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탈락을 알고나 있었던 것처럼 이 아이는 <나 가거든>이란 노래를 불렀다. 가수가 노래 따라 간다고 열한 살의 어린 뮤즈 김정인은 지금까지처럼 마지막도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겨두고 위대한 탄생을 떠났다. 그러나 비록 프로그램에서는 떠났지만 이 감동스러운 아이를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가 떠남으로 해서 위대한 탄생을 볼 이유가 하나쯤은 줄어든 큰 아쉬움도 역시 남겼다. 본론을 열기 전 이 어린천사를 위한 헌사를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탄생이 시작하고 지금까지 이 아이에 대해서 말하기를 주저했다. 뭐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아니다. 성인이라면 좋다 나쁘다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아직 처절한 경쟁에 세우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노래를 들으면 참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다. 나니아의 연대기처럼 집 안 어딘가를 뒤지면 아주 먼 동화시대로 향한 통로가 있을 것 같은 몽상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자꾸 눈을 감게 된다.

나는 가수다나 위대한 탄생은 노래가 주이기 때문에 티비를 틀어놓고도 굳이 시선을 화면에 붙박아두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김정인이 노래를 할 때면 조금 상황이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화면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눈을 감게 된다. 그렇게 아주 잠시지만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려는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인 것이다. 이런 아이의 노래를 평가를 하고, 거기에다 점수까지 매겨야 하는 위탄 멘토들은 참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이제 그들은 행복할까?


김태원의 감동 방정식을 통해 축제를 만들어라

이제 다음 주부터는 위대한 탄생이 120분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생방송이니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스포일러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큰 기쁨이다. 그렇지만 가장 큰 걱정은 시청자 참여가 본격화되면서 발생할 것이 분명한 마녀사냥이다. 지금까지 찬사와 비난으로 극과 극 체험을 하고 있는 멘토들이 더욱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위탄이 슈스케와 달리 심사위원 점수를 크게 반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지 탈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릴 몇몇 참가자들이 가장 걱정이다.

결국 이런 현상들이 요즘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의 폐단을 지적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오디션 뒷말이 없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아마 한국이 가장 심한 곳이 아닐까 싶은데, 그만큼 우리 사회는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는 반증도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도출된다고 하더라도 의심을 품는 사람들은 생겨날 것이고, 그것이 또 다른 의혹을 자극하는 연쇄작용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슈퍼스타K를 통해 경함한 바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탄생의 출생은 이름과 달리 조금 부끄러운 탄생이었다. 그러나 과정을 통해서 아직 위대함까지는 무리더라도 꽤 괜찮은 탄생이 돼가고 있다. 이제 그 이름을 완성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이 예선의 멘토스쿨처럼 독창성을 살릴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지금 알려진 대로라면 위탄의 결선무대는 슈스케와 별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시청자 문자투표 비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는 위탄이 가진 출생의 비루함을 씻어내기는 커녕 슈스케 본선을 떠올리게 하고 말 것이다.

위대한 탄생이 슈스케로부터 벗어날 최선의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김태원 멘토스쿨에서 찾으면 된다. 김태원은 그의 라이브 무대에 탈락자 두 명을 세웠다. 승자가 받아야 할 당연한 스포트라이트를 패자에게 내준 것이다. 그것은 분명 상식을 뒤집은 반전이었고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알고 나면 정말 쉬운 감동의 방정식이었다. 이 김태원의 감동 방정식만 생방송 무대에서 잘 살린다면 위타는 슈스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격과 함께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의 문제를 해결할 단서까지 찾게 될 것이다.

김태원 방정식의 미지수에 무엇을 대입하느냐는 제작진의 고민과 연구로 고안해야 할 것이지만 적어도 위탄 생방송 무대가 탈락자의 눈물만으로 반복되는 엔딩을 보여주지는 말기를 바란다. 김태원의 멘토스쿨이 으뜸이 된 것은 단순히 패자배려라는 것만은 아니다. 김태원이 이 시대에 주목받는 데는 그의 상식과 통념을 뒤집는 자유로운 발상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 김태원의 역발상이 오디션과 서바이벌이라는 경쟁구도를 사람냄새 훈훈한 휴먼스토리로 승화시켰다. 그것만 살린다면 위대한 탄생 본선이 승패의 각축장이 아니라 축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그것에 한 발짝 정도는 다가서는 성과는 담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탄 시즌2는 그것만으로도 이유를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