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이력이 있는 조석준 전 KBS 기상앵커를 기상청장에 임명한 상황을 둘러싼 풍경은 청와대와 시민적 상식의 거리감이 지구와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동떨어져 있음을 여실히 노출한다.

청와대는 조 청장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고, 문제될 게 없다'는 익숙한 반응을 내놓았다. 적어도 장차관급 고위직이라면 '보다 엄정한 도덕적 기준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상식적 요구는 이번에도 가볍게 묵살됐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품고 있는 불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이 말고는 도무지 기상청장을 할 만한 이가 없느냐'는 것쯤 될 것이다. 두 가지 문제의식이 겹쳐 있다. 이명박 정부 인사 시스템에 대한 회의이고, 사회 권력층 전반에 대한 불신이다.

▲ 조석준 기상청장이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를 내고도 벌금형의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관련 내용을 정리한 15일자, 경향신문 8면
조 청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청와대가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대처, 모범적 대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드시 기상청장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성의껏 설명해내는 것이었다. 임기 초반 '고소영․강부자' 논란이 있었을 때는 최소한 그 정도의 염치는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청와대는 그런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조 청장의 범죄가 무려 27년 전의 일이고 당시에 도덕적, 법적 대가를 다 치른 일이다고 답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본질적인 부분도 아니다. 대다수의 전과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차별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음주운전' 이력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었다.

그래서 청와대의 설명은 한 스텝을 건너 뛴 무성의한 태도다. 형법에도 공소시효가 있는데, 그가 마땅한 반성을 했고 기상청장을 할 이유와 자질이 충분한 공감이 된다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할 까닭은 없다.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반드시 기상청장을 해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으면, 그런 설명들은 모두 무용하다. 오히려 과거 전력의 비도덕성만 부각될 뿐이다.

조 청장을 둘러싼 설왕설래에 대처하는 청와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검찰청장이나 경찰청장도 아니고 기상청장 정도를 갖고 왜 호들갑들이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청와대는 조 청장 논란과 관련해 단 한 차례 브리핑만 했을 뿐이다. 청와대의 이런 안일한 태도는 '우리가 임명하면 그 뿐이지, 어찌할 것이냐'는 안하무인의 자세다.

▲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공정사회추진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조 청장을 둘러싼 동문서답, 소귀에 경을 읽어주는 풍경은 그 자체로 이 정부 내내 반복, 강화된 '불통'의 모습이다. 조 청장 이전에도 숱한 위법, 탈법, 불법 범법자들이 고위직에 임명됐고, 그러한 부적격 인사들에 대한 용인이 켜켜이 쌓여 이젠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 이력과 기상청장 정도 자리는 대응할 깜냥의 문제도 안 된다고 뭉개는 모습이다.

조 청장 임명과 관련해 우석훈 박사는 블로그에 '부도덕 정권'이란 포스팅을 통해, 청와대가 "모르고 그랬다면 직무 유기고, 알고도 그랬다면 그건 범죄행위 옹호와 같은 적극적 범죄"라며, "아무리 범죄 사실이 있어도, 힘만 있고 빽만 좋으면 청장까지는 다 한다, 그렇게 초등학생들이 생각하게 되는 나라가, 망하지 않고 버틸 재간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아무리 부도덕한 정권이라도, 그 부도덕함이 넘지 말아야 할 선 같은 게 있는 법"인데, "도대체 공무원 내에서도 어떻게 청장의 령이 서겠느냐"는 지적이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공정사회 추진회의'에 참석해 "국민의 70% 이상이 우리 사회를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 한다"며 "출발과 과정에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선 스스로 책임지는 공정사회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가 밝힌 공정사회를 위한 8대 중점 과제 중 하나는 '공정·투명한 공직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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