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그룹의 선정성 문제는 결코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해묵은 논쟁도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일상사가 돼버린 것이 걸 그룹의 성적 어필 문제이다. 그러나 걸 그룹들에게만 이 문제의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 굳이 선정적 이슈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음악프로를 본다면 민망한 카메라 앵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렌지 카라멜 경우를 보자. 굳이 카메라가 로우앵글을 잡아 시청자의 관음을 자극하는 화면을 보게 된다. 오렌지 카라멜뿐만 아니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하의 실종이라는 자극적 유행어를 수도 없이 우려먹으며 여자 연예인들에게 짧은 치마와 바지 입기를 강요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소위 쩍벌춤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비판하는 척하지만 기실 언론의 목적은 선정성의 수정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더 많은 독자를 유인하고자 했을 뿐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선정성이라는 단어로 기사를 검색해본다면 바로 확인해볼 수 있다. 비판인지 홍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걸 그룹 선정성의 근본적인 문제는 논란이 걸 그룹의 생존방식처럼 굳어진 것에 있다.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걸 그룹의 활동이 논란 없이 끝나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걸 그룹의 수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특히 포미닛은 데뷔 초부터 논란의 집중 대상이 되어왔는데 이번에도 여전히 논란의 초점이 됐다는 점이 이제는 아예 습관이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는 의도가 걸 그룹 논란의 저변에 깔려 있음을 충분히 의심케 한다.
걸 그룹들의 논란이 여타 연예계 이슈처럼 어떤 실수에 의해 발생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됐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걸 그룹 마케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무대를 쥐고 있는 방송사가 가끔씩 제재의 칼을 휘두르지만 실제 방송 화면을 보자면 걸 그룹을 선정적으로 다루고, 그것을 제공하는 가장 큰 조력자일 뿐이다. 다만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들의 책임은 없는 것처럼 엄격한 표정 뒤에 숨을 뿐이다.
진정으로 걸 그룹 선정성 문제를 종식시키고자 한다면 방송 스스로의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걸 그룹 선정성의 성실한 조력자 어쩌면 배후 조정자일지도 모르는 방송이 뼛속 깊이 자각하지 않고는 논란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의미한 반복만 되풀이할 뿐이다. 근본적 해결은 멀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선 가뜩이나 짧은 치마를 입은 걸그룹 무대에 자극적인 로우 앵글을 잡아내는 방송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다. 논란이 생기면 마치 몰랐던 척 순진한 표정 짓지는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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