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는 거칠 것이 없는 선수였습니다. 월드컵 무대에 나서 강력한 슈팅과 당돌한 플레이로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는 '한국 축구에 진짜 천재가 한 명 나왔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세계적인 골키퍼조차 꼼짝 못하게 만드는 깔끔한 프리킥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그의 이름을 딴 '존(Zone)'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2002년 이후 그는 철저히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잦은 부상과 그에 따른 자기 관리 실패는 끝 모르는 기량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게으른 천재', '실패한 스타'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2007년 대전 시티즌을 6강 플레이오프에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해내기는 했지만 전성기 때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기량, 체력 저하, 부상 등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결국 화려한 등장과는 다르게 2008년에 조용하게 선수 생활을 마치는 아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이후 그는 공백기 동안 조용하게 지내면서 새로운 인생을 모색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선수 시절과는 다르게 3년 가까이 조용하게 재기를 노렸습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축구계에서 다시 주목받기 위해, 그는 차근차근 아래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려 했습니다. 무대는 바로 지도자, 그것도 프로 팀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 고등학교팀 지도자였습니다.

조용하지만 당차게 코치직에 취임한 그는 두달 간의 준비 끝에 마침내 지난 12일,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습니다. 그라운드의 앙팡테리블에서 이제는 명감독을 향한 힘찬 도전을 밝힌 사나이, 고종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 수원 삼성의 U-18팀인 매탄고 축구부 코치로 부임한 고종수(33)가 4일 경기도 화성시 클럽하우스에서 치러진 신년하례식에 참가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딛는 고종수는 "두려움과 설렘이 반반이다. 광주FC 코치 영입제의도 있었지만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싶어서 매탄고 코치 자리를 맡게 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고종수 코치가 맡고 있는 수원 매탄고가 2011 SBS 고교클럽 챌린지리그 첫 경기 전북 영생고와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고 첫 승을 신고했습니다. 수원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정성훈 감독을 보좌하며 개인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고종수 코치 입장에서는 매우 뜻 깊은 첫 승이었는데요. 코치가 된 후에도 외부 접촉을 최대한 피하면서 솔선수범한 자세로 자라나는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온힘을 쏟은 고종수 코치는 소중한 1승을 챙기면서 지도자로서 '조용한 성공'을 위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대한축구협회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면서 곧바로 K리그 팀 코치를 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종수 코치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면서 기꺼이 옛 친정팀 수원 삼성의 유스팀인 매탄고 코치직을 수락했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인 김호 감독의 조언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굴곡이 많았던 선수 생활과는 다르게 오직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배워나가면서 탄탄한 철학을 갖춘 지도자로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보였습니다. 한 3년쯤은 많이 배우고 공부할 것이라고 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제대로 받고 한계단씩 올라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고종수 코치는 선수들이 보다 즐기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축구를 가르치겠다면서 나름대로 철학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면 선수 때 이루지 못했던 것을 지도자 생활을 통해 뭔가를 해보이고 싶은 고종수 코치의 굳은 뜻이 아주 잘 담겨있는 듯 했습니다.

고종수 코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양산해낸 축구계의 '뉴스메이커'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라운드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플레이, 창의적인 모습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은 스타였습니다. 뛸 때마다 '진짜 축구 선수'라는 느낌을 받게 한 몇 안 되는 선수 중에 한 명이었던 고종수 코치는 현역에서 물러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최근에도 녹슬지 않은 모습으로 팬들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 때 홍명보장학재단에서 주최한 자선 축구 경기에 나섰을 때 고종수는 축구판에 원조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구자철, 윤빛가람, 지동원 등 후배 선수들이 볼을 잡을 때마다 환호성이 울렸을 때와는 다르게 고종수가 볼을 잡을 때는 너무 조용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가 이렇다 할 환호조차 많이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저로서도 격세지감을 느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라운드를 밟아 옛 동료, 그리고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며 뛴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워했던 고종수의 그 모습을 보며 '천상 축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고종수가 굳은 의지를 갖고 지도자로서, 그것도 미래가 밝은 고등학생 선수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꿈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래도 아직 고종수가 살아있다'라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꿈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 훗날 한국 축구에도 길이 남을 명감독으로 나아가는 큰 길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고종수 코치는 선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지도자 임무를 수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어린 선수들이 절대로 따르지 않도록 좋은 방향으로 가르치면서 모범적이고 기억에 남을 코치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전성기 때 화려한 기량을 갖춘 선수, 그러면서 인격적으로도 존경받는 선수를 키워내 지도자로서는 꼭 성공을 거두는 '모범적인 앙팡테리블' 고종수 코치의 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선수 때 이루지 못한 한을 몇 년 후에는 꼭 이뤄내는 고종수 코치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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