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19.12.12 목 10:18
상단여백
HOME 미디어비평 톺아보기
[KBS 특선 다큐] 증오 속에 피어난 극단주의, ‘누가’ ‘왜’ 증오를 부추기는가?[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11.16 11:31

[미디어스] 장장 5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한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6부작이 만들어진 시간이다. 1, 2부에서 진화 심리학적으로 증오의 기원을 추적했던 다큐는 증오가 진화의 결과로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돼 있는 '정서적 기제'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그 '내재된' 증오의 문을 열어젖히는 건 무엇일까? <3부, 증오를 부추기는 기술>은 바로 그 '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열려진 문은 증오를 키워 '극단주의'까지 흘러넘친다. 바로 <4부, 증오의 극단주의>이다.

3부, 증오를 부추기는 기술 - 누가 증오를 부추기는가? 

에돌아갈 것도 없다.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젤라니 콥은 오늘날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주범으로 '카리스마적인 리더와 언론'을 손꼽는다. 특히 중립적 사실 보도를 사명으로 했던 '언론'은 이제 그 어떤 단체보다 당파적이며 편향적인 기사를 쏟아내며 극단적인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리더와 언론의 선전, 선동은 사람들에게 편향적 시각을 갖게 하는 걸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우려한다.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6부작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94년 무려 백만 명이 살해당한 르완다 학살이다. 벨기에는 르완다를 식민 지배하며 소 10마리 소유를 기준으로 투치족과 후투족을 나눴다. 15%의 소수 투치족이 85%의 다수 후투족을 지배하며 반목을 거듭, 시간이 흐르며 이들은 서로를 다른 종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후투족 언론, 그중에서도 친정부적 어용 언론이었던 '캉구라'는 투치족을 마치 '바이러스'처럼 없애야 할 대상으로 '반투치 선전'에 열을 올렸다. 문맹자가 많았던 르완다에서 영향력이 컸던 라디오 방송국은 더했다. 투치족을 인간이 아니니 죽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며 '바퀴벌레 소탕작전'이라 부추겼다. 더구나, 지주 계급이었던 투치족을 죽이면 그들의 땅을 소유할 수 있다고, 그러니 더 많이 죽여 더 많은 땅을 가지라 선동했다. 

이렇게 언론과 방송을 통한 지속적인 선동, 거기에 ‘투치족은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아이들과 노예들을 죽였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난 후투족 사람들은 투치족을 상대로 싸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 자신들이 지키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거라는 '공포'를 내재화하게 되었다. 

이들 선전의 핵심은 '비인간화'이다. 유대인들에 대해 지하에 들끓는 쥐떼와 같다고 했던 나치처럼, 후투족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라며 박멸해야 할 존재로 치부했다. 공격해서 죽이는 게 당연하다며 대량 학살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스며든 선전과 선동은 사회적 인지 능력인 공감 기능을 관장하는 내측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을 떨어뜨린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도표로 만들어 놓고 미국에서 342명에게 조사를 했다. 질문에 답한 미국인들 대부분이 자신이 진화의 최종 단계인 100%라 답했다. 반면, 이민자인 멕시칸들은 75% 정도밖에 진화되지 못한 존재라 여겼다. 유럽인도 마찬가지다. 무슬림에 대해 미개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간주했다.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6부작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문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편견이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활개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찰스턴 감리교회에 들어가 성경공부 모임을 하던 흑인들을 총기로 난사한 빌런 도프. 그는 흑인들이 매일 백인을 죽이고 백인 여자를 성폭행하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인터넷을 통해 습득했다. 

백인에 대한 흑인들 범죄를 검색해본 빌런,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 사이트는 '보수 시민 위원회'라는 백인 우월주의 선전 사이트였다. 문제는 이 사이트가 '사실'에 근거한 검색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돈을 더 내면 상위에 링크시켜주는 구글의 상업적 알고리즘의 결과였는데도, 사람들은 마치 오늘의 날씨를 검색하여 취득하는 사실처럼, 이들 사이트에 대한 '사실적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구글 등의 검색 사이트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증오를 퍼뜨린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며 사람들은 예외적인 일탈로 여기지만, 다큐는 바로 그런 인간의 '증오'에 기반한 대량 학살에 이르는 행동은 인간 역사가 가진 오랜 전통의 산물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은 이 전통의 산물을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 기꺼이 이용한다는 것도. 

