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의 드라마 복귀작 싸인은 중도에 연출이 대본 집필로 물러나고 새로운 감독이 들어오는 혼란을 겪고도 수목 드라마의 선두를 지키며 종영됐다. AGB닐슨 자료에 의하면 25.5%라는 대단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마지막 회는 그러나 각종 방송사고로 얼룩지고 말았다. 일부 지역에 오디오가 먹통이 된 것은 드라마 제작이 아닌 송출 등의 외부 요인일 가능성이 높지만, 중간에 컬러바가 뜬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최악의 편집 사고였다.
방송사고 후 제작진은 차후 재방송을 통해 완성된 마지막 회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겠지만 이미 벌어진 방송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싸인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방송사고가 없다고 하더라도 한국 드라마는 쪽대본, 생방 드라마 등의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렇기에 유난히 옥에 티가 많고, 대사와 연기 그리고 영상미의 발전도 크게 기대하지 못할 상황이다. 드라마로 아시아를 점령한 한국은 이번 싸인의 방송 사고를 계기로 해서 한류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드라마 퀼리티를 떨어뜨리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전 제작을 기피하는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이다. 시청자 반응을 봐가면서 드라마의 방향을 바꾸다보니 자연 깊이 있는 제작이 가능할 수가 없다. 거기다가 한 주에 두 편을 제작해야 하니 쪽대본에 생방송 드라마가 무리도 아닌 상황이다. 한 신을 제대로 담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을 감안한다면 하루를 48시간으로 늘린다고 하더라도 2편 제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한 주에 두 편씩을 보아온 아주 오랜 관행을 쉽게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류의 본토에서 벌어지는 각종 드라마 방송 사고를 양산해내는 것보다는 이제는 변화를 시도할 시점에 도달했다. 사실 히트 친 드라마는 한 주에 두 편이 아니라 네 편을 방영해도 역시나 다음 방영 일까지의 며칠이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최근 KBS에서 방영되었던 정글피시2 경우 매주 한 편씩 방영했지만 드라마를 이해하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영상미나 드라마 완성도는 매우 높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당 2편 제작처럼 드라마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원인은 갑작스런 늘리기 편성이다. 주중 드라마들이 대부분 16회로 기획했다가 반응이 좋다 싶으면 최소 4회씩 혹은 그 이상을 갑작스레 연장해오고 있다. 이제는 마치 당연한 일처럼 관행으로 굳어진 이 늘리기 신공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딱히 불만을 가지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드라마 종영 후 평가에서 빠지지 않는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작 발표부터 각자의 드라마가 몇 회 분량인지를 못 박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방영되는 모든 드라마가 처음에 몇 부작임을 확실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여차하면 연장하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는 태도가 분명하다. 때문에 작가와 연출도 어느 정도는 연장에 대한 대비도 당연히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리 준비된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재방송을 통해서야 비로소 완성본을 내놓을 수 있는 부끄러운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싸인에서 단순한 한 편의 드라마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권력이 잘못 사용되면 세상의 진실이 철저히 왜곡된다는 경고를 상당히 직절화법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박신양이 살신성인으로 그 그릇된 권력을 잘라낸 것처럼 싸인은 비록 변명거리 없는 실수지만 치명적인 방송 사고를 냄으로써 한국 드라마 제작 실정을 냉정하게 돌아볼 충분한 이유 또한 남겼다. 그래서 끝까지도 이 드라마의 제목 싸인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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