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MBC 사장의 연임이 사실상 굳어지는 분위기다. 내부 구성원들의 강한 반대에도,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김재철 사장을 신임 MBC 대표이사 사장 후보 3명 가운데 한 명으로 꼽았다. 구영회 전 MBC미술센터 사장, 정흥보 사장이 함께 사장 후보에 올랐으나, 이변이 없는 한 김 사장이 연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앞서 방문진은 신임 사장을 공모하며, 사장 선임 기준으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실현할 수 있는 인사 △문화방송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 인사 △방송조직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가진 인사를 밝혔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이 지난 1년 동안 보인 행보가 방문진이 밝힌 사장 선임 기준에 적합했는지는 의문이다. 김 사장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MBC 미래 비전, 리더십과 추진력 등 그 어느 분야에서도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 김재철 MBC 사장 ⓒMBC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실현? 되레 <PD수첩> 사전 시사 진행

김재철 사장이 지난 1년의 행보는 특히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행보와는 거리가 멀다. <PD수첩> 불방 사태와 연성화 된 MBC뉴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8월17일, MBC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이 김 사장의 ‘한 마디’에 전격적으로 불방됐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다룬 이 방송에 대해 김 사장이 ‘사전 시사’를 고집하면서 결국 방송은 나가지 못했다.

방송 당일, 김 사장은 ‘사실 관계 확인’을 이유로 사전 시사를 요구했다. 제작진이 “사전 검열은 있을 수 없다”고 이를 거부하자, 김 사장은 방송을 불과 3시간 남짓 남겨둔 시점인 밤 8시30분 경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에 따른 사규 위반’을 이유로 방송 보류를 결정했다. 결국, 일주일 뒤인 24일 김 사장과 경영진이 최종본에 대한 시사를 진행한 이후에야 4대강 방송은 전파를 탈 수 있었다.

누구보다 방송의 독립을 지켜야 할 경영진이 직접 나서 사전 시사를 한 것으로 두고 당시 MBC내부에서는 ‘김 사장이 연임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더군다나 해당 방송은 국토해양부가 제기한 방송 가처분 신청에 대해 법원이 기각 판결을 내렸음에도 경영진 스스로가 불방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컸다. 당시 노조도 특보를 통해 “PD수첩 불방은 연임에 목 맨 김 사장의 자충수”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뿐 아니다. 지난해부터 MBC뉴스에 대해 ‘급격하게 나빠졌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김 사장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MBC뉴스가 시청률을 위해 ‘생활 밀착형’ 보도에 열을 올리면서 MBC내부에서는 ‘예리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은 사라졌다’ ‘중립성을 지켰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비판이 잇따라 나왔다. 또, 김 사장과 경영진이 무리해서 강행한 주말 <뉴스데스크> 개편도 ‘졸속’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현재, MBC뉴스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허상 아래,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과는 자못 먼 길을 걷고 있는 게 현실이다.

MBC 미래 비전을 수행할 능력, 있을까?

MBC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나아가 이를 수행할 능력이 김재철 사장에게 있는 지도 의문이다.

▲ "진주MBC 지키기 서부경남 연합"이 지난해 7월 진주시청 브리핑 룸에서 진주MBC 사태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희성 오마이뉴스
MBC는 지난해, 진주MBC와 창원MBC를 광역화 시범 지역으로 선정하며, 광역화를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나섰다. MBC가 내세운 이유는 ‘경쟁력 강화’였다. MBC 입장에서는 종합편성채널, 미디어렙 등 MBC를 둘러싼 방송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MBC 광역화를 비롯한 다양한 정책과 방안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과거 MBC 사장들도 내부적으로 광역화를 논의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김 사장이 추진한 것은 지역MBC 광역화라는 이름의 ‘지역MBC 통폐합’이었다. 광역화 과정에서 어느 한 곳은 ‘해산’될 수밖에 없는, 누가 봐도 불평등한 구조의 광역화였다. ‘광역화’라는 이름 아래, 내부 구성원들의 반대와 비판 여론, 심지어 지역 주민들의 반대 여론까지 모두 묵살됐다. 즉, 비판 여론은 철저히 차단됐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해묵은 문제들을 풀기보다는, 인사권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등 강경 행보만을 이어갔다.

물론, MBC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부의 반대 목소리까지 아우르고 품어가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수행 능력’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방송조직 운영에 필요한 리더십과 추진력? 오로지 시청률만

현재 MBC는 잦은 프로그램 개편과 폐지로 진통을 겪고 있다. 구성원들의 격한 반대에도 <후플러스>와 <김혜수의 W>가 ‘경쟁력’ 등을 이유로 폐지됐으며, 이후 같은 논리로 시청률이 낮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줄줄이 중도에 하차하는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MBC는 <후플러스> 폐지를 결정하며, 후속으로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를 신설했다. 첫 회 시청률 6.3%를 기록한 <여우의 집사>는 신설 한 달 만에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폐지가 결정됐다. 당시 내부에서는, 경영진이 개편으로 앞두고 정확한 검토와 철저한 준비를 하기는 커녕, 사장의 ‘오더성’ 프로그램을 제작진에게 떠안기며 성과만을 강요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 MBC 일일드라마 <폭풍의 연인>ⓒMBC
MBC는 또, 지난달 일일 연속극 <폭풍의 연인>에 대한 조기 종영을 확정했다. 당초 120부 편성이 예정돼 있었으나, 낮은 시청률을 이유로 조기 종영이 결정됐다. 이 드라마의 나연숙 작가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장의 지시 사항에 의한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개편도 논란이다. 최근, 김영희 책임 프로듀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신입사원’ 프로그램을 신설을 뼈대로 한 일밤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바타 소개팅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뜨거운 형제들’과 ‘오늘을 즐겨라’ 코너는 폐지된다.

그러나 새롭게 신설되는 프로그램을 두고 말이 많다. ‘나는 가수다’의 경우, 이미 가창력이 검증된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신입사원’의 경우, 아나운서 지원자들에게 “나는 (주)MBC에게 내 목소리, 행동, 이름, 모습, 개인 정보를 포함한 기록된 모든 사항을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합니다” 등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부분을 동의받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렇듯, ‘시청률’ 하나만을 잣대로 프로그램을 재단하는 경영진의 시각 때문에, 프로그램의 폐지 및 신설 과정에서 공영방송 MBC다운 면모를 찾는 게 어려운 요즘이다. 시청률 하나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영진의 시각이 변하지 않는 이상, 현장에 있는 제작진들은 ‘시청률 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방송조직 운영에 필요한 경영진의 리더십과 추진력은 찾을 수 없다.

방문진은 오는 16일 오후 2시, 사장 최종 후보로 선정된 3명의 경영계획서를 검토한 뒤, 면접 심사를 통해 최종 MBC 사장 후보를 결정할 예정이다. 방문진이 지난해 김재철 사장을 선임할 때처럼 모두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선택을 할지, 아니면 철저한 검증을 통해 ‘방송 독립’을 위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지, 그들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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