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타인의 삶 2탄으로 마련한 정준하와 넥스 히어로즈 1루수 이숭용 선수 편은 잔잔한 감동과 깨소금 같은 재미가 잘 버무려진 담백한 비빔밥 한 그릇을 먹는 느낌이었다. 사람 좋은 동네 바보형 정준하 대신 하루준하로 등장한 이숭용에게 박명수가 주눅 든 것처럼 행동한 것이 상황극에 뼛속까지 익숙한 박명수 등 무한도전 멤버들의 감이 살려준 것이었다. 정준하가 직접 쓰고, 그린 하루는 아니었지만 이숭용의 카리스마와 멤버들의 적응력으로 정준하 본인은 느끼지 못했지만 하루준하 이숭용을 통해 다시는 볼 수 없을 대리만족할 시간을 만들어냈다.

또한 넥센 히어로즈에 하루숭용이 된 정준하도 워낙에 착한 역할은 누구보다 잘하기에 팀 내 최고참 이숭용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비록 정식 경기가 아닌 연습경기였지만 포스트 시즌에 레귤러로 뽑히기 위해서는 누구나 감독 눈에 들어야 할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이었지만 하루숭용 정준하의 어색하지만 사람 좋은 표정은 그들의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천하무적야구단을 통해서도 그랬듯이 넥센 김시진 감독은 티비에 대단히 우호적인 사람이었다.

정준하의 오래고 간절한 꿈인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은 단지 유니폼만 입고 연습을 같이 하는 정도라도 어쩌면 충분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기아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 때도 팀이 아주 크게 이기거나 그 반대일 경우에 그것도 9회말 마지막 타석에 정준하를 내보내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김시진 감독은 정준하를 7회 1사 후에 정준하의 타석을 마련해주었다. 운이 없었던 것인지 좋았던 것인지 상대는 기아의 신인투수 심동섭. 20살을 갓 넘긴 어린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만일 그때 마운드를 고참 선수가 지키고 있었다면 정준하의 바람대로 좀 살살해주거나 봐줄 수도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프로 2년차 심동섭 투수는 상대가 정준하이건 이숭용이건 타석에 선 타자로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구부터 139의 구속을 뿌려댔다. 그것이 타석에 선 순간에는 조금 섭섭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이 오히려 기분 좋은 배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심동섭 선수가 정준하를 타자로 인정하고 전력투구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투수와 맞선 정준하도 의외로 잘했다. 풀 카운트까지 끌고 간 끈질긴 승부 근성을 보인 것도 그렇지만 프로 투수의 공을 두 개나 커트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해 줄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에서 기다려볼 수도 있었겠지만 정준하는 과감하게 스윙을 가져가 보기 좋게 삼진아웃을 당했다. 야구에서는 가만히 서서 루킹 삼진아웃 당하는 것을 가장 나쁘다고 한다. 비록 안타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룰 그 현장에서 평소의 소극적인 정준하가 아니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꿈과 프로야구에 진정과 열정을 갖고 임하고 있나를 전해주는 아름다운 삼진아웃이었다. 타인의 삶은 단지 남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꿈을 위해 평소와 다른 정준하가 되었다.

그곳엔 무가 없었다...!!

여기까지는 훈훈한 이야기지만 이제부터는 웃음의 저격수 무한도전 자막에 대한 고발(?)이다. 하루준하 이숭용은 몸풀기 게임인 두뇌재개발 퀴즈부터 예능인들의 발랄한 재치와 순발력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무한도전을 빠지지 않고 시청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마임을 읽는 능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예능 초보 이숭용을 놀려먹기 위한 멤버들의 일치단결 몰아가기에 당한 부분도 많았지만 어쨌든 무한도전 멤버들에게는 진짜로 텔레파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엉성한 마임을 척척 알아맞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1차 게임이 두뇌게임이었다면 두 번째 무조건 몸을 써야 하는 김장특집은 이숭용에게 분명 유리한 것이었고, 예상은 들어맞았다. 그런데 여기서 노홍철이 사고를 하나 쳤다. 정확히는 무, 배추를 지키려는 아주머니들의 사고였다. 아주머니들의 수비를 가까스로 뚫고 노홍철은 무, 배추를 들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들이 그것을 그냥 두지 않고 달려들어 악착같이 뺏어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치마를 입은 노홍철이 식겁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주머니들의 장난에 노홍철의 치마속이 아주 살짝 침범당한 것이다.

그걸 그냥 넘길 사기꾼 노찌롱이 아니었다. 아주머니들이 물러나자 그 자리에서 바로 쭈그려 앉아 우는 시늉을 하면서 “누가 제 치마에 손 넣었어요. 거기 무 없었어요”했다. 그때 바로 문제의 19금 자막이 작력했다. 그곳엔 무가 없었다... 라고 우는 노홍철을 가릴 만큼 큼지막한 자막이 등장했다. 무심히 보면 그냥 그런 내용이겠지만 평소 무한도전 자막의 재주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자막이 뭐가 어떻다고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상상하기에 따라서 킥킥거리는 웃음 정도도 가능하고 제대로 19금의 상상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면 배꼽을 잡고 웃을 상황이었다. 노홍철의 치마 속엔 무가 없었다. 그럼 무엇이? 여기까지다. 더 이상 표현하면 코미디가 안 된다. 거의 다큐터치로 흐르던 정준하의 타인의 삶을 야무지게 반전시킨 한 장면이었다. 예전 레슬링 특집 때 삼고초려를 삼초고려로 바꾼 순발력 넘치는 자막의 힘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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