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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19.8.21 수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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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프라임] 독립운동가 유일한의 교육철학, 지금 여기 우리에게 남긴 또 하나의 유산[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8.15 17:05

[미디어스] 광복 74주년, 그 어느 때보다도 '광복'의 의미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시절이다. 2019년, 7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반일과 극일을 목놓아 외쳐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지난 74년의 현대사를 어떻게 살아왔길래 오늘의 이 시점에도 '반일'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일까? 그간 우리는 목소리만 높여 비분강개만 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특집들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꾸준하게 100주년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방송 중 하나가 바로 EBS <다큐 프라임>이 아닐까. 

이순재 배우를 프리젠터로 앞세워 2018년 8월 15일 첫 방송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를 시작으로, 미국 하와이 동포들의 독립운동, 작은 마을 영산에서 시작된 23인의 독립운동 결사대, 박재혁, 김익상, 김지섭 등 1920년대 일제에 자신을 던져 항거했던 20대 청년들, 그리고 대만에서 일본 장성을 처단하고자 한 조명하 의사 등 우리 기억 속에 남겨져 있지 않은 독립운동사를 소환하는 한편, 윤봉길 의사 후손과 그의 폭탄에 희생된 일인의 후손과 만남을 통해 '사과와 화해'의 방향을 모색해 왔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독립운동가 유일한 

EBS <다큐프라임> 제7부 ‘100년의 가르침, 청년의 꿈’ 편

2019년 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EBS <다큐 프라임>은 우리가 몰랐던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등장시킨다. 아니 몰랐던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유일한 박사. 

우리에게 기억된 유일한 박사는 1전의 추징금도 물지 않은, 세무정리가 완벽하게 되어있던 회사를 운영하신 분. 기업을 세습하지 않고 지식과 경영 노하우를 갖춘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신 분. 존경받는 유일하다시피 한 기업인으로 기억되는 분이다. 

바로 그 기업인 유일한의 또 다른 정체성 '독립운동가'의 면모를 <다큐 프라임>은 밝힌다. 1971년 3월 11일,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난 유일한 박사. 그분의 유언장은 지금까지도 세상에 회자된다. 그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주식 14만 941주는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기증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재벌가의 세습 관행과 달리, 유일한 아들 유일선 씨에 대해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자립하라 하였다. 그나마 아직 대학을 나오지 못한 손녀 유일링에게는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 1만 달러를 지원하는 것으로 유산의 몫을 다했다. 

당시 신문 사회면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참 기업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유일한 박사. 그의 올곧은 기업가 정신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그 유래를 <다큐 프라임>은 바로 유박사의 독립 정신과 실천에서 찾는다. 

'암호명 A는 한국인이다. 나이는 50세, 한국에서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열정적인 애국자이고 수십 년간 한국에 엄청난 부와 시간을 쏟아부었다.'라는 OSS 서류 속 인물은 바로 유일한 박사이다.

EBS <다큐프라임> 제7부 ‘100년의 가르침, 청년의 꿈’ 편

자수성가한 상인 유기연 씨의 장남으로 태어난 유일한 박사. 아버지 유기연 씨는 불과 9살의 나이에 유일한을 미국으로 보낸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입양되어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란 유일한은 낮에는 농장일, 방학이면 신문 배달을 하며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여 네르래스카 고등학교에 개교 이래 최초의 동양인 유학생이 된다. 

원래 이름이었던 '유일형'을 '세계 제1의 대한민국'이란 뜻의 '유일한(柳一韓)으로 개명한 소년. 1909년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만든 헤이스팅스 소년병 학교에 들어가 독립전쟁 지휘관의 꿈을 키운다. 1919년 서재필이 소집한 1차 한인회의에 참여하여, 한국 독립의 열망을 알리는 데 동참했다. 1942년에는 재미 한인으로 구성된 한인 국방경비대 창설을 주도하고, 1945년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내 진격을 위한 OSS 작전에 참여하여 강도 높은 군사 및 첩보 훈련을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였다. 

독립운동가로, 그리고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친 조국에서 재건과 발전에 앞장섰던 유일한 박사. 하지만 ‘위인’이지만 겨우 학자금 1만 달러를 남긴 할아버지가 원망스럽진 않았을까? 그러나 자제분들은 물론, 방송 전까지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에 대해 몰랐다던 손녀 유일링 씨는 자신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주지 않은 할아버지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디 손녀뿐인가. 아들인 유일선 씨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아버지가 만든 회사에서 평생 일했지만 퇴직 후 외려 자신에게 책정된 퇴직금이 너무 많다며 퇴직금 반환 소송을 낼 만큼 아버지에 이어 강직하고 청렴한 가풍을 이어나갔다. 도대체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교육이 어땠길래? 

