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좀 잠잠하니 이번에는 1박2일이 나섰다. 무한도전과 달리 여행이라는 기본 테마 때문에 시사적 상징을 집어넣기가 매우 어려운 1박2일이라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마침 방송되는 날의 날짜가 기회를 준 것 같다. 1박2일이 방영되는 4월 첫 일요일은 3일. 제주 4.3 항쟁 63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1박2일은 제주도로 향했다. 그것도 출연진 모두가 검은 정장을 하고 말이다.

1박2일이 정장을 그것도 검은 정장을 입고 여행을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에 대한 나영석PD의 직접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이수근의 애드리브와 애써 의미를 감추려는 자막들로 인해 그 의심은 더욱 커져갔고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예능 프로인 1박2일이 결코 내놓고 말할 수 없는, 그러나 시사 프로그램들조차 차고 넘치는 이슈에 떠밀려 잊고 말았던 제주 4.3 항쟁을 기리려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아주 결정적인 힌트는 이번 여행 콘셉트에 있었다. 자기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김종민에게 여행 콘셉트까지 물어보는 불필요한 과정까지 담아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를 끌어낸 것이다. 사실 휴머니즘과 검은 정장은 아무 관계가 없다. 게다가 그냥 정장이 아니라 검은 정장이라는 점에서 나영석 PD의 의도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것이 됐다. 4.3 항쟁을 직접 다룰 수는 없어도 63년 전의 아픔에 대해서 잊지 않는 휴머니즘이라도 발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그렇게 휴머니즘을 콘셉트로 정한 나영석 PD가 왜 점심식사부터 돌변하여 출연진 전원을 낙오시키는 미션을 남겼을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예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면 미션의 이유는 충분하다. 내친 김에 4.3 항쟁과 연결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확대해석하는 것은 예능을 너무 무겁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삼가겠지만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4.3 항쟁의 결말은 귀순자에 대한 약속이 6.25전쟁의 발발로 인해 백지화되고 결국 가족들까지 무참하게 희생됐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확대하자면 이번 주 1박2일은 전체가 거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의도를 숨겨야 했고 예능으로서 충실하기 위해서 좌충우돌 전원 낙오를 생각해낸 것 같다. 그리고 버라이어티 정신에 충실한 1박2일 멤버들은 오히려 미행하는 나PD 일행을 비웃기까지 하며 촬영도, 미션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웃음도 모두 챙기는 데 성공했다. 만일 1박2일 일행들이 낙오 미션에서 재미를 만들지 못했다면 나영석 PD가 고민에 고민을 더했을 제주 여행의 의미는 그만 퇴색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무리 1박2일 인기가 많다 하더라도 의미의 무게에 예능의 본질이 억눌려서는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PD가 멤버들의 역량을 믿을 수 있기에 가능했던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이 있어 가능했던 무모한 도전이었기에 평소보다 재미는 좀 덜했을지 몰라도 의미는 아주 크다. 나 PD는 평소 사람 좋은 미소만 봐서는 참 서글서글한 사람인데 이런 도박에 가까운 기획을 하는 것 보면 의외로 배포도 참 큰 사람이다. 그런 배짱으로 나PD가 대형사고 한 번 치고 말았다. 예능은 이제 다큐를 넘어 시사까지도 넘보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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