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답답하고 한심한 일이 벌어졌다. 일밤이 오랜 침체 끝에 해피선데이를 위협할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불과 3회 방송 만에 존폐의 위기를 맞고 말았다. 경쟁 프로그램이 잘돼서도 아니고, 자체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서도 아닌 위기라는 점이 어처구니없을 지경이다. 이것은 전도가 밝은 나가수와 더 나아가 가수들에게 재앙이 돼버릴 듯한 엄청난 자살행위였다. 혼자나 죽든지 국민가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김건모를 희생양으로 바친 피의 일요일을 만들었다.

먼저 5백 명 청중평가단의 결정을 뒤집은 것은 최악의 방송 폭력이었다. 첫 번째 경연에서 김건모가 7위를 했고, 이에 반발하는 이소라 때문이었던지 아니면 제작진이 김건모를 섭외하면서 했을 수도 있는 모종의 약속 때문인지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독배를 들게 했다. 이 결과는 스포일러 정도를 논할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 7위를 발표하는 순간 얼어붙은 김건모의 표정을 차마 똑바로 보지 못했을 시청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분노로 바꿔버린 최악의 결과였다. 쌀집 아저씨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지 실망과 분노를 금치 못할 상황을 만들었다.

김건모가 왜 7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김건모 자신이나 제작진이 말한 것처럼 노래를 마친 후 허리를 숙여서 입술에 우스꽝스러운 립스틱을 바른 해프닝에 대한 청중평가단의 차가운 반응일 수도 있고, 노래 자체가 일곱 명 중 가장 부족했을 수도 있다. (김건모가 진지한 걸 싫어하는 대중가요의 모차르트 같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자의건 타의건 예능 욕심이 불러온 립스틱 해프닝도 제작진이 반드시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탈락자를 청중평가단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던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스스로 그 결정을 뒤집은 폭거라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청중평가단의 결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것 이상으로 애초에 나가수가 시청자와 약속했던 서바이벌의 원칙을 저버린 것이기에 더 심각하다.


청중평가단과 시청자 그리고 가수까지 전부를 모독한 뒤집기

만일 경연을 하기 전에 제작진이 청중평가단과 시청자에게 나중에 말한 내용을 먼저 발표했다면 문제는 또 다르다. 그러나 바둑에서 수순에 따라서 죽는 말도 되고, 묘수도 되는 것처럼 세상사 역시 마찬가지로 순서가 바뀐 해법은 이번 경우처럼 재앙을 부르게도 되는 법이다. 백 번 양보해서 김영희 CP가 이런 최악의 무리수를 선택하게 된 주변 정황에 대해서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탈락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불명예스럽게 남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모욕을 주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또한 내 탓이다 하지 못하고 네 탓으로 하자 떠넘기는 방송제작자들의 몹쓸 관행을 그대로 노출한 점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가수 최초의 서버이벌 현장에서 김건모가 재도전을 선택케 한 것이 그 중 최악의 잔머리였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했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지켰어야 했고, 그것을 어쩔 수 없이 위반할 상황이 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가수에게 선택하라는 식의 사악한 방법을 쓰지는 말았어야 했다. 얼핏 그것이 가수를 존중하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제작진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보험을 드는 행위에 불과한 허튼 수작일 뿐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이 없다. 현장 상황이 스스로 당황스러운 탓에 그럴 수는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후 얼마든지 잘못을 바로잡을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고치지 않은 이상 모든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건모의 재도전 방송은 취소하고 새로 제작해야

편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결국 나가수 제작진의 무능과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이라고 잘못된 것을 그대로 강행할 생각은 더욱 안 될 말이다. 잘못됐다고 느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세상 모든 입이 지금 나가수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상황은 일부의 논란이나 비난이 아니라 세상 모두가 나가수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나가수가 잘못한 것이고 그것은 반드시 고쳐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가수 제작진은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시청자와 청중평가단 그리고 가수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제작이 완료됐을 김건모의 재도전 분량은 삭제하고 새로이 제작해서 방송해야 할 것이다. 지금 시청자의 감정으로 다음 주 나가수를 시청할까가 먼저 걱정스러운 상황이겠지만 그런 반응과 무관하게 자기 잘못을 사과하고, 고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패떴의 참돔 조작 논란의 수백 배를 넘길 분노의 쓰나미를 접하고 말 것이다.

이제 나가수에게 남겨진 것은 가수들이 보여주었던 노래의 감동 하나뿐이다. 그것은 그대로 두고 이렇게 된 이상 나가수가 가진 불합리한 요소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 또한 있다. 필요하다면 두어 주 방송을 쉬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 완성된 논리와 방법을 갖고 제작에 임해야 할 것이다. 청중평가단이 한 명만 선택하는 단선적 투표방식부터 스포일러와 조작설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생방송의 도입까지 지금까지 거론된 모든 문제와 조언을 아우르는 전면적인 재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럴 만큼 나가수 제작진이 범한 잘못은 크다. 그나마 이 프로그램의 폐지를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세시봉의 감동, 노래의 감동을 이어가주길 바라는 마음, 단지 그것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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