성공 도구, 돈, 직위를 물려주면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인물이 될 수 없다. 한 사람이 최고로 강인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만의 방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유일링 씨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가장 중요한 인생수업이다. 

유일한 박사의 교육철학

EBS 다큐프라임 <역사의 빛, 청년> 제8부 ‘지금, 여기 유일한’ 편

최초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50의 나이에도 침투 작전에 참가했던 박사는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단다. 할아버지의 유지 덕분일까. 예일대 심리학과에 들어갔지만 대학사격팀의 첫 여성 주장이 되었던 유일링 씨는 이제 캘리포니아 레드블러프에서 총기안전교육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다큐 프라임>은 이처럼 물고기를 낚아서 주는 대신, 물고기를 스스로 낚을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유일한 박사의 교육 방식을 오늘에 묻는다. 

초등학생들에게 물어본 장래희망- 운전하는 아빠의 모습이 좋아 택시기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 홈런을 쳐서 놀라게 만들고 싶어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 싸움을 잘하니 군인이 되고 싶다는 아이, 자신의 가사를 직접 써보고 싶어 래퍼가 되고 싶다는 아이 등 다양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만 되면 달라진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안정적 직업을 위해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하고, 산업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만 역시나 공무원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아이, 농부가 되고 싶지만 일정한 수익을 위해 교사를 하기로 맘먹었다는 아이. 중고생 10명 중 7,8명이 대학에 진학,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교사, 공무원을 장래희망으로 꼽았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다름 아닌 부모들이었다. 

'몸 쓰는 일, 뭘 만드는 일은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사회적으로 무시를 당하게 된다며 몸 쓰는 일보다는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강권하는 부모들. 해본 게 공부밖에 없으니 다른 꿈을 가질 엄두를 못 내는 아이들. 정작 대학에 들어와 아이들은 고민한다. 공부를 해왔는데 이게 내 미래에 맞는 건가. 아니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고민 역시 학벌위주의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라며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EBS <다큐프라임> 제7부 ‘100년의 가르침, 청년의 꿈’ 편

네브래스카 고등학교에서 기술교육을 받고, 미시간 대학에서 미국의 산업 발전을 눈으로 목격했던 유일한 박사는 일찍이 기술교육의 중요성을 알았다. 식민지 조국의 독립이 꿈이었던 청년. 자신을 대학에 가게 하고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만들었던 원동력이 ‘독립에의 의지’였던 청년은 해방 후 그 의지를 한국인들의 '더 나은 삶'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발전되어가는 미국의 산업 상을 경험한 후 1954년 1500평의 대지와 500만 원의 기금으로 한국고등기술학교의 첫 삽을 퍼 올렸다. 실질적인 학문, 기술교육이 국가 발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그 실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퇴행적이다.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유한공고를 다니는 청소년들, 그들의 선택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공부를 웬만큼 하는데 왜 공고를 가냐는 주변의 걱정, 공부 머리가 있는데 조금 더 해서 인문계를 가라는 부모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현재 미국에서 로켓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피츠버그 카네기멜론대학교는 부호 카네기가 만든 카네기 공업학교에서 출발한다. 20세기 산업기술 인재를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는 이제 21세기의 로켓기술의 메카가 되었다. 하지만 유일한 박사가 마찬가지로 기술 입국의 꿈을 안고 만든 유한공고의 학생들은 '왜 특성화고에 가느냐'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기술중심교육만이 아니다. 자신이 공립학교를 나왔던 유일한 박사는 억만장자가 되었음에도 자녀들을 모두 공립학교에 보냈다. 손녀 유일링 씨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공립, 라콜리나 독립 중학교를 나왔다. 여느 미국인처럼 이제는 사라진 악기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독립심을 키웠다는 유일링 씨. 바로 그런 자산이 오늘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의 근원이 되었다 회고한다. 

유일한 박사의 삶,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투철한 교육 방식은 74주면 광복절에 '옛것을 오늘에 되살리는' 시의적절한 화두이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날의, 그 시절의 분노가 아니라 본받고 이어받아야 할 그 ‘무엇’이다. 그 무엇에 가장 교감이 될 독립운동가로 유일한 박사만 한 분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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