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이 서민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다. 주거의 문제는 보편적 생존의 가장 기초적인 과제다. 집값이 불안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소형 주택의 시세가 불안한 것은 그래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전세난'을 알고 있다며 연일 대책을 강조하고 있다. 주택 문제에 대한 정책결정권자들의 위기감을 폄훼해선 안 되겠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대책들은 별 약발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며 언론이 일제히 '전세난'을 강조한 이후 시장의 동향은 더 걷잡을 수 없이 심란해지고 있음은 확연하다.

▲ 주택 전세가격 오름세가 무섭다. 6일 KB국민은행은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를 통해 지난달 전국 평균 전셋값 상승률이 2002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다고 전했다. 그 이유로는 집 구매보다 전세선호, 방학 이사, 예비 신혼부부 등의 수요 증가와 전세난에 의한 기존 세입자들의 재계약 선호로 인한 공급 부족 등을 꼽았다. 사진은 이날 송파구 잠실의 부동산 모습 ⓒ연합뉴스
대책 없는 전세난 과보도는 오히려 시장을 요동치게 한다

전셋값 폭등의 불똥이 여기저기로 튀고 있다. '전세 난민'이 생기고 있다는 보도들이 대대적으로 나왔지만, 서울에서 밀려난 이들이 수도권으로 옮기며 수도권 집값도 오름세로 돌아섰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문제도 있다. 아파트 전세에서 밀려난 이들이 매년 전셋값 불안에 떠느니 이참에 차라리 아파트 전셋값 정도로 구매가능한 저렴한 빌라와 다세대 주택을 구입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서울 외곽 집값이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서울 외곽의 들썩임은 수도권 아파트 단지들의 상승과는 조금 다른 움직임이다. 서울 외곽 지역의 경우 실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여 다니기 때문에 인근에서 인근으로 이사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세가 아무리 오른다고 한들 동일 지역의 매매가를 추월할 순 없기에, 전세에 살던 사람들이 다소 돈을 보탠다고 해도 매매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주택만 거래가 성사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도는 '아파트 전세=사회적 약자', '빌라/다세대 매매자=사회적 강자'라고 보기엔 빈틈이 많은 상황이다. 사회적 관심이 일제히 전셋값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보도와 호들갑은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공공연히 폭리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팔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중개업자들은 '전세를 보러 다니는 사람을 매매로 유도하겠다'며 공공연히 집을 내놓은 사람들에게 폭리를 요구하고 있다. 전세를 알아보러 온 사람에게는 '뉴스 못 봤느냐'며 전세가 없다고 하고, 차라리 집을 사는 것이 낫다고 꼬드겨 매매로 유도한 뒤 규정 이상의 수수료를 과도하게 챙기는 것이다.

황당한 중개업자, 부동산의 이중 수수료 요구

얼마 전, 이사를 위해 집을 내놨다. 봄 이사철이기도 하고 지하철과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인지라 쉽게 거래가 이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랜 경기 침체로 매물은 적체되어 있었고, 사람 생각이 다 엇비슷하다고 그 매물들은 일제히 쏟아졌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제법 있지만 워낙에 매물로 나온 집들이 많아서인지 거래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거래가 잘 되지 않자, 중개업자는 은근한 압박을 가해왔다. 주변에 엇비슷한 매물이 많으니 집값을 내리라는 것이었다. 내놓은 집값이 전셋값과 엇비슷하므로 집값을 조금 내리면 전세를 보러 다닌 사람까지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서 자연스런 요구라는 생각도 들어 금액을 조정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개업자가 은근히 '더블 수수료'를 요구해왔다. 전셋값 때문에 이사 다닐 사람은 많지만 그만큼 적체된 매물들도 많으니 조례로 정해진 것보다 많은 이른바 '더블 수수료'를 주지 않으면 자신이 적극적으로 중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애초 별로 가격이 높지 않게 집을 내놓았고, 그동안의 대출을 생각하면 더 이상 내릴 수도 없는 입장이었으나 울며 겨자 먹기였다. 그 중개업자는 동네에서 가장 목이 좋은 곳에 사무실을 갖고 있었고, 엇비슷한 집들이 몰려있는 빌라/다세대 밀집 지역에서 다들 그렇게 '더블 수수료'를 준다면 안 주는 우리 집을 매매해줄 리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명백한 불법, 마땅한 관리 방법 없다는 구청

