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이 요동치고 있다. 물 밑에서 오가던 논의가 하루 새에 물 위로 치솟은 양상이다. 김경수 봉하마을 사무국장은 김해 불출마를 선언했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은 민주당의 양보를 호소했다.

'봉하 지킴이'로 불리는 김경수 사무국장의 불출마 선언은 단순히 김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야권연합은 4.27 재보선의 루비콘 강이다. 김 사무국장은 불출마 선언을 통해 가장 먼저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의 불출마 선언 보도자료 제목은 "단결과 연대의 ‘거름’이 되고 싶습니다"이다. 그는 출마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연대와 단결의 정신을 얼마나 아름답게 지켜내느냐를 고심했다"고 밝혔다. 그의 불출마 변은 한 마디로 노무현 정신이다.

▲ 전격적으로 4.27 재보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경수 봉하마을 사무국장
그는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똘똘 뭉치는 모습을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불출마 결심이 "범야권 연대를 통한 재보선 승리의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읽힌다.

일찍부터 청와대 농업특보를 지낸 이봉수 경남도당 위원장을 김해 후보로 확정했던 국민참여당(이하 국참당)에겐 더할 수 없는 호재다. 친노 세력에게 김해는 '시민 민주주의 실현'으로 대변되는 노무현 정신이 응축된 지역이다. 노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친노 세력의 상징적 거점으로 격상된 곳이기도 하다. 국참당으로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해서도 안 되는 지역이다.

국참당은 아직 원내에 진입하지 못했다. 국참당에게 4.27 재보선은 운명적 갈림길이다. 김해 재보선을 가져오느냐의 여부에 당의 존폐가 달려있다. 4.27 재보선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정치 운동적 성격의 단체로 '100만 민란'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4.27 재보선에서 원내 진입에 성공한다면 유시민이라고 하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앞세워 야권 연합의 캐스팅 보도를 쥘 수도 있다. 향후 어떤 정치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4.27 재보선에 달려있는 셈이다.

김 사무국장의 불출마 선언에 비해 훨씬 완곡하지만 김근태 상임고문의 공개 호소문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김 고문은 "지금은 민주당이 통 큰 양보를 할 때입니다"라는 제목의 공개 호소문을 통해 "지금이야말로 민주당 지도부가 통 큰 결단을 할 때라며, 시대정신이 간곡하게 기대하고 있는 대로 미세한 계산을 멈추고 분당, 김해, 순천 등에서 적어도 한 곳은 비민주당 야권단일후보가 나설 수 있도록 지도부가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며칠 전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의 중앙SUNDAY 인터뷰로 민주당과 국참당 사이에 날선 비방이 오고 갔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내에 '다른 이는 몰라도 유시민 원장과의 화해는 있을 수 없다'는 비토 세력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는 유 원장조차 인정하는 내용이다. 징후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움직임도 그렇다. 민주당 연대연합특위는 4·27 재보선 14곳 가운데 순천지역은 공천하지 않고 나머지 13곳에서는 다른 정당들과 경쟁해서 '후보단일화'를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김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국참당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국참당이 원내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갖는 것을 원치 않는다. 현재까지 국참당의 위상은 야권 연합의 대상에도 제대로 끼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이 낮다. 유 원장의 개인적 인기와 결집된 정치 시민인 '친노 세력'의 호응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국참당이 김해를 가져간다면 대번에 달라진다. 당장에 내년 총선에서 다른 야당과 동등한 지분으로 연합에 참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 원장이 현재 야권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은 정치인임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이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역시 "민주당이 김해와 순천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재보선 당시 민주당이 4.27 재보선에서 '양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만큼, 순천은 민노당이 김해는 국참당이 야권 단일후보로 나가는 것이 정치적 도의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민노당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의 원로들 역시 4.27 재보선의 야권 연대를 논의하기 위한 연석회의를 갖고 승리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후보가 출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겠지만 "국민참여당에 부정적이거나 불리해지는 방향으로 논의가 결정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

▲ 손학규 민주당 대표
당 내외부에서 파상적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압박에 대해 민주당의 공식적 반응은 '불쾌하다'는 것이다. 후보의 경쟁력을 강조하며, '양보'는 '나눠 갖기'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압박의 수위가 워낙 거세고, 방향도 도처인지라 점차 고립되는 양상도 뚜렷하다.

일각에서 정면 돌파를 선택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까지 전면화되고 있진 않지만, 손학규 대표의 분당 출마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주목할 만한 전략이다. 어차피 1년 임기의 국회의원이니 만큼 과감히 김해와 순천을 양보해 명분을 세우고, 손 대표가 직접 출마해 재보선의 성격을 전국적으로 격상하자는 것이다. 민심의 호응을 얻어 3곳 모두에서 승리한다면 금상첨화이고, 설령 손 대표가 패배하더라도 분당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할 때 '야권연합'의 득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야권연합'의 명분을 살려야 하고, 재보선도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년 총선과 그 이후를 도모할 디딤돌을 놓을 수 있다. 절실히, 절묘한 한 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민주당의 선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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