지난 2018년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재선 가도에서 떨어지는 지지율 하락을 상쇄하기 위해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반난민 정책'을 자신의 정치적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외국인 침략자가 몰려오고 있다'며 유세 내내 공포를 부추겼고, 바로 자신이 맞서 싸울 적임자이고 헝가리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증오에 불을 붙여 '대중 영합적 민족주의 운동'을 조장했던 빅토르는 결국 재선에 성공했고, '반난민, 반EU' 정책을 앞세워 4선까지 기세를 몰아붙였다. 

4부, 증오의 극단주의 - 결국 리더의 조종이다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6부작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바로 이러한 증오의 분위기 속에 '극단주의', 그리고 급진화된 개인이 탄생한다. 필라델피아 빈민가 출신의 청년 프랭크는 1971년 '백인 우월주의 스킨헤드'가 되었다. 나치 깃발을 들고 자신들이 유대인의 희생양이라 여기던 집단에서 가족과도 같은 소속감을 느꼈다. 미국이 유대인에 의해 소돔과도 같이 타락했다며 행동에 나선 그는 총기 판매, 조직원 납치 감금을 일삼다 17살에 구속되어 3년 형을 살게 되었다. 

학대받던 가정에서 16살에 도망쳐 나온 제시 모틀은 말콤X의 자서전을 읽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유누스 압둘라 무함마드로 개명한 그는 살라피 자하디즘에 헌신, 오사마 빈라덴을 지지하며 알카에다 조직원을 모집하여 보냈다. 

극단주의 전문가인 샤샤 하블리첵은 백인 우월주의건, 이슬람 극단주의건 다 똑같다고 말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조직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극단주의 단체, 이들의 1차적 목표는 편가르기이다. 

1971년 필립 짐바르도 교수에 의한 유명한 지하감독 실험이 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네 편과 내 편을 나누고 이들을 죄수와 간수로 분하게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간수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잔인해졌다. 쇠사슬로 죄수를 묶는가 하면, 변기 청소를 시키고 기합을 주는 등 가혹 행위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은 자연스럽게 맡겨진 역할에,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되는 것일까는 의문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실험에는 '비밀'이 있었다. 2001년 BBC에서 일반인 15명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한 것이다. 간수로 뽑힌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감옥을 운영하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1971년과 달리 간수들은 가혹 행위는커녕 자신이 간수가 되어 죄수를 통제하는 상황을 싫어했다. 

그리고 1971년 실험에는 실험의 배후 짐바르도 교수가 간수들의 가혹 행위를 '조장'했다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인간들이 주어진 역할에 무조건 충실한 게 아니라, 극단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가는 데에는 '리더의 지시'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리더의 지시'를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이라크전 당시 잔혹 행위가 발생했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사례이다.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6부작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2008년 오바마가 당선된 이후 증가한 백인 우월주의, 트럼프는 '나는 당신들과 같다'며 이를 부추겼다. 위험을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고 행위에 대한 칭찬과 보상을 약속하며 거기에 그럴싸한 대의명분까지 더해지면, 상황에 던져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해 극단주의적 행동을 서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공포 정치를 이용한 정치는 '민주주의'의 퇴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극단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엄격한 법'일까? 이에 대해 한때 스킨헤드족이었던 프랭크는 회의적이다. 그를 구속했던 법도, 그가 거리에 나설 때마다 그에게 퍼부어지던 욕도 그를 바꾸진 못했다. 외려 그를 바꾼 건 나치 문신과 스킨헤드 복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규직으로 채용해 주었으며 그의 일탈을 견뎌준 유대인 상점 주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했던 이슬람 극단주의자 제시를 변화시킨 건, 그가 조직원들을 알카에다로 보냈던 모로코에서였다. 그가 미국에서 당연히 누리던 것들, 언론의 자유 등을 위해 모로코 사람들이 목숨까지 걸며 싸우는 것을 본 제시는 이후 ‘극단주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모든 프랭크에게, 제시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바로 우리 인간 사회의 비극, 그 악순환을 낳는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meditator  5252-jh@hanmail.net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ditator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편집인 : 임진수  |  개인정보책임자 : 윤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희상 팀장
미디어스 후원 계좌 안내 : 하나은행 777-910027-50604 안현우(미디어스)
Copyright © 2011-2019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