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가 말한 남아수독오거수(男兒須讀五車書)니 마흔의 나이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 등 인간이 잘 살았다는 기준을 삼기 위한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섯 수레의 책을 읽지 않더라도, 얼굴을 결국 책임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개인의 목숨을 누군가 빼앗지는 않는다. 단지 그러면 더 좋은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 다섯 수레도 아니고 인간미 넘치는 얼굴이 아닌 고작 눈물 세 방울로 자신의 목숨 그것도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죽음과 삶을 가를 수 있는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와 시크릿 가든 등 국내 방송사 중 유독 판타지 드라마로 재미를 톡톡히 본 SBS가 또 다시 그럴 듯한 판타지 하나를 내놓았다. 삶과 죽음이라는 종교와 철학도 해결하지 못한 인류 근본의 주제를 만화적 터치로 접근한 49일이라는 로맨스 드라마다.

저승사자의 명부에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신지현(남규리)는 보름 후 결혼을 앞둔 인생의 절정을 맛보는 중이었다. 자기를 위해 구두를 벗어주고 맨발로 함께 뛰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녀는 부잣집 무남독녀 외동딸로 부모의 절대적인 애정을 받고 산다. 세상에 부러울 것도, 부족한 것도 없는 행복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추었는데 거기에다가 착하고 순수하기까지 해 비인간적일 정도로 완벽한 처녀다. 결혼 준비를 위해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신지현은 저 건너편에 정 반대의 한 인물의 자살시도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송이경(이요원)은 단지 달려오는 차에 뛰어든 것뿐이었지만 나비효과였을까, 길 반대편 차선을 달리던 신지현의 차를 덤프트럭에 추돌하게 만든 원인제공자가 되고 말았다.

송이경은 신지현과 모든 환경이 정반대의 인물이다. 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자라 어렵게 성장했는데 사랑하는 사람마저 교통사고를 잃은 후 표정을 잃은 회색의 존재가 됐다. 신지현이 친구들과 환한 미소로 고급 와인을 음미할 때 송이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컵라면을 먹는 극과 극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송이경의 자실시도로 애먼 신지현이 죽게 됐는데 문제랄까 희망이랄까 신지현의 죽음이 운명에 없는 돌발사건이기에 저승사자(정일우, 49일에서는 스케줄러)라고 무작정 저승으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스케줄러라고 부득불 우기는 이 젊고 잘생긴 절은 저승사자가 또 문제다. 신지현이 억울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으로 순수한 눈물 세 방울을 찾으라는 미션을 내놓은 이 스케줄러는 도통 저승사자의 위엄을 갖추지 않는다. 철딱서니 없는 것으로 따진다면 신지현과 도토리 키 재기가 될 지경이다. 죽은 사람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주 처절한 상황이 이 달콤한 저승사자로 인해 코믹하게 변해버렸다.

이 스케줄러가 말 한대로 신지현은 순수한 눈물 세 방울을 찾기 위해서 송이경의 몸을 빌려야 했다. 그래서 이요원은 극과 극의 두 여자 신지현과 송이경 두 삶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앞으로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이요원이 깨방정 신지현의 모습과 삶의 의욕이 한 점도 남아있지 않은 송이경 두 몫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 앞으로 드라마 49일을 즐기는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 스케줄러와 송이경은 분명 뭔가 연결고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송이경이 신지현의 돌발 죽음을 일으킨 원인제공자이긴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이유로 저승사자 정일우와 얽혀있어 보인다.

정일우는 남규리에게 죽음의 세계에는 모든 것이 얽혀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과 송이경에게 얽혀있는 인연의 고리는 잊고 있는 듯하다. 결국 49일의 기간 동안 송이경의 모습을 한 송이경이 눈물 세 방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이모저모 참견하고 도와주면서 결국에 가서 신지현이 눈물 세 방울을 찾거나 혹 못 찾게 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송이경은 젊은 나이에 삶을 포기할 정도로 사랑하는 애인을 빙의된 기억 건너편에서 희미하게 감지하게 되는 결말을 예상해볼 수 있다.

그런 예는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칮아 볼 수 있다. 아내와 엄마를 그리워하는 부자에게 나타난 한 여인은 분명 예전의 아내이며 엄마인데 정작 여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상황. 저승을 갈 때에는 이승의 모든 기억을 놓고 가게 되기에 기적이 만들어낸 일시적 환생이지만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일우 역시 죽은 후에 저승사자의 일을 맡게 됐지만 생전의 기억 즉 송이경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49일이 지난 때 신지현에게 다가올 해피엔딩 혹은 새드엔딩과 얽혀서 저승사자 정일우가 이승의 기억, 송이경에 대한 기억을 찾게 되는 결말을 상상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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