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3년간 공영방송은 관영방송이 됐고, 지상파 민영방송은 상업방송이 됐으며, IT(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분야는 IT(기술무시·Ignorance Technology)가 됐다."

24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개최된 '방송통신위원회 3년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채수현 언론연대 정책위원은 지난 3년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 왼쪽부터 채수현 언론연대 정책위원, 이진로 영산대 교수, 김지현 전미네 활동가, 안정상 민주당 전문위원 ⓒ곽상아
참석한 다른 패널들의 평가도 비슷했다. 이진로 영산대 신방과 교수는 "정부의 입장과 시각을 많이 반영하고, 시민의 입장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방통위가 '방송통제위원회'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우리가 부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으며, 조준상 언론연대 사무총장도 "지난 3년은 이명박 정권과 방통위에게는 '방송장악사', 방송 구성원에게는 '방송 투쟁사', 상식있는 시민에게는 '방송 잔혹사'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활동가는 "3년 전 방통위는 전체적 철학과 전망, 비전이 아닌 행정공학적 논의 속에서 출범했다. 전체적 전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지난 3년간의 활동도 정권의 언론통제를 협조하는 역할에 그친 것 같다"며 "방통위는 미디어 전반에 대한 진흥, 규제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임에도 오히려 표현의 자유 등과 같은 미디어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억압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 3년간 시청자참여 프로그램 제작지원, 시청자 평가원 운영 등 시청자지원사업 예산이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며 "2기 방통위에서는 이를 어떻게 확대개선해 나갈 것인지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종편에 들인 노력 100분의 1만이라도 IT분야에 쏟았더라면

안정상 민주당 전문위원은 "방통위는 말 그대로 '방송장악 전위대' '종편사업 추진위원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최시중 위원장이 방송장악과 종편 만들기를 위해 전력을 쏟는 사이 IT강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방통위의 지난 3년은 곧 '통신불구위원회'였다. 1기 동안 통신분야 정책은 방송쪽 이슈에 묻혀서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IT분야는 전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쳤으나 이명박 정부는 IT 기술에 대해 무시했고, 겉핥기 정책만 내놓았다.

이는 국제적 통계로도 입증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보통신기술 개발지수'는 2007, 2008년 세계 1위였으나 2009년 2위, 2010년 3위로 추락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네트워크 준비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2008년 9위에서 2009년 11위, 2010년 15위로 추락했다.

스마트폰에 대해서도 정부는 전혀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작년 4월에서야 겨우 무선인터넷활성화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럴듯하게 10대 과제를 발표했으나 지금 실행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종편채널 사업자들에게 들인 노력의 100분의 1이라도 IT분야에 쏟았더라면, IT분야가 이렇게까지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방통위설치법…"자성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2008년 방통위 설치법이 제정될 당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토론회 시작에 앞서 김승수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방통위가 대통령 직속의 정부기구로 설치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어야 했는데 당시 너무 순진했다. 당시에는 아무리 보수적 세력이 들어선다 할지라도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연구자로서 국민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채수현 언론연대 정책위원은 "예고된 재앙을 안고 있었던 법을 왜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던 것인가"라고 물으며 "방통위 설치법의 모태는 참여정부 법안이었기 때문에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 법에 대해 두려움을 갖거나 잘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했다.

이어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수는 있겠으나 대응에 있어서 언론노조도 그렇고 여러가지 아쉬움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안정상 위원은 "방통위 설치법안이 만들어지는 데 우리가 빌미를 제공한 부분은 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처방약은?…헌법기구화, 만장일치제, 거부권 도입 등

대안으로는 헌법기구화, 만장일치제로 법 개정, 정치적 중립 위반시 처벌규정 마련, 거부권 도입 등이 거론됐다.

▲ 김승수 전북대 교수(좌)와 조준상 언론연대 사무총장(우) ⓒ곽상아
발제를 맡은 조준상 언론연대 총장은 "근본적으로 방통위는 해체하는 게 맞다. 정권 교체 이후를 염두에 두고, 해체의 분명한 상을 내년 3월까지 언론노조와 미디어행동을 중심으로 마련할 계획"이라며 "(단기적으로는) 방통위가 미국의 FCC 정도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헌법 개정을 통해 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 감사원 등과 같이 헌법기구화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시청자 주권 배제된 방송통신기본법 원점 재검토 △수신료위원회 포함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등을 거론했다.

김승수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주요 정책에 있어서는 (여야 위원들끼리) 반드시 합의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게 어떤가?"라며 "위원장 또는 위원장 후보에 대해 거부권을 도입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이진로 영산대 신방과 교수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느 한쪽이 반대하는 사람은 방통위원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정파성이 좀 줄어들지 않겠는가"라며 "만장일치제 역시 방통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안정상 민주당 전문위원은 "(만장일치제는) 그동안 합의제기구임에도 독임제로 운영해온 여러 사례를 취합해 국회에서 법안 개정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안 위원은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기 방통위원 선임과 관련해서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시민사회의 여론을 수렴하는 등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수현 언론연대 정책위원은 "전문가들은 방송, 통신, 기타 관련 분야에 있어서 △방통위의 전체적 공과 △방통위 5인의 상임위원들이 한 일 △방통위 관료들이 한 일 등을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