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법무부가 제정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하 법무부 훈령)이 시행 10일을 맞았다. 법무부 훈령에 따라 수사기관은 언론에 피의사실을 공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발’로 추정되는 단독보도가 다수 나오고 있다. 이에 “이러한 보도는 언론과 수사기관의 합작품이다. 법무부 훈령이 핵심을 비껴갔다”는 지적이 나왔다.

9일 정성호 자유한국당 의원·정갑윤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입법조사처는 <피의사실공표 및 범죄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현황 및 개선과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유환구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는 “법무부 훈령이 시행됐지만 가장 문제가 됐던 피의사실 공표 방식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유환구 기자는 “피의사실공표 경로는 차장검사와의 티타임 등 검찰의 공보활동 과정에서 나오는 것과 언론이 사건관계인이나 수사담당자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취득한 피의사실을 국민 알 권리를 내세워 보도하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고 밝혔다.

유환구 기자는 "훈령에 따라 티타임이 폐지되고 수사상황 공표여부를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가 결정하게 되는 등 검찰의 공보활동은 큰 변화를 맞게 됐다"며 "하지만 언론을 통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대책은 ‘언론을 접촉하지 마라. 접촉해도 전문 공보관을 통하라’는 내용이 신설된 것 정도가 전부”라고 지적했다.

유환구 기자는 “법무부 훈령에 따르면 사건관계인의 진술, 증언 등은 모두 공개가 금지된 정보”라면서 “하지만 언론의 ‘검찰발’ 보도에서 금지된 정보들이 공표되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실제 SBS 8뉴스 8일 자 <[단독] "靑 행정관, 첩보 하달 이후 울산 경찰에 전화"> 보도는 검찰발 소식을 전하고 있다. SBS는 “검찰은 청와대가 첩보를 하달한 뒤 인사에 불만이 있을 수 있는 전임 수사팀이 첩보 하달 여부를 알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해당 경찰관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채널A 역시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했다. 채널A는 9일 <[단독]“靑 행정관, 김기현 측근 수사경찰 여러 명에 전화”> 보도에서 "검찰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소속 A행정관이 지난해 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을 수사한 복수의 경찰 관계자에게 전화한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채널A는 A행정관의 구체적 통화내용을 입수해 보도했다. 모두 검찰이 제공한 정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환구 기자는 “물론 언론사들이 취재원 보호를 위해 외곽 취재를 통해 확보한 정보를 ‘검찰발’로 보도하는 때도 적지 않다”면서 “다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독자들이 보기에는 검찰 수사 과정이 언론 보도를 통해 매일 중계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유환구 기자는 ‘검찰발’ 보도가 “언론과 수사기관의 합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유환구 기자는 “수사 과정에 대한 ‘단독’ 보도들은 보도하지 않는다고 사장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면서 “기소가 되면 공소장이나 공판 과정에서 어차피 드러날 사실들이다. 국민 알 권리가 아니라 ‘타사보다 먼저 알 권리’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환구 기자는 “수사기관 역시 수사 권한을 통해 확보한 독점적 범죄정보를 기관 홍보나 언론사 관리, 수사 동력으로 활용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유환구 기자는 “명확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수사기관이 직접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확인하는 것에 대한 예외규정을 확대해야 한다. 또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오보나 루머에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주는 것이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유환구 기자는 “검찰 등 수사기관은 내부 감찰 등을 강화해 수사담당자에 의한 피의사실공표를 실질적으로 근절시킬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지혁 법무부 검찰국 형사기획과 검사는 “(수사 정보가 담긴 보도를) 언론에서 접하고 있다”면서 “나도 왜 이런 기사가 나오는지 사실관계를 알 순 없다. 다만 법무부 훈령은 사건관계인의 인권 보장과 국민 알 권리의 조화로운 균형을 꾀하기 위해 만들었다. 아직 시행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한지혁 검사는 “피의사실공표죄를 둘러싼 문제점을 살펴보고 개선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윤승영 경찰청 수사국 수사기획과장 총경은 “경찰도 검거실적을 홍보하고 싶은 마음에 수사상황을 언론에 흘린 적이 있을 것”이라면서 “또 언론의 적극적인 취재에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응하는 부분이 있다.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때 여론을 활용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승영 총경은 법무부 훈령이 법령으로 격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승영 총경은 “법무부 훈령이 모든 수사기관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위해선 법령으로 가야 한다”면서 “수사상황 공개는 제한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하루빨리 법령화 작업이 되어 현장의 혼란이 종식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주승희 교수는 무분별한 피의사실공표를 막기 위해서 충분한 정보공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개가 결정된 사건에 한해서는 정보를 충분히 전달해 오보 및 피의자 권리 침해를 막자는 취지다.

주승희 교수는 “현행 법무부 훈령은 ‘형사사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공개가 허용된 사건에 대해서는 가급적 국민에게 정보를 충분하고 명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면) 국민 알 권리가 형식화될 우려가 있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의해 오히려 피의자 권리가 더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주승희 교수는 공적 인물과 관련된 피의사실 공표기준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승희 교수는 “고위공직자 등 공적 인물의 피의사실에 대해서는 알 권리를 두텁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보다 완화된 요건 하에서 피의사실이 공개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승희 교수는 법무부 훈령이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주승희 교수는 “(법무부 훈령을 통해) 수사기관이 흘려주는 정보를 ‘단독기사’라는 타이틀로 보도해 온 언론 관행을 개선할 수 있다”면서 “또 수사기관에 의한 피의사실공표행위를 전보다 엄격히 관리함으로써 여론재판, 피의자 권익침해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피의사실공표 및 범죄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현황 및 개선과제>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이번 <피의사실공표 및 범죄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현황 및 개선과제> 토론회는 9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열렸다. 발제자는 주승희 덕성여대 교수, 강동욱 동국대 교수였다. 토론자로는 조기영 전북대 교수, 한지혁 검사, 윤승영 경찰청 수사국 총경, 김준현 법무법인 우리로 변호사, 유환구 한국일보 기자, 조서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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