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대단한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로열 패밀리>는 회가 거듭될수록 숨겨졌던 진실들이 드러나며 주제를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거대 재벌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군상을 통해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과정은 드라마를 흥미롭게 이끌고 있습니다.

K의 반격, 무릎 끓은 첫째 며느리

재벌가를 둘러싼 이들의 탐욕과 욕망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기존 재벌 이야기와는 달리, 돈 이야기가 아닌 인간 군상에 대한 밀도 있는 이야기는 드라마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원작 <인간의 증명>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숨겨진 이야기들이 조금씩 드러나며 그들이 맞이할 파국적 결말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해집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최근 재벌가 딸들이 사업 최전선에 나서며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 <로열 패밀리>에 등장하는 여성 경영진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근본이 모호한 K가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면서 문제는 시작되었습니다. 재벌가들의 결혼은 또 다른 장사라고 불릴 정도로 경영상 필요한 거래를 위해 치러지는 것이 상식이라 알려져 있지요. 실제 우리 사회의 재벌가 혼맥을 살펴보면 상위 100대 기업들은 대부분 친인척 관계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략적 혹은 우연이 필연이 된 상황에서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어 모진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숨긴 채 살아왔던 김인숙은 회장 공순호가 후계자로 생각해왔던 둘째 아들의 죽음과 함께 쫓겨날 위기에 처해졌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사랑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주기는 했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까지 숨진 상황에서 눈엣가시 같았던 김인숙을 가족 울타리에 머물도록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모진 압박이 시작되고 그럴수록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나는 김인숙 곁에는 삼시를 모두 통과한 지훈이 있습니다. 과거 범죄자로 머물 수도 있었지만 구원을 손길을 내밀어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준 인숙을 위해서라면 지훈은 기름통을 메고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전회에서 밝혀졌지만 지훈과 인숙(과거 마리라 불리었던)은 잘 알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지훈의 기억 속에 그녀는 마리이지 이름이 바뀐 인숙은 아닙니다. 인숙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이 존재하는 것은 어린 시절 우유를 가져다주던 고마운 누나에 대한 감정선이 그대로 살아있었기 때문이지요.

기억은 거의 사라졌지만 모든 감각이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인숙과의 인연은 그렇게 현재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숙이 꿈꾸는 복수극에 어린 지훈만은 끌어들이기 싫었다는 그녀의 고백처럼 JK에는 그녀가 복수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복수는 잔인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고 그런 잔인한 복수극에는 당연히 강렬한 저항이 따르겠지요. 그런 저항 속에 쓰러질 수도 있기에, 지훈을 자신과 함께 전사할 수도 있는 이 전쟁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고백은 이후 진행될 전투가 얼마나 치열할지를 예상하게 합니다.

김인숙의 과거를 캐고 다니며 짓밟으려는 첫째 며느리를 무릎 꿇리기 위해 그녀는 '딜랑' 유치전에 뛰어듭니다. 공회장이 그토록 원했지만 얻을 수 없었던 그 명품 브랜드를 김인숙의 복수심만으로 유치하게 된 것이 다소 황망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김인숙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 유치전을 통해 김인숙이 무엇을 가지고 있고 어떤 존재인지를 공회장과 가족들에게 모두 알린 그녀는 비로소 JK 패밀리에 합류하게 됩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 내부에 들어서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김인숙은 모든 것을 파괴하거나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이너서클 안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유력한 대권 후보의 아내와의 친분을 통해 자신이 JK그룹에 필요한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탁월한 전략과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공 회장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갔습니다. 공회장의 인정을 받고 다른 가족들을 굴복시킬수록 김인숙에게 다가오는 것은 씻어낼 수 없는 과거의 기억과 흔적들입니다.

그녀를 무너트릴 수 있는 아킬레스건인 그 과거가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오며 성공과 몰락이 동시에 다가오고 있음을 드라마 <로열 패밀리>는 탄탄한 극본으로 긴장감 있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밀짚모자와 곰인형, 숨겨진 진실은 어떻게 드러날까?

모든 것이 김인숙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균열의 조짐은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그래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마리는 그녀를 옥죌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존재라는 것을 7회 두 명의 인물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사회보장 신청하러 온 이태원 할머니의 존재는 이후 김인숙의 발목을 잡고 위기에 몰아넣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인숙의 아킬레스건을 알고 있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그녀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김마리에서 왜 김인숙이 되었는지, JK에 강한 복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태원 할머니가 공무원에게 건넨 말 중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20년 전 외국인에게 벌어들인 돈이 JK 물산 신발 판 것보다도 많았다"는 발언은 김인숙의 과거 인물인 김마리와 JK 물산과 연결되고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아픈 기억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는 의미겠지요.

궁지에 몰린 이태원 할머니는 과거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JK가의 새로운 안주인이 되어가는 김인숙의 목을 조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20년 전 지훈과 마리의 관계와 그녀가 왜 그런 가공된 삶을 살아가며 복수의 화신이 되었는지는 그녀의 움직임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될 듯합니다.

이태원 할머니와 함께 김인숙을 기겁하게 만들 중요한 인물이 입국하는 모습을 짧게 보여준 것 역시 공회장에게 인정받아 JK의 식구가 된 그녀에게 위기로 다가옵니다.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이 이뤄지면 이뤄질수록 그녀를 옥죄는 존재들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훈의 서재에 있던 곰 인형과 공항을 통해 입국한 한 남자의 배낭에 담긴 곰 인형은 닮아 있습니다. 지훈과 인숙을 연결하고 과거의 모든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핵심적인 인물이 등장했다는 것은 <로열 패밀리>를 더욱 긴장감 넘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원작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첫 단추로 작용했던 밀짚모자가 이 드라마에서는 곰 인형으로 변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기대됩니다.

숨겨진 진실은 김인숙을 몰락으로 이끄는 도구이다

아수라 백작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염정아의 소름끼치는 반전과 여자 배우들이 펼치는 감정대립이 절묘하게 잘 엮어진 <로열 패밀리>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원작과 배경과 인물 구성들을 많이 변경해 언뜻 보면 전혀 다른 드라마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도록 만든 점 역시 제작진에게 칭찬할 일이겠지요.

<로열 패밀리>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고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이들 역시 여성들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어쩌면 철저한 여성 드라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훈이라는 존재가 그 중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인숙을 돕는 엄집사의 존재 정도가 <로열 패밀리>에서 존재감을 보이는 남자들일 정도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여성입니다.

거대 재벌의 총수가 여성이고 새로운 후계자 역시 남자가 아닌 여성이라는 설정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국내 재벌가들의 구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그렇기에 이 설정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며 드라마를 생동감 있게 이끌고 있습니다.

지훈을 사랑하게 된 현진과 인숙만을 바라보는 그의 관계가 이후 진행될 진실게임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흥미롭습니다. 다양한 복선들을 꾸준하게 깔아두고 진행된 드라마는 그래서 더욱 재미있기만 합니다. 7회까지 작가와 제작진들이 심어 두었던 복선들이 어느 순간 어떤 식으로 터져 나오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