물론, 더블수수료를 주는 것은 불법이다. 거래 완료 후 신고를 하면 중개업자가 꼼짝없이 당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부동산 거래라는 것이 가장 '사람이 하는 일'에 가까운 서비스인지라 법은 멀고 인정상 어쩔 수 없는 관행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부랴부랴 집을 보여주길 수차례, 몇 번의 실랑이와 전화 통화 끝에 겨우 계약에 의사가 있는 매입자가 나타났다. 중개업자는 이번에는 '자신의 손님이 아닌 다른 중개업자가 데려 온 손님'이라는 이유로 한참 깍은 금액에서 또 100만 원을 더 수수료로 줄 것을 요구했다. 중개업자의 행태가 너무 어이가 없어, 이번엔 비교적 단호히 "그렇게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 뒤 중개업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깎아 놓은 가격에서 100만 원 정도를 더 올려놓았으니 거래를 하자는 것이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집은 임자가 있는 것이라는 옛말이 떠올라 그러자고 했다. 문제는 거기부터였다.

계약을 하러 오겠다는 손님이 오지 않은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중개업자는 그 책임을 나에게 돌렸다. 중개업자가 이중으로 챙길 수수료 때문에 '업계약서'를 쓰기로 했던 것인데, 금액이 높아진 상황에서 계약서를 쓰자고 해 손님이 안 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어이도 없고, 화가 나서 "왜 일처리를 이렇게 하느냐"고 따져 묻자, 그 중개업자는 막말을 하더니 끝내 "무식한 것들 집은 팔아주지 말아야 한다", "이 동네에서 너희 집 팔수 있나 보자"며 막말을 쏟아냈다. 너무 황당한 심정에 관리 감독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구청 지적과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별 다른 관리감독의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집을 팔아야 하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이해관계는 언제나 충돌한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그 간극을 합리적으로 메우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군이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가 전 국민의 관심사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중개업자는 부동산 가격이 출렁일 때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이중의 부당 이득을 취하는 '사욕의 화신'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한 해 동안 부동산 거래량은 기록적인 감소세를 보이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중개업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많이 팍팍해졌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바 아니지만 사상 최악의 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는 2011년 봄 이사철에도 중개업자들의 농간과 횡포를 계속되고 있다.

대책 없는 정부, 중개업자들의 '떴다방' 행패

봄 이사철을 앞두고 전셋값이 폭등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오래도록 이사가 정체된 이들이 한 번에 움직이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미리 대책을 세워뒀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수도권 아파트 단지들의 전셋값은 상승세인 반면 서울 외곽의 빌라/다세대 주택의 경우에는 오히려 매매가가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기현상을 자세히 뜯어보면, 중개업자들의 태도가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수도권 아파트에 가보면 '전셋값' 폭등을 이유로 대폭적인 오름세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서울 외곽 주택을 매매할 때는 주 수요자들이 전세 거주자들이라며 집값을 싸게 흥정한다. 웬만한 수도권 단지의 아파트 전셋값이 서울 외곽의 빌라/다세대 주택값보다 높다. 하지만 한 쪽은 집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되어 냉가슴을 앓고, 다른 한 쪽은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피해자'의 구도로 정립되는 것은 이상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중개업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사실만 강조하며 가장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부동산 시장을 몰아가고 있다.

언론이 전셋값 폭등의 상황을 바지런히 전하고 있지만 그 근본적 이유나 대책에 대한 심층적 취재를 포기함으로써 상황의 해소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있는 가운데, 언론의 이러한 과보도로 인해 거래 심리만 잔뜩 증폭돼 가격 상승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개업자들은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심정으로 부당 거래와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떴다방'보다도 못한 행패를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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