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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법과 제도의 행간에서 번민하는 인간, 어리석어 눈물 흘리기 전에[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7.24 22:28

결벽증이 있던 사춘기 소녀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언니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 분)를 로비(제임스 맥어보이 분)가 성추행하는 거라 오해했다. 아직 사랑을 모르던 소녀의 오해는 제아무리 캠브리지대 의대를 나왔어도 가정부 집안의 아들이었던 로비를 순간 범법자로 만들어 전쟁터로 끌려가게 만들고 만다. 소녀의 섣부른 예단, 그리고 어른들의 편견 어린 판단은 이들 청춘 남녀의 사랑과 삶을 송두리째 산화시키고 만다. 1930년대 영국, 그리고 이제는 영화로도 유명해진 덩케르크 해안을 배경으로 한 2차대전의 전장 속에서 다하지 못한 순애보는 <로미오와 줄리엣>만큼의 여운으로 <어톤먼트(2007)>를 기억에 남긴다. 

그렇게 <어톤먼트>의 원작자 이언 매큐언은 제도와 규범, 그 틈바구니 속에서 비집고 나온 불완전한 인간, 그중에서도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논한다.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자신이 성장하며 쌓아온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려낸 <체실 비치에서>, 사회적으로 그럴듯한 지위를 가진 두 남자를 통해 드러난 '도덕적 자충수'를 통렬하게 그려낸 <암스테르담>, 우연히 맞닥뜨린 사건을 통해 우리가 믿는 사랑과 도덕, 신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런 사랑> 등의 작품을 통해 유수의 문학상 수상은 물론 전 세계 평론가와 독자들이 사랑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언 매큐언 원작의 <칠드런 액트> 

바로 그 이언 매큐언의 13번째 장편소설 <칠드런 액트>가 영화로 찾아왔다. 더구나 작가의 40년지기이자 <어톤먼트>의 기획을 맡았던 리처드 이어가 감독을 맡았고, 거기에 작가 자신이 '소설에 나왔던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생각을 영화로 옮기는 지적, 감성적 도전'으로 각색을 맡았다. 그리고 그런 걸출한 제작진의 의도를 엠마 톰슨이 연륜 있는 내공으로 발화시켰다. 

영화 <칠드런 액트> 스틸 이미지

엠마 톰슨이 분한 피오나는 헌신적인 판사다. 남편 잭(스탠리 투치 분)과 함께하는 일상조차 그녀의 일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피오나는 샴쌍둥이 분리 수술 등 사회적 이슈가 되는 중대한 판결에 있어서 한 치도 법리적 빈틈을 만들지 않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집중한다. 그런 그녀에게 가정법원의 또 하나의 사건이 배당됐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17살 9개월 여호와의 증인인 소년 애덤이 수혈을 거부하고 죽음에 이를지도 모를 상황에 대해 그녀가 판단을 내려줘야 하는 것이다. 파탄 위기에 놓였던 가정을 종교를 통해 회복시켰던 부모는 종교적 교리에 따라 수혈을 강력하게 거부한다. 하지만 의료진은 더 이상 소년의 수혈을 지연시키면 이대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며 그녀를 설득한다. 과연, 피오나는 이 솔로몬의 재판과도 같은 상황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앞서 샴쌍둥이의 재판에서 두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대신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명존중의 원칙을 선택한 피오나. 하지만 정작 부모들은 자신의 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언론에 그녀를 비난한다. 거기에 더해 늘 그녀의 일 앞에서 물러났던 남편이 그녀에게 바람을 피울 것이라며 최후통첩까지 하는 상황. 이 혼란스러운 형편 속에서 피오나는 여태 그녀가 해오던 관행을 깨고 당사자인 소년을 만나기 위해 소년이 입원한 병실을 찾는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판사가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에 해맑게 반기는 소년. 그 소년의 순수한 마음에 피오나는 판사라는 자신의 처지를 잠시 잊은 채 소년의 기타반주에 맞춰 예이츠의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라는 노래를 부른다. '다가올 삶과 사랑을 생각해 보라'며 조금만 더 있으라며 만류하는 소년을 두고 병실을 떠나온 피오나는 그 소년의 남겨진 사랑과 삶을 염두에 두며 수혈을 하도록 판결을 내린다. 

