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념해서 보면 늘 비슷하다. KBS 뉴스가 정부와 관련된 '논란'을 전하는 방식은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졌다. 우선 아무리 논란이 심하더라도 논란, 그 자체에선 다루지 않는다. 정부의 해명이 나올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뒤늦게 정부의 해명이 나오면 충실히 따른다. 정부가 미처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거나, 동문서답격의 해명일지라도 괘념치 않는다. 일단, 따른다.

그리고 절대로 논란을 전면에 배치하지 않는다. 보도를 안했다는 비판에서만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한 듯 안 한 듯 편성한다. 뉴스 말미에 감춰두거나 혹은 자극적인 리포트들 사이에 묻어둔다.

▲ 14일 밤 KBS <뉴스9>은 UAE 원전 수주 논란과 관련한 정부의 해명을 전체 뉴스의 맨 마지막 꼭지인 32번째 리포트로 편성하며, 정부의 해명을 그대로 좇는 보도를 선보였다.
어제(15일) KBS <뉴스9>은 스포츠 뉴스를 제외한 전체 뉴스 꼭지 32개 가운데 무려 18개를 폭설 관련 소식으로 채웠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불편하다'는 정도의 문제의식은 지겹도록 반복됐다. 그리고 정규 뉴스의 맨 마지막 꼭지였던 32번째 리포트에서 UAE 원전 수주 문제를 다뤘다. 리포트 명은 "금융 지원은 국제관례"였다.

리포트 명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의 입장, 보도 자료를 그대로 쫒은 리포트였다. 그 동안 KBS는 UAE 원전 수주와 관련해서 단신 이상의 보도를 한 적이 없었다. 해외 파병이 약속되고, 공사비 이면 계약으로 논란이 뜨거웠지만 뉴스 프레임에 해당 문제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UAE 원전 문제가 KBS <뉴스9>에 등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슈가 논란 단계에 머물 때는 전혀 보도하지 않다가, 정부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면 그때서야 비로소 보도한다. 전형적이다. 관영 방송의 행태다.

KBS <뉴스9>의 보도 행태는 앞서 말한 정부와 관련된 논란을 전하는 패턴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만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UAE 원전사업을 수주하며, 경제적 효과가 몇 조원이니 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더니 그 실상은 공사비 대출 이면계약을 한 것이어서 막대한 세금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사실을 계약 당시에 공개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정부는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금융지원은 '국제관례'라는 해명을 했다. 국제관례가 그러건 말건 계약 내용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비판의 이유인데, 정부는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한 셈이다.

하지만 KBS는 괘념치 않는다. 애초의 논란이 무엇이건 정부의 설명을 충실히 전하면 그 뿐이다. KBS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 공사대금도 6천억 원을 받은 만큼 계약도 완성돼 있다"는 정부의 설명 그 자체이다.

전체 공사비 186억 달러 가운데 100억 달러를 수출입은행이 빌려줘야 한다. 상환 기간은 28년에 이른다. 대출 조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전체 공사비의 50% 이상을 빌려주고, 공사까지 해줘야 하는 원전 수주 공사는 사업성이 매우 떨어지는 장사임은 분명해 보인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인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현재의 KBS에게 그걸 기대하는 것은 MB에게 '소통'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난망한 일일 것이다.

KBS는 MB가 직접 UAE로 날아가 원전수주 계약을 했을 당시, 엄청난 보도를 쏟아냈었다. 다 된 밥에 숟가락 얻으며 '있는 생색, 없는 생색' 다 내는 MB의 처세가 기가 막히긴 했지만, MB가 그런 과도하고 무리한 홍보 전략을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KBS를 비롯한 장악된 언론들이 그것을 무리 없이 받쳐 줄 것이란 계산이 없이는 불가능한 행보였다.

▲ 지난 2009년 12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UAE로 출국하여, 원전수주 계약을 이끌었단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방송 3사의 메인 뉴스 화면 캡쳐
당시 KBS는 <정상 외교로 뒤집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각국 정상들까지 나섰던 이번 원전 수주전은 기술력뿐 아니라 외교력, 나아가 국력의 싸움이었다”면서 “특히 현대건설 회장 시절 원전 건설을 지휘했던 이 대통령의 경험과 지식이 이번 비즈니스 정상외교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청와대는 평가했다”고 정부의 보도 자료를 그대로 읊었던 바 있다.

UAE 원전수주는 계약 하루 전 대통령이 직접 출국하여 마지막 막후 지휘를 통해 47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공사를 수주했다는 드라마틱한 사연으로 포장됐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 출국 2주 전 사실상 계약이 완료됐다는 사실이 전해졌고, 또 얼마 후에는 파병을 해주기로 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그리고 또 다시 공사비의 50% 이상을 정부가 대출해주는 조건이라는 사실까지 추가로 확인됐다.

계약 체결 당시 혼신의 힘을 다해 대통령의 퍼포먼스를 연출해주고, 국운 상승의 바람을 잡았던 KBS다. 그러나 KBS가 연출했던 퍼포먼스, 잡았던 바람의 실상은 매우 초라한 헛바람에 불과했음이 확인됐다. KBS가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 공영 방송으로서 일말의 사회적 책임감이라도 있었다면, UAE 원전 수주 논란에 대한 정부의 뒤늦은 해명을 뉴스의 맨 마지막 꼭지로 보도 자료 읊듯이 보도할 수 있었을까? 어제, 그렇게 눈이 오지 않았다면 KBS 뉴스는 또 무엇을 선전했을지, 갑갑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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