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의 핵심은 가수일 수밖에 없음을 두 번째에도 확실하게 증명해주었습니다. <나는 가수다>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고 지향해야 하는지는 일곱 명 최고 가수들의 능력에 달려 있고 그들의 탁월한 모습만이 <나는 가수다>가 살아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의미일 겁니다.

나는 가수다는 이소라에게 빚을 지고 있다

<나는 가수다>는 여전히 정체가 모호한 방송입니다. 2회를 마친 상황에서 정체 이야기를 하는 게 무모할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동안 아이돌 전성시대로 인해 소외받았던 가수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는 의미는 지닌 것은 분명합니다.

무대를 빌미로 거래 하지 마라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가수들은 과연 무엇에 의해 소외를 당한 것일까요? 방송국에서 이런 말을 당당하게 할 처지가 되는지부터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아이돌 전성시대를 만든 주범이 단순히 거대해진 기획사의 탓일까요? 아니면 그런 음악들만 찾아들었다고 이야기하는 대중의 몫일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모호함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모두가 그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방송의 책임이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균형을 맞추고 방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방송이 편향적인 시각으로 문화를 담아내고 방조한 책임은 온전히 방송의 몫입니다.

아이돌을 키워내 금전적으로 이득을 보려는 기획사들이 많아진다고 해도 방송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런 지경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청률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쓴 채 다양성을 보장해야 할 방송이 편향을 부채질하고 돈 놀이에 놀아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MBC의 경우 <라라라>라는 특별하고도 멋진 음악 전문 방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폐지하면서 소외된 가수 운운하는 것만큼 책임감 없는 행동은 없을 것입니다. 더욱 존재감 제로에 가까웠던 일밤을 구원하기 위해 국내 최고의 가수들을 끌어들여 무대를 빌미로 그들에게 곰이 되기를 강요하는 행위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지해야 할 상황에서도 산만을 강요하고 웃음을 흘리는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을 이용한 예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연했던 가수가 자조적으로 "이건 예능이니까..."라고 한 말에서 드러나는 함축적인 의미는 그들이 바라보는 <나는 가수다>의 한계이자 현재입니다.

그들에게 최고의 가수들과 함께 하는 무대를 가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은둔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던 이소라가 과감하게 메인 MC를 맡았고 다른 가수들 역시 순위를 매기는 방식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라도 자신들의 재능을 썩히지 않고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자신 이외의 것을 강요하는 방식에도 자연스럽게 응해야만 하는 상황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직된 방식의 음악 프로그램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재미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니 말이지요.

아이돌 전성시대에 반기를 든 이들은 세시봉에 열광했고 이는 곧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활성화(누가 우선이라는 순서적인 관계가 아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의 문화만을 강요하는 방송과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거대 기획사에 대항한 힘없는 대중은 이렇게 자신들의 욕구를 이야기하고 관철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방송 지배력 싸움에 이용하려 하지 마라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방송국의 패권 싸움으로 이전투구의 장이 되고 있고 방송국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기획사 오디션보다 훨씬 다양한 이들이 참여해 심사가 좀 더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은 붐처럼 이어지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구축하도록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변화의 시기에 '세시봉 특집'이 대박을 만들어 냈고, 합창단이 신드롬을 일으켰고, 최고의 가수들이 모여 만드는 서바이벌 게임 <나는 가수다>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화제가 되고 환호 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획일화되고 편향된 문화를 강요해왔던 방송에 대한 반대급부가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반대급부를 발 빠르게 포장해 장사를 하는 방송국의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나는 가수다>의 두 번째 미션은 80년대 유행했던 음악을 각자의 취향에 맞게 편곡해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노래를 받고도 자신의 색깔을 입혀 만들어낸 그들의 음악은 왜 그들이 최고인지를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중간 평가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잼 공연은 <나는 가수다>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미래이기도 했습니다.

트로트 '짝사랑'을 정엽만의 스타일로 감칠맛 나게 부르자 윤도현의 제안으로 김범수와 박정현과 함께 잼 공연을 시도했습니다.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그들의 무대는 각자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그대로 살아난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원곡의 감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세 가수의 특징이 완벽하게 살아난 이 곡은 그들이 최고일 수밖에 없음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서바이벌을 명시하면서도 서바이벌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쌀집 아저씨의 어설픈 언플은 연이어 논란을 만들고 있습니다. 뛰어난 가수들이 모여 있지만 정작 그들의 음악보다는 과정이나 예능에 치우친 상황은 곧 <나는 가수다>가 쉽게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첫 번째 탈락자가 나오는 본선 경연에서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 다시'를 담담하지만 이소라 특유의 애절함으로 소화해낸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완벽주의를 표방하는 그녀가 방송에 나오기를 거부하면서까지 만들어낸 이소라의 '너에게로 또다시'는 원곡자 변진섭마저 감탄하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나는 가수다>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단 하나입니다. 뛰어난 가수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방향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회와는 달리 노래 중간 감정을 깨트리는 편집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예능 속에 가요 프로그램을 붙여 놓은 듯한 어색함은 이 프로그램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일반인 오디션에 이은 기성 가수들마저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에 몰아넣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 시청률만 생각한다면 <나는 가수다>는 짧게 끝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일반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송국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듯 <나는 가수다> 역시 기성 가수들에 대한 영향력 향상과 일종의 길들이기를 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도 들고 있습니다.

<나는 가수다>가 우리 시대 진정한 가수들의 진가를 뽐낼 수 있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가수들 무대 중심의 방송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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