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자 경향신문 1면
각종 민생 파동, 갈등관리 실패 등 총체적 국정위기다. 경향신문의 진단이다.

14일자 경향신문은 1면과 4~6면을 털어 “구제역 파동과 물가·전세대란 등 서민 생활의 위기는 적절한 대책 없이 확산되고, 동남권 신공항,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국책사업은 ‘공약’ 번복 논란 속에 ‘지역 대 지역’의 무한투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한발 물러서고 정부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해 무능·무책임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 14일자 조선일보 사설 <박근혜, 이젠 내키지 않는 질문에도 답할 때>
거북한 주제를 피하려 한다. 조선일보의 분석이다.

14일자 조선일보는 <박근혜, 이젠 내키지 않는 질문에도 답할 때>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여당 내에서 집안싸움이 난 과학 비즈니스 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박 전 대표 지역구인 대구도 당사자의 하나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는 이 두 문제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며 "국민들은 나라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문제에 대해 차기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앞서 달리는 박 전 대표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압박했다.

닿아있다. 현재의 권력은 무능하고, 미래의 권력은 무책임하다. 조선일보는 '국정 위기'에 대해 입체적으로 쓰지 않고, 경향신문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하지만, 맥락은 같다. 언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안을 설명하는 방식, 부각점은 다를 뿐 정국을 이해하는 시선은 엇비슷하다.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의 혼란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MB와 박근혜는 나란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민생대란에 MB는 그 흔한 유감 표명 한 번 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가 '생애주기 복지론'을 띄운 이후 가타부타 말이 없다. 유례없는, 괴이한 침묵이지만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MB의 국정 지지도는 여전히 50%를 육박하고, 박근혜 대세론 역시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다. 이 역시 유례없는, 괴이한 결과다.

신문이 3개 면을 털만큼 국정 혼란이 만연했지만, MB는 집권당을 때 아닌 개헌 논쟁으로 밀어 버렸다. 어쩌면 박 전 대표의 대답을 요구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인데, 박 전 대표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옳다 아니다, 된다 안 된다의 말없이 벌써 며칠 째 묵언수행중이다.

경향과 조선의 공통된 반응은 '답답함'이다. 무슨 말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향은 그렇다 치고 조선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권력자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을 그렇게 길들인 것은 바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친정부 매체들이다. 지난 3년간 낙하산이 장악한 방송과 조중동을 비롯한 친정부 매체들은 권력자들이 굳이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언론은 권력자의 엠바고 남발에 동조하고, 마사지 의혹엔 침묵하며 권력을 편안케 했다. 때때로 권력이 나눠 줄 떡고물에, 권력자가 흔드는 당근에 현혹되어 언론 본연의 비판성을 뒤로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상황이다. 국정이 총체적 위기 상황이지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조차 까마득하다. 구제역 파문에 MB가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한다는 것은 상상 조차 되질 않는다.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 비즈니스 벨트 문제를 청와대가 직접 설명할리 또한 만무하다. 그런 정도의 염치를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은 정부이고, 몰염치한 정부를 만든 팔 할의 책임은 정부에게 길들여진 언론에게 있다.

▲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
개헌 발의하려면, 대통령이 직접 발의하라.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의 직격탄이다. 홍 최고위원은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집중돼 단임 독재의 대통령으로 계속 전락할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하고, '왜 이 시점이냐'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해보라"고 고쳐 물었다. 홍 최고위원은 "(대통령이)에둘러서 '헌재와 대법원 간이 이상하다',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등 엉뚱한 논리로 개헌논쟁을 하고 있다"며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홍 최고위원의 제안에 청와대가 화답할 수 있을까? 또는 홍 최고위원 수준의 비판을 박 전 대표가 할 수 있을까? 국정은 총체적 위기이되 MB는 철저히 무능하고, 할 말이 태산일 것 같은 박 전 대표는 말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

불과 6년 전, 국민에게 직접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임기 1년을 포기하겠다고 했던 대통령에게 조중동 등 언론은 상상할 수 있는 최상급의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현실감이 없다고 했었다. 진정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개헌을 던지고 받으며 기이한 침묵 속에 그 셈법에만 몰두하는 MB와 박 전 대표 위로 홍 최고위원은 바로 그 대통령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명쾌한 말의 시대에 각광받았던 홍 최고위원은 침묵의 정치가 길어지면서 한나라당 내의 '기인'이 되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경향과 조선의 정부 비판이 다시 최상급의 악다구니로 올라서야 침묵의 정치도 끝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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