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버라이어티 <1박2일>은 봄을 맞이하는 4월 첫 주 제주도 여행에 정장을 입고 등장했습니다. 방송일이 4월 3일이고 행선지가 제주도인 점 그리고 그들이 상복이라 부를 수 있는 검은 정장을 입고 등장한 것은 의도적인 상징이라고 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4.3 항쟁과 제주도, 그리고 검은 정장

'1박2일'에게 제주도는 낯선 공간이 아닙니다. 상당히 자주 가는 여행지이기도 하고 최근에도 제주도를 찾았던 만큼 또 제주도인가라는 생각은 누구나 했을 듯합니다. 봄나들이를 가는 그들이 제법 먼 제주도를 선택한 것은 뭔가 이유가 있었어야만 합니다.

지난 여행 벌칙으로 제작진과 함께 사전 답사를 갔던 김종민에 의해 기획되었다고는 하지만, 철저하게 제작진의 의도하에 진행된 이번 여행은 4월 3일에 방송된다는 점에 무게감이 실릴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호사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김종민의 바람을 기본으로 나영석 피디가 만들어낸 특별한 추모는 많은 이들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정장 패션이 상복 스타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더욱 연예인이라는 특수성에서 봤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정장이라는 의미는 상복의 개념인 듯 보였습니다. 이는 제작진에서 정확하게 스타일을 지정해 모두가 동일하게 검은 정장을 입도록 유도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예능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은 의아했습니다. 그나마 이승기가 코사지로 포인트를 주며 나름 패션을 이끌기는 했지만 자유로 귀신 패션을 연상케 하는 김종민의 모습처럼 그들의 모습은 참 어색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고 개별 오프닝 무대를 만드는 과정은 흡사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을 패러디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한풀이를 하듯 자신만의 특별한 모습으로 등장한 멤버들의 모습은 상갓집에 가서 슬픈 영혼들을 달래주는 코미디언들의 숙명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제작진의 정확한 의도를 알지 못했던 멤버들은 "경조사 때나 입는 옷을..."이라며 검은 정장을 입고 여행길에 오르는 것을 의아해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나피디는 공항패션을 언급하며 "우리 팀도 옷 잘 입는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모두 비행기에 탑승하고, 다 함께 식사를 하며, 기내에서 촬영을 하지 않고, 멤버 각자에게 5만 원씩의 용돈이 지급됐습니다. 이는 이수근이 "그냥 집에서 쉬라고 하지 왜 여행을 가자고 해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과거 경험에 견줘 볼 때 호사스러운 조건이었습니다.

나름의 반전을 두고 예능적 재미를 담아둔 내용이기는 하지만, 4월 3일을 기해 제주도로 향하는 그들이 너무 들썩이지 않고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보기 좋았습니다. '휴머니즘 여행'을 표방한 것도 이유가 있겠지요. 6.25 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이들이 숨졌던 4.3 제주 항쟁은 휴머니즘이 실종되었던 광란의 시간이었으니 말입니다.

제주 4. 3항쟁은 일제시대를 끝내고 광복을 맞이하면서부터 시작된 사건이었습니다. 미군정 초기부터 지속되어 왔던 인민위원회와 대중과 일본 앞잡이에서 경찰이 된 이들과 우익단체들 간의 갈등이 무장봉기로 폭발하며 민족상잔의 비극이라 불리는 6.25 전쟁 이후 가장 많은 이가 숨진 사건입니다.

일본군이 빠져나가고, 제주도민 6만여 명이 제주도로 돌아가며 급격한 취업난이 일어났습니다. 콜레라로 인해 수백 명이 희생되고, 생필품 부족, 관료들의 수탈이 거세지며 이에 불만을 느낀 도민들은 1947년 3월 1일 항쟁을 했습니다. 이에 경찰이 도민들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고 시위를 구경하던 일반 시민들 다수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되며 지옥 같은 4.3 항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미군정과 친일의 앞잡이 경찰, 국우주의자인 서청들과 단선, 단정과 조국의 자주통일, 극우 세력의 탄압에 저항하는 이들의 대립은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종결되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미군정과 극우 세력의 탄압은 극에 달했고 군부대가 제주도로 입성하며 중산간지역을 다니는 모든 이들을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내리며 대대적인 살육의 시간은 지속되었습니다.

우익과 좌익이라는 이념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된 아픈 역사는 민주 정부가 들어선 2000년 1월 12일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비로소 망자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63주년이 되는 2011년 4월 3일은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MB정권 들어 4.3항쟁 희생자에 대한 명예 회복은 중단되고 조직적인 역사 왜곡을 통해 군경에 의해 자행된 학살을 정당화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4.3항쟁 희생자에 대한 추모마저도 사라져 버린 아픈 시간 속에서 예능 <1박2일>이 그 의미를 담은 방송을 내보낸 것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아픈 역사를 조롱하듯 왜곡하는 현 정권에 대해 제주도에서 무참하게 희생된 수천 명의 영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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