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국회 정상화라는 말을 종종 언론 보도에서 본다. 국회 정상화가 이미 된 줄 알았는데 다시 정상화가 된다고 하니 놀랄 때도 있고, 비정상이 정상 같고 정상이 비정상 같기도 해 앞으로 더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건지 헛갈릴 때도 있다. 아무튼 지난 29일 국회는 다시 정상화 되었다는데, 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29일 여야 교섭단체들이 합의한 것은 추경과 안보의 빅딜이었다. 추경예산안을 처리하고 일본 경제보복 철회 요구 결의안,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규탄 결의안 등을 채택하며 국회 상임위를 열어 안보 관련 질의를 진행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30일 국회 외통위가 열렸고 31일에는 운영위, 정보위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자유한국당이 ‘국회 정상화’로 가닥을 잡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일본의 수출 규제 여파가 커진 상황에서 북한 목선 얘기나 하면서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등만 고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여론조사상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 정부 여당이 ‘반일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친일’로 몰리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담을 털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둘째는 실제 지지율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당내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라 공천 문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황교안 대표 체제의 대중적 ‘약효’가 다했고 주요 당직이나 국회 상임위원장을 친박계 인사들이 장악하면서 ‘도로 새누리당’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대응을 이어가려고 한다. 첫째는 ‘친일-반일 프레임’에 ‘안보 프레임’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둘째는 보수통합론을 내세워 내부 분열을 막고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것이다.

마침 북한이 이스칸다르 등으로 불리는 변형된 형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상황이다. 이 새로운 단거리미사일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함께 ‘게임 체인저’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하는 얘기도 있다. 탄도를 그리는 운동을 하다 궤도를 바꾸는 회피운동을 하는 게 특징인데다 고체연료를 사용해 사전 탐지가 어려워 ‘킬체인’이 무력화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맞춰 ‘안보 프레임’을 극대화 하기 위해 핵무장론이 다시 등장했다. 자유한국당 조경태 최고위원이 29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에서 전술핵 재배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NPT를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고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여기에 동조했다. 이에 앞서 28일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자기 페이스북에 이른바 ‘나토식 핵 공유’를 다시 주장했다. 30일 국회 외통위에서도 이들에 의해 관련 질의가 나왔는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나토식 핵공유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31일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들이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 보고서 내용을 크게 다룬 것은 이런 맥락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비전략 핵무기’를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특별히 선정된 아시아 동맹국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수언론은 이런 구상을 ‘변형된 나토식 핵공유’로 지칭하고 있다. 이들 보도에 의하면 유사시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 전투기가 전술핵폭탄을 장착해 정밀 타격을 시도할 가능성 등도 언급된다고 한다. 최근 북한은 한국의 F-35 도입에 대해 반발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31일 국회 일정에서도 보수정당들은 핵무장론을 강하게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북핵 관련 남북합의의 성과를 없던 일로 되돌린다는 점, 주변국들의 핵보유 논리를 강화해 ‘핵 군축’이라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거스르게 된다는 점, 핵 무기를 보유하는 것 자체로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무시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안보 프레임’을 강화하는 것까지는 전술적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핵무장론을 제기하는 것은 그 한도를 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할 필요가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북핵외교안보특위-국가안보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하며 북핵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을 맡고있는 원유철 의원(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의 두 번째 대응인 보수통합론에 대해선 황교안 대표의 입장 표명에 주목해볼만 하다. 황교안 대표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다”면서 “친박을 키워야겠다, 이런 뜻을 갖고 내가 이 당에 온 것이 아니다. 보수우파를 살려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는 뜻으로 왔다”고 했다. 황교안 대표는 총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권 반대를 깃발로 해서 보수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황교안 대표의 주장은 공학적 시각으로 볼 때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반대를 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반대하느냐가 문제이다. 보수통합은 결국 ‘집토끼’를 목표로 하는 강경파를 중심으로 하느냐, 아니면 중도를 염두에 두고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는 모양을 갖추느냐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문제이다.

자유한국당은 애초 김병준 비대위 시절부터 지금의 우리공화당부터 바른미래당 일부까지를 포괄하는 보수통합론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발생한 쟁점들을 기준으로 해서는 이러한 통합이 쉽지 않다. 당장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놓고 대립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통합의 재료에 ‘핵무장론’이 추가 되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바른미래당의 유승민 의원은 정치 일반이나 경제 영역에 있어서는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왔으나, 안보나 국방 문제에 있어선 ‘전쟁광’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극단적 모습을 보여왔다. 적어도 핵무장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차원에서는 애초 자유한국당식의 ‘빅텐트’ 구상이 가능한 조건의 일부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핵무장 하나를 놓고 보수가 모두 뭉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를 둘러싼 담론 지형에 미치는 영향을 외면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표 계산과 공학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핵무장의 유불리를 따지는 게 아니라 반전평화라는 큰 가치를 기준으로 핵무장 불가를 말하는 정치적 압력이 필요하다. 핵무장을 국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요구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도 마찬가지 기준으로 제기돼야 할 것이다. 이상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그나마 존엄을 지킬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