영화 <칠드런 액트> 스틸 이미지

샴쌍둥이의 판례처럼 '생명존중의 원칙'에서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며 내린 판결. 하지만 피오나가 내린 판결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맞이한다. 18세가 된 이후의, 무한하게 펼쳐진 미래를 향해 뻗어 나가라 내린 결정. 하지만 소년이 맞닥뜨린 건 자신이 맹종했듯, 종교적 결정에 순종했던 부모가 정작 소년의 수혈을 하는 순간 보여준 찰나의 '반색'이었다. 자신이 더 이상 죽지 않는다고 했을 때 행복해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인해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소년은, 반대급부로 자신에게 생명을 준 피오나에게 집착하며 심지어 그녀와 함께 살겠다며 그녀의 뒤를 쫓는다. 

최선의 결정 이후 남겨진 반전의 결말 

17살 9개월의 티 없는 아름다움에 순간 매료되었던 피오나는 그가 자신에게 보내온 시를 읽고, 그가 남긴 전화 메시지를 들으며 미소 짓지만 판사로서 재판의 당사자였던 소년의 접근을 완고하게 거부한다. 그녀의 이동 재판을 따라 비를 맞으며 찾아온 소년이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운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온정이었다. 자신의 일에 헌신적이며 원칙적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으며. 

하지만, 그 '최선'의 선택은 생각지도 못한 결론에 이른다. 그녀의 크리스마스 연주회가 있던 날 그녀에게 도달한 전언은 충격적이다. 동료 변호사의 반주를 하다말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애덤과 함께 불렀던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을 흘리네'를 부르고는 달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렇다면 피오나는 다른 선택을 해야 했을까? 샴쌍둥이가 그냥 그대로 있다가 둘 다 목숨을 잃게 놔두고, 소년 역시 종교적 교리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도록 해야 했을까? 피오나의 결정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고 작가 이언 매큐언은 그런 제도와 법으로 다 책임질 수 없는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딜레마에 대해 고민을 해보자고 한다. 

영화 <칠드런 액트> 스틸 이미지

영화 속 피오나 부부, 아내에게 바람을 피운다며 집을 나가 버린 사람은 남편이다. 다시 돌아온 남편에게 피오나는 분노한다. 그러자 남편은 “나는 잠시 결혼을 방기했지만, 당신은?”이라며 반문한다. 어떻게든 부부로서 화목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남편과 달리 피오나에게는 일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일이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니 그녀로서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객관을 넘어, 인간적으로 번민해야 할 지점에 작품은 시선을 둔다. 

한없이 싱그러운 미래가 열려있을 것 같은 애덤, 피오나는 남편 앞에서 '그저 멋진 소년이라구요' 절규하듯 매혹되었다. 하지만 판사로서의 도덕적 규범이 우선하는 피오나는 자신의 직분 이상을 넘어서지 않았다. 그녀는 비난받을 그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런 그녀의 결정 앞에 그가 믿었던 모든 것이 흔들려버린 소년 애덤은 그녀에게 새로운 기대를 걸었지만 좌절하고 만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오늘날 우리가 만능처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법과 제도의 규범 속에 담을 수 없는, 이면의 변수들에 대한 '헤아림'과 '관용'이다. 그건 곧 단호한 지성에 대한 반추이다. 그리고 그런 행간에 대한 반추는 오늘날 '옳음'의 이름으로 서로 선을 긋고 그 선 안에서 돌아보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여지를 내민다. 어리석어서 눈물을 흘리기 전에 돌아보는 시간, 바로 <칠드런 액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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