가까스로 생존하고, 또 생존에 실패했다가 기적적으로 부활했던 위탄 참가자 중 가장 파란만장한 일기를 써왔다. 고기는 먹어본 사람이 잘 먹지만 매는 맞아본 사람만이 그 무서움을 안다. 몇 번의 탈락은 그에게는 지독하게 아픈 매였다. 비록 부활의 기쁨도 그래서 더욱 크겠지만 당락의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탈락의 두려움은 손진영에게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손진영의 기적은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손진영 본인 스스로도 위대한 탄생의 마지막 1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멘토인 김태원도, 그를 위해 기꺼이 문자투표를 보낸 지지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손진영의 부활스토리는 많은 좌절과 실패 앞에 노출된 이 시대 동병상련의 소시민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어주었다. 그것이면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그가 부족한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칭찬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위탄 생방송 참가자 12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그가 양쪽에 한참 어린 두 동생의 손을 잡고 주책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것도 수돗물을 튼 것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손진영이라고 나이 값하고 싶은 형의 체면이 없었겠는가. 그 자리에서 손진영은 이미 몇 번이나 경험했던 탈락의 고통에 이미 빠져있었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의 쓴 소리도 들었고, 지난주에는 앞 번호 1번 2번이 탈락해서 순번의 저주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무대에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손진영은 겉보기와 달리 마음이 여렸다. 그리고 영민하지도 않았다. 이미 앞에서 조형우가 탈락된 상황이라서 단순한 위대한 탄생의 진행 방식이 아니더라도 곧바로 탈락자를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판단도 하지 못했다. 손진영은 참 처절한 바보다. 그렇지만 이 바보에게 정이 가는 것은 그에게서 잘난 것 없는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비록 손진영이 만족스러운 무대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출연자들이 원곡을 완벽하게 소화하거나 혹은 뛰어넘은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위대한 탄생의 결정적인 문제는 참가자들의 미션의 소화능력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누군가는 최종 1인의 행운을 거머쥐기는 하겠지만 그들 중 누구도 발군의 재능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 딱히 손진영만 손가락질 할 상황도 아닌 형편이다.

그렇지만 미라클맨 손진영에게도 한계는 분명 있다. 지금까지 실력보다는 처절함으로 기적을 이뤄냈지만 다음 주에는 그것이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동정이 아닌 실력 그 자체에 대한 감동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선곡과 보기에 좋은 무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기적이 반복되면 더 이상 기적이 될 수 없듯이, 이제 손진영은 눈물보다는 자유롭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당락에 매달리는 처절함이 아니라 그의 노래를 기억하게 해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