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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가수다, 불행한 시대의 삽화[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 | 승인 2011.03.07 08:35

<나는 가수다>의 뚜껑이 열렸다. 대박이었다. 가수들 노래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장난 아니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특집이나 <슈퍼스타K>에 이어 '노래를 듣는다는 것'에 대한 대국민 교육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그것을 위해 꼭 서바이벌이라는, 등수를 매기고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방법이 동원돼야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하지만 이해가 가기도 하는 것이, 이미 시대가 그렇게 자극적인 방식이 아니면 사람들이 집중해주지 않게 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가수들을 그대로 어느 음악프로그램이 섭외해서 그 노래들을 똑 같이 부르게 했어도 <나는 가수다>처럼 시청자의 몰입이나 화제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의 구성이 초래한 '쪼는 맛'이 집중도를 높였고, 그것이 음악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졌다. 서바이벌 구성없이도 가수들의 음악만으로 시청자들이 알아서 음악에 집중하고 음악인들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상황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수다>는 우울한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삽화로 보인다.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예능에 나와서 서바이벌 경쟁을 벌여야 겨우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시대.

얼마 전에 김태원은 <위대한 탄생>에서 도전자들에게 예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옆자리에 앉은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우리 현실을 <나는 가수다>가 냉정히 보여주고 있다.

   
   
불행한 가수 가난한 시대

이 프로그램에 나온 가수들이 오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들의 노래도 이미 알려진 것들이었지만, 예능의 가장 살벌하고 자극적인 구성을 통해서야 그들은 국민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가수다>는 양면적이다. 서바이벌 열풍에 편승했다는 점에선 부정적이고, 하지만 그 구성을 통해서 이 땅에 노래, 가수, 음악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것이다. 이 부정성과 긍정성이 모두 이 시대의 삽화다.

경쟁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에선 가수들이 복불복과 야외취침을 하고, 온갖 과제를 수행하며 심지어는 건강검진이라는 사생활까지 공개한다. 그것보다는 <나는 가수다>처럼 순수한 무대만으로 관심을 받는 것이 차라리 더 나아보이기도 한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예능을 통하지 않고도 가수들이 독자생존하는 것일 텐데, 그게 안 되니까 문제다. 이런 시대에 실력 있는 가수들의 입지가 얼마나 좁은지를 <나는 가수다>가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나온 가수들이 언급됐을 때, 출연자들은 '웃기지 마라, 그런 가수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나올 리가 없다'라고 반응했다. 우리나라가 정상이라면 그 판단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가수다>에 줄줄이 출연한 정상급 가수들이 웅변해준 것이다.

이런 예능 서바이벌 무대라도 국민과 소통할 수 있고 진정한 무대를 보여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단 감사해야 하는 상황. 그게 한국의 가수들이 처한 상황이다. 가난한 현실 불행한 시대.

   
   
개그맨이 가수 잡아먹다?

<나는 가수다>는 그 구성을 통해 각별한 몰입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것이 의미있는 것은 서두에 말했듯이 대국민 교육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그냥 흘려듣지 않고 집중해서 듣게 되면 더 깊이 체험하고 즐기게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수준 높은 가수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나 취향이 생기게 되고, 이렇게 소비자의 성격이 변하면 그에 따라 음악계가 바뀔 힘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가 자극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가수들을 소비했다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이 몰입의 경험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 회의 편집은 아쉬웠다. 정작 가장 중요한 노래가 나올 때 프로그램은 엉뚱한 수다를 내보내 몰입을 방해했다. 가수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개그맨이 그 사이를 치고 나오면 안 된다.

앞으로 <나는 가수다>가 한국에 '진짜 가수'들의 중흥기를 이끌어내길 기대한다. 얄팍한 서바이벌 편승으로 시작해 그런 결과를 낳는다면 그야말로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이 될 것이다.

하재근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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