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서 대전하면 축구 특별시라는 단어가 금방 떠오릅니다. 지난 2003년 6월에 무려 4만3천77명이라는 기록적인 관중이 리그 경기에 들어차는 등 지방 축구팀 가운데 가장 뜨거운 열기를 발산해 내면서 남다른 축구 사랑을 과시한 곳이 바로 대전광역시, 그리고 대전 시티즌이었습니다. 취약한 여건 속에서도 저력 있는 축구를 보여주며 2001년 FA컵 우승의 기적, 그리고 2003년 컵대회 준우승, 2007년 리그 6강 등 나름대로 성적도 냈던 대전은 최초의 시민구단다운 열기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저력을 앞세워 축구특별시의 면모를 보여 왔습니다.

그랬던 대전이었지만 최근 3년 사이 이 축구특별시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2007년 시즌 중반에 팀을 맡아 6강에 오르는 기적을 만든 김호 감독이 2009년 중도 하차한 것을 시작으로 팀 성적도 하위권을 줄곧 맴돌면서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시민 구단 여건상 선수 수급 역시 원활하지 않았고, 더 열악해지는 훈련 환경은 마음 놓고 축구하고픈 선수들의 의지를 흔들기도 했습니다. 이렇다 할 눈에 띄는 스타도 많지 않았고, 패기 있는 축구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데다 팀 운영에 대한 내외적인 잡음도 생기면서 축구특별시의 위상마저 꺾일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꼭 '축구특별시 재건'을 꿈꾸며 새 시즌을 맞이한 대전 시티즌이 초반부터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주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첫 경기에서 외국인 선수 박은호(바그너)가 2골을 넣으며 울산 현대에 2-1로 이겼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지만 지난해 우승팀 FC 서울과 1-1로 비기고 6강에 오른 경남 FC에 2-0 승리를 거두면서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라운드 강원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에만 3골을 몰아넣으며 3-0 완승을 거두고 3승 1무를 기록하며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서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직 4경기이기는 하지만 저력 있는 팀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10년 만에 K리그 단독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 덕분에 대전팬들의 자부심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 대전 시티즌 상승세의 선봉장 박은호
당초 약체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대전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무너지는 팀은 아니었습니다. 순위 싸움이 치열한 후반기 막판에 '고춧가루 부대'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이따금씩 주목받던 팀 가운데 한 팀이 바로 대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초반부터 강력한 선수들의 의지, 그리고 뚜렷한 감독의 지도 철학을 앞세워 선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은호라는 외국인 선수가 그야말로 대박 플레이를 펼치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다른 선수들 역시 힘을 내면서 4경기 8득점-2실점(경기당 2득점, 0.5실점)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기록'도 내며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성적도 좋고, 스타도 나오고 그야말로 대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요즘만 같아라' 하는 기분으로 신바람을 내고 있습니다.

중계를 통해 대전 축구를 보고 느꼈지만 확실히 스타일이나 힘에서 지난해와는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전 특유의 공격 위주 스타일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기본적으로 갖추면서 빠르고 정확한 한 방을 통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이른바 '실리 축구'를 통해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5명까지 쌓는 견고한 수비벽은 그야말로 철옹성과 같았으며, 빠르게 이어지는 역습플레이와 정확한 세트피스 능력은 무려 8골을 넣는 성과로 이어지며 승점 3점을 3번이나 챙기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공격과 수비가 연습한 대로 잘 이뤄지고 연이은 상승세로 선수들의 자신감이 더 해지면서 그들도 꿈꿔보지 못한 리그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역시 대전 돌풍의 핵심 주역은 팀내에서 기대했던 '투톱' 박은호와 박성호였습니다. 박성호의 포스트플레이, 박은호의 정확한 골결정력은 대전 공격의 공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순도 높은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강력한 세트피스를 앞세워 골감각이 상승세에 있는 박은호에 점점 의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잠시 있었지만 이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4라운드 강원전에서 박성호가 2골을 몰아넣으며 보다 강력한 공격력을 장착하게 됐습니다. 탄탄한 수비력과 패기 있는 중원,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보다 강력해진 공격력까지 갖춰지며 초반에는 정말 어느 팀에 견줘도 정말로 전혀 지지 않는 팀의 면모를 보여준 대전 시티즌이 됐습니다.

▲ 왕선재 대전 시티즌 감독
물론 왕선재 감독의 말처럼 안심하기도, 또 큰 기대를 하기도 이른 건 사실입니다. 아직 시즌의 1/5도 지나지 않았고 경쟁팀들이 점점 전력을 갖춰나가기 시작하면 고비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왕 감독의 판단입니다. 여기에 스쿼드가 얇고 경험 많은 선수들이 적어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제대로 극복할 만한 요소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은 상승세인 대전에 엄청난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2009년에 6-7월까지 1위를 달리다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며 결국 6강에도 오르지 못했던 광주 상무(현 상주 상무)의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전이 이전과 달라 보이는 것은 감독과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경기 중에 제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대전 선수들은 올해만큼은 뭔가를 보여주며 그들이 원했던 것도 당당히 말하고, 대전 팬들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어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지와 마음이 일단 시즌 초반에는 잘 나타나면서 그들 스스로 놀라운 성과도 내고 대전 팬들을 설레게 하면서 새로운 꿈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전과 다르게 컵대회가 아닌 리그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도 어느 해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 눈 팔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목표가 있다 보니 선수들은 더욱 의지를 갖고 경기에 뛸 수 있게 됐고, 그에 따라 매 경기마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 축구특별시답게 팬들의 응원도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시즌 전부터 시즌 티켓북이 무려 1만3000장이나 팔리는 등 뜨거운 열기를 다시 발산해내고 있는 대전 팬들의 응원은 선수들의 상승세를 더욱 부채질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바야흐로 열기도 뜨겁고, 성적도 좋은 진짜 축구특별시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올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상도 해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아직 초반이기에 몇 경기 갖고 섣불리 예측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축구특별시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공포의 외인구단' 대전 시티즌의 부활은 대전팬 뿐 아니라 K리그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리그를 재미있게 바라보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꾸준하게 상승세가 이어져 그들이 계속 자신 있어 하는 '천적' 수원 삼성과 상위권 자리에서 맞대결을 가져 또 한 번 기분 좋은 승리를 챙기고 1-2위를 다투는 상상도 해봄직 합니다. 물론 그렇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전력이 더 갖춰져야 하고, 현재의 기세가 그대로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달라붙습니다. 그래도 대전 시티즌의 '축구 특별시 재건' 도전이 참 기대되는 도전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난해 제주 유나이티드의 기적 같은 준우승 이상의 '드라마틱한' 결말을 내는 대전 시티즌이 될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