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흥길님의 ‘완장’이라는 소설이 있다.

'완장'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신분이나 지위 따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소설 ‘완장’은 완장의 의미를 '권력자'내지 ‘독재자’ 따위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북 김제의 백산저수지 관리원 임종술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주인공이 ‘완장’을 봉사와 헌신, 책임감 등의 의미나 '권한'의 의미로 생각하는 대신, 하나의 '권력'이라는 인식에 집착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군림하다가 끝내는 큰 권력으로부터 버림받고 권력의 허황됨을 깨닫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는 소설이 바로 소설 '완장'이다.

이렇듯 평범하고 순박했던 시골 아저씨를 권력의 화신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는 '절대 반지' 같은 존재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완장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우리네 정치인들의 예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완장의 부정적 측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축구대표팀의 새 주장 박주영에게만큼은 주장 완장이 그야말로 그에게 부족했던 2%를 채워준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공석이 된 대표팀 주장의 자리를 놓고 여러 후보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조광래 감독의 선택은 박주영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대표팀 내에 박주영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도 있었지만 조광래 감독은 처음부터 박주영을 점찍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걱정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표팀 주장이 대내적으로 선수들의 리더로서 팀내 분위기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외적으로 언론 등을 주로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평소 내성적인 모습을 보여 왔고, 특히 언론에 대해서는 '기피증'을 의심할 정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박주영이 주장 완정을 찰 경우 주장으로서의 역할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경기에서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필자 역시 그와 같은 걱정을 하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걱정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박주영은 요즘 대표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TV화면을 통해 지켜본 대표팀 훈련장면과 최근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박주영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힘이 넘쳤으며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잦아진 각종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도 박주영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고 힘 있는 어조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조리 있게 전달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K리그 경기와 대표팀 경기가 벌어졌던 경기장에서 박주영을 취재했던 필자의 입장에도 박주영의 최근과 같은 모습은 이전에 박주영에게서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한 마디로 주장 완장이 주는 건강한 긴장감이 박주영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와 같은 박주영의 변화에는 유럽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얻어진 풍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축적된 심리적 여유가 바탕이 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고, 작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의 '와일드 카드'로 출전, 어린 후배들과 매 경기 감동적인 승부를 펼치며 박주영 스스로 밝힌 대로 '인생에 대해 배운' 탓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새 주장에 대한 걱정의 시선들을 뒤로한 채 박주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표팀 주장을 준비해온 선수인 것처럼 활약하고 있다.

소설 '완장'에서 주인공 임종술의 팔에 채워진 완장은 '독재자'의 상징이지만 조광래호의 '캡틴' 박주영의 팔에 채워진 완장은 헌신과 책임감, 그리고 자신감으로 무장한 진정한 리더의 상징처럼 보인다.

모쪼록 박주영이 강등의 벼랑끝에 몰린 소속팀 AS모나코에 합류한 이후에도 대표팀 주장 완장으로부터 얻은 좋은 기를 그대로 유지,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하고 본인은 꿈꾸던 빅클럽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기를 기대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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