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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기어'라는 신조어는 무엇을 반영하나[culture critic] 중립을 표방하며 고수되는 진영 논리
윤광은 | 승인 2019.12.24 09:05

[미디어스] 신조어와 유행어는 그 시대를 관류하는 정서와 사고방식을 알려준다.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공감대가 나타났기 때문에 새로운 말이 필요하고, 그것이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에게 채택되었기 때문에 유행어나 신조어에 이른다.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 연결되고 이슈에 즉각 반응하며 무수한 말을 쏟아내는 요즘에는 과거보다 신조어의 등장이 잦아지지 않았을까 짐작이 든다. 일이십 년 전에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주된 네트워크가 신문방송 같은 매스 미디어였다. 유행어 역시 브라운관에서 어느 연예인이, 정치인이 뱉은 말이 전파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유행어는 기층에서 자라나는 말이므로 다중이 공유하는 의식이 더 농밀하게 반영될 것 같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통하는 신조어 하나는 ‘중립 기어’다. 자동차 기어 조작 상태에 빗대어진 말인데, 첨예한 이슈나 잘잘못이 걸린 사안이 제기되었을 때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말고 관망하라는 뜻이다. 단순한 말버릇이나 언어유희를 넘어 사회적 사안에 대한 판단 태도로 쓰이기에 여타 신조어보다 발화자들의 가치관이 더 밀도 있게 녹아있겠다. “중립 기어 박는다” 혹은 “중립 기어 박자” 같은 평서문, 청유문으로 뱉어지는 건 물론, “중립 기어 박아라” 같은 명령문으로 뱉어질 때도 있다. 타인에게 권유되거나 심지어 강요되며 공론장의 보편적 준칙으로 입법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 말이 배태된 배경은 몇 가지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초 단위로 이슈가 양산되는 온라인 공론장 시대엔 이슈 하나하나의 진위를 가리기 힘들고 진위가 뒤바뀌기도 한다.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된 00년대 이후 온라인 사회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몇몇 유명한 여론 재판의 역사를 축적해 왔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통한 잘못된 판단, 신상 털기와 같은 군중 폭력이 전례로 회자되는 것이다. ‘중립 기어’라는 말은 이런 온라인 여론의 한계와 맹목성에 대한 비판적 통념 위에 있겠지만, 무엇보다 몇 년 전 격발된 SNS 시대의 고발과 폭로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 같다. 저 말은 주로 성폭력 고발에 대해 쓰이고, 주로 쓰이는 장소는 남초 커뮤니티다. 실제로 ‘중립 기어’라는 말은 작년 초 ‘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 널리 나타났다. 그러니까 “성폭력 피해자가 있다고 동조하지 마라. 법정에서 결론 날 때까지 아무 말 말고 기다려라” 정도가 이 말의 용례에 해당한다.

사실관계가 확정되기 전에 확단을 미루자는 건 너무나 당연한 정론이다. 이런 원칙이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면 그 나름의 효용과 명분이 있겠지만 그만큼 맹점도 있다. 사안에 대해 판단을 미루는 게 늘 공정한 건 아니다. 이미 확정된 사실관계가 있다면 그 부분에 한해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런 단계적 판단은 사실관계의 퍼즐을 맞추는 데 필요한 낱개의 퍼즐 조각을 제공해 준다. 또한 이미 밝혀진 쟁점과 그렇지 않은 쟁점을 가려내 더 정확한 결론을 내리는 데 초점을 맞춰 준다. 사실 관계는 가만히 기다리면 언젠가 배달되는 택배가 아니다. 그 또한 쟁점을 가려 정황과 근거를 수집해 목적의식적으로 구성되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사실에 관해 발언하고 논쟁하는 과정을 불가결하게 밟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안의 성격과 경중에 따라 시급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안이 있고, 그를 위해 사실 판단이 선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논의를 피하는 건 사안을 묻어버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사실 관계의 탐색을 중단하고 사실 관계가 도래하길 기다리는 태도는 사실을 공증해 주는 기관, 검경과 법원의 판단으로 진실을 환원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는 법적 절차와 병행될 수 있다. 사안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수사를 끌어낼 수도 있고, 수사가 엄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촉구할 수도 있다. 법관은 진실을 신탁받는 예언자가 아니다. 법 또한 인간이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기에 완전할 수는 없다. 검경의 수사결과, 재판부의 판결이 공정하고 합리적인지 그 자체가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은 ‘중립 기어’의 신봉자들 역시 법원의 판결을 신봉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성범죄가 폭로되었지만 무죄 판결 난 사례는 '중립'의 근거로 인용되지만, 폭로 내용이 입증돼 유죄 판결이 난 사례들은 거론되지 않는다. 누군가 가해자란 판단은 한사코 유보되지만, 피해 호소인이 무고죄로 처벌 받아야 한단 말은 쉽사리 들먹여진다. 게다가 '중립 기어'는 법정에서 가려질 성질이 아닌 사안에도 남발되곤 한다.

‘중립 기어’란 말에는 사실 판단의 편의적 절대화와 중립적이지 않은 진영논리가 들어있다. 사실이 확실하지 않을 때 판단을 미루는 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정말로 정확한 사실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중립적 관망을 넘어서는 태도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입장이 부딪히고 어긋나는 곳을 확인하는 교차 검증이다. 중립 상태에 기어를 멈춘다는 묘사에는 사실을 탐구하는 적극성이 결여돼 있고, 그렇게 확인되는 사실마저 취사 인용된다. 이건 사안을 사실판단으로 환원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있단 걸 명분으로 이미 밝혀진 사실 조차 외면하며 '내 입맛에 안 맞는' 가치 판단을 유예함으로써 기각하려는 논법이다.

‘중립 기어’와 친족관계에 있는 건 '팩트'란 낱말이다. 요즘 인터넷에서 강조되는 팩트 또한 사실 관계에 대한 엄정한 판단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계열의 가치 판단, 그러니까 ‘선동’과 ‘감성팔이’의 대립 항에 가깝다. 사실의 형식을 물신화하며 사실 판단을 넘어선 비판적 사유를 배격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서의 현상을 유지하려 하는 보수성이다.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지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립을 지킨다면 그건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다른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당파성이 된다. 그것이 권력관계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는 사안이라면, 기성 권력에 의거한 질서를 지지하는 보수적 태도가 되는 것이다. 이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팩트는 곧 ‘주작’(조작을 뜻하는 신조어)이요, 그것을 주장하는 이들은 선동꾼이 될지 모른다. 

현실에 대한 몰가치한 태도와 현실에 주어진 질서를 의문시 하지 않는 동물적 태도, 단편적 사실 관계에 논의를 고착하는 지적 수준의 퇴행, 그리고 윤리적 기회주의. 이 사회 공론장을 배회하는 어떤 말들에는 이런 암갈색 징후가 깔려 있다. 

윤광은  https://brunch.co.kr/@mcwan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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