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영수회담'이 표류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심 '이번 주 영수회담 개최, 다음 주 등원'을 희망했지만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다. 와중에 박지원 원내대표와 손학규 대표 간의 미묘한 갈등 국면도 있었다. 국회 파행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사과'에서 '유감'으로 낮췄지만 청와대는 이마저 거부했다.

여당과 밀고 당기는 기싸움의 모양새를 연출하는 것마저 원활하지 않다. 한나라당은 온통 '개헌'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고, 언론은 '개헌'을 중심으로 정국 연출에 여념이 없다. 박근혜의 침묵이 민주당의 아우성보다 더 크게 들리는 상황도 여전하다.

민주당 입장에선 곧장 등원을 할 수도 그렇다고 무턱대고 안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등원을 하자는 입장과 말자는 입장 모두 명분이 있다. 등원을 하자는 이들은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에 떠밀려 처리된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과 서울대 법인화법 등 이른바 '날치기 법안'에 대한 수정·폐기 법안을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꼽는다. 몇몇 법안의 경우 논의하기로 한나라당과 합의가 되어 있기도 하다.

반면, 버티자는 입장은 시간이 한나라당의 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가, 전세, 청년실업, 구제역 등 이른바 '4대 민생대란'의 책임이 한나라당에게 있는 만큼 한나라당이 개헌의 늪에 머물면 머물수록 오히려 불리할 게 없단 분석이다.

양쪽의 입장 모두 타당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조기 등원을 통해 '날치기 법안'을 일부라도 수정할 수 있다면 그도 유의미성이 있을 것이고, 민생을 외면할 수 없는 한나라당이니만큼 등원을 조건으로 압박해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지금, 민주당 앞에 놓여 있다. 4.27 재보선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 강원도지사 맞대결이 예상되는 엄기영(왼쪽), 최문순(오른쪽)
4.27 재보선은 18대 국회 임기 중 마지막으로 치러지는 선거로 광역단체장 1명, 최대 국회의원 최대 5명이 뽑히는 선거다. 4.27 재보선은 당 차원에서는 지도부의 재신임 문제로 이어질 것이고, 보다 큰 정치적 차원에서는 이명박 정부 '레임덕' 여부를 실질적으로 결정지을 중요한 정치 일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 총선에 불어올 바람의 방향을 미리 확인하는 기점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 민생의 문제를 서슴없이 '대란'으로 규정한 만큼 4.27 재보선에선 '정권 심판'의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이 마땅할 텐데, 지금까지의 상황은 별로 녹록치 않다. 가장 '빅매치'가 예상되는 강원도지사 선거와 경남 김해의 경우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던 곳이지만 현재까지 예측되는 당선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강원도지사의 경우 한나라당 후보가 누가되느냐에 따라 맞춤형 후보를 내놓는다는 전략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필승을 장담할 수 없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결과가 예상되고 있다. 경남 김해에서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 출마가 확정될 경우 누가 나오더라도 아직까지는 승산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속단하긴 어렵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에게 중요한 것은 영수회담을 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고, 2월 국회에 언제 등원을 할 것이냐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민주당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고민은 바로 4.27 재보선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돌파해갈 것이냐의 문제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4.27 재보선을 성공적으로 돌파해내지 못한다면, 향후 다가올 주요한 정치 일정과 전망이 일순간에 틀어지게 됨을 상기해야 한다. 지난 7.28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공천을 잘못해 이재오 장관을 살려주었고, 그의 역할이 어떻게 정국을 휘감고 있는가를 상기하면 더더욱 그렇다.

강원도와 경남 김해에서 모두 야권 후보가 패배한다면, '레임덕은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망상은 현실이 될 것이다. 야권이 이번 재보선에서도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미 '대세론'으로 굳어 있는 박근혜 현상 역시 그대로 현실이 되어 내년 총선과 대선을 동시 타격할 것이다.

민주당의 강원도지사 후보로는 최문순 의원과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가 거론되고 있다. 최 의원의 경우 엄기영 전 MBC 사장이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할 경우 '언론 장악'이라는 이슈의 대항적 성격으로 맞불을 놓는 것이고,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는 강릉 출신이라는 강점이 있다. 경남 김해의 경우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의 출마 선언이 임박한 가운데 국민참여당도 이봉수 경남도당 위원장이 출마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누가 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인사들이다.

▲ 또 하나의 관심지역인 분당의 경우 한나라당이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강재섭 전 의원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신경민 전 앵커의 민주당 후보 출마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야권은 강원도지사, 경남 김해 그리고 또 하나의 관심 지역인 성남 분당을 3곳에서 최소한 2곳을 가져와야 4.27 재보선에 정치적 의미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엄기영-김태호-정운찬(혹은 강재섭) 카드로 내심 '싹쓸이'까지 기대하며, 4.27 재보선 승리를 발판으로 정치 부재 속의 정국 불안을 잠재우고 총선, 대선으로 분위기를 이어간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박근혜라는 확실한 카드를 쥐고 있는 한나라당이 4.27 재보선을 승리한다면 정치적 균형의 추는 사라지고 정국 주도권은 확실히 한나라당에게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지난 7.28 재보선 당시 민주당은 다음 선거에서는 다른 야당에게 확실한 '배려'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의 토대 위에서 '야권 연합'을 성의 있게 추진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실효성 없을 영수회담이 아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실질적 야권 회담이다. 어느 당이 됐건 한 번 후보가 정해지면 내부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해, 쉽게 발을 빼기가 어려워짐을 감안하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밀집 지역인 울산 동구청장에 관심이 있다. 순천은 비교적 당선이 확실한 지역이지만,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국회의원 수 1명 늘리는 것보다 '야권연대'에 대한 민주당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그 잠재력을 전국적으로 되돌려 받는 것이다. 최소한 이 두 곳에서 과감한 양보를 해야 하고, 경남 김해을에서는 국민참여당과 공정한 경선을 치를 각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영수회담과 2월 국회 등원은 하등의 딜레마가 아니다. 여의도 안에서 보면 그 문제만 보이지만 여의도 밖에서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당장에 도래할 정치적 국면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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