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늘 <PD수첩>이 문제였다. 보수적인 인사들이 대거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진으로 구성될 때에도, 김재철 사장이 MBC에 들어섰을 때에도, 그들은 <PD수첩>을 문제 삼았다. 늘 <PD수첩>을 불편해 했다. “PD수첩 힘내라”를 외치는 누리꾼, 시민, 시청자들과 <PD수첩>을 불편해 하는 이들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한 동안 잠잠했던 <PD수첩>이 최근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시사교양국 인사, 최승호 PD를 비롯한 <PD수첩> 제작진 강제 발령, ‘대통령 무릎기도’ 취재 중단 지시, <PD수첩> PD 인사위원회 회부…. 지난해 8월, 김재철 MBC 사장과 경영진이 4대강을 다룬 <PD수첩>에 대해 ‘사전 시사’를 고집하며 불방 사태를 이끈 지 8개월만이다.

▲ 윤길용 시사교양국장 ⓒMBC노조
이런 가운데, 한 인물이 새롭게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이 바로 그다. 시사교양국장으로 임명되자마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채 알려지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후배들에게 “사퇴하라”는 요구를 수차례 들었다. 다만, 그가 짧은 시간 안에 보인 행보들이 <PD수첩>을 무력화하고, MBC의 공영성을 약화시킬 여지가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 달 전, MBC 시사교양국에서 만난 한 고참 PD는 윤길용 국장의 행보에 대해 “원래 안 그러던 사람인데, 왜 저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PD수첩> 제작진 강제 발령에 대해 “<PD수첩>의 참과 진실에 대해 희석시키자는 게 솔직한 속내”라 털어놓고, ‘대통령 무릎 기도’ 아이템에 대해 “MB 깎아내리기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윤길용 국장이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무실 책상 한 쪽에 있었던 책 한권을 펼쳤다. 지난해 <PD수첩> 제작진을 인터뷰 할 때, 김태현 당시 <PD수첩> 책임 프로듀서는 나에게 <PD수첩> 2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PD수첩- 진실의 목격자들” 한 권을 선물로 건넸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책 읽기를 미루다, 책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윤길용’이라는 이름이 기억나 다시 책을 펼쳤다.

<PD수첩> 20주년 책에는 윤길용 국장이 과거 <PD수첩>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상세히 적혀있다. 그는 책 속에서 “그래도 PD시절이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또, 영국 시인의 시 “The best is yet to be” 구절을 언급하며 “<PD수첩> 20주년을 맞아 이제부터 최상의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시점에서 ‘최상의 날’이 오길 바랐던 그의 희망 섞인 바람을 꺾은 이가 누구인지 반문해 본다. 스스로 <PD수첩> 20주년 책에 밝힌 말들을 뒤엎은 이가 누구인지도 반문해 본다. 나아가, <PD수첩>을 열망하는 시청자들의 희망과 바람을 흔들려고 하는 이가 누구인지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윤길용 국장은 1990년, <PD수첩>의 창립 구성원으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관련 방송을 만들었다. 당시 최창봉 사장이 ‘불방’을 결정하자 노조원들과 함께 사장실 앞에서 항의했고, 결국 MBC노조는 이를 계기로 총파업에 들어갔다. 그는 만민중앙교회 사태 등을 <PD수첩>에서 다루는 등 ‘종교’라는 금기에 도전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황우석 사태, 광우병 사태 등 <PD수첩>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원칙을 강조했다.

“결국에는 원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정답이라고 본다. 힘들지만 어떡하겠는가? 그렇게 해야지. 진정한 싸움은 이런 환경에서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여건이 안 좋다고 프로그램이 안 나가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는가?”

<PD수첩>과 시청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말들을 털어놨다. PD로서, 언론인으로서, <PD수첩> 제작진으로서, 공영방송 MBC의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지극히 합당한 말들이었다.

“PD는 시청률에 자유로울 수 없지만, <PD수첩>에 있어서는 시청률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지난번에도 <PD수첩>을 없애느니 마느니 말이 많았는데,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은 브랜드 시대다. MBC의 장수 프로그램이 뭐가 있는가? <뉴스데스크>하고 <PD수첩>밖에 없지 않나”하고. 사실 프로그램을 폐지한다고 하면 일부 사람들만 좋아할 것이고, 나머지 대부분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 될 거다. 어떤 아이템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갈지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사회가 시끄럽다고 프로그램을 없애버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널리즘의 원칙’을 고수했던 그였다. 그러나 ‘사회가 시끄럽다고 프로그램을 없애버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던 그는, 불과 몇 개월 뒤 “이 아이템을 다루면 MB 깎아내리기로 볼 수 있다”며 스스로 내뱉은 말을 뒤집었다. 과거 ‘PD수첩에 있어서는 시청률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하던 그는, 최근 <PD수첩>의 시청률을 문제 삼으며 “시청자들에게 계속 외면 받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강조하던 그가 변한 건지, 원래 그랬던 건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사회의 횃불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걸 두려워하거나 주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지금 시점에서 무색하고도 허무하게 들린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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