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북은 이후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갈래로 갈리는 것 같다. 첫째는 중국이 새롭게 이해당사자의 하나로 등장하면서 협상 구도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럼에도 미국과의 타협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북한과 중국이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안을 내는 데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등장을 경계하는 목소리의 선두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다. 정세현 전 장관은 20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노동신문 기고문을 언급하며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중국이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하며 4자 프로세스로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또, 정세현 전 장관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재개 필요성을 언급하며 통일부 등 당국의 안이한 대응을 꼬집기도 했다.

중국은 그동안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 자체에 드러내 놓고 개입하는 것은 피해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 또는 남북정상회담 등을 전후로 중국을 방문한 사례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비핵화 협상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이고 남한이 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게 기본적인 구도였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의 기고문을 보면 “의사소통과 대화, 조율과 협조를 강화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 나갈 것”, “조선반도 문제와 관련한 대화와 협상에서 진전이 이룩되도록 공동으로 추동하겠다”는 등의 표현이 드러나 있다. 또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중국은 조선이 자신의 합리적 안보 및 발전에 관한 관심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이 닿는 한 도움을 주겠다”고도 했다.

시진핑 주석의 이런 입장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비핵화와 맞바꾸길 바라는 체제 보장과 관련해 중국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세현 전 장관이 3자구도에서 4자구도로의 변화를 말하며 경계심을 드러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미 간 협상 구도에 중국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한반도 비핵화는 본격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구도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미국의 태도가 명분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미중무역협상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외교안보적 쟁점으로까지 문제를 확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기로 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드는 모습을 보인 게 대표적이다. 최근 홍콩 시민들의 투쟁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사실상 지지 입장을 표명하는 일 역시 있었다.

중국 입장에선 공산당 통치 체제에 반기를 드는 일련의 흐름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때문에 중국 역시 북한 문제에 개입함으로써 미중무역협상의 맥락 외의 문제에까지 미국과의 갈등 구도를 확장한 것이다.

물론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미국이 납득할 수 있는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 낼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이달 28일에서 29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무역협상과 관련한 의미있는 타결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의 입장 변화를 이 자리에서 일종의 ‘지렛대’로 쓰려고 할 것이고 이런 판단으로 북한에 영변 이외의 핵 시설에 대한 사찰 필요성 등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평양에서 열린 북중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CCTV/연합뉴스)

만일 중국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다면 이는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런 가능성이 없다고만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미국이 준비된 상태냐는 것이다. 외신과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 대립으로 날이 갈수록 혼란을 더하고 있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유연한 접근’ 등을 언급하며 대화 재개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비해 미 재무부는 대북제재의 연장선상에서 러시아 기업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는 등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선언하며 본격적으로 선거 모드로 들어갔다는 점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18일 플로리다 오랜도에서의 출정식에서 시진핑 주석을 치켜세우면서도 중국이 미국을 ‘호구(sucker)’로 봐왔다는 발언을 해 지지층의 반중감정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판국이라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중국과의 대립구도를 키워가는 것과 어떤 방식으로든 협상 타결을 모색하는 것 중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선택지가 무엇인지 판단하려 할 수밖에 없다. 그 판단이 G20 정상회의 이전에 결론이 내려질지는 의문이다.

만일 미중무역협상이 G20 정상회의까지 만족할만한 결론에 이르지 못할 경우 중국은 북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려 할까? 아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음에도 선심성으로 미국에 북핵 문제 해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긴 쉽지 않다. 미중무역협상은 일회적인 사안이 아니라 글로벌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이라는 구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필연적으로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는 시각도 있다.

남북미 3자구도를 전제한 우리 정부의 ‘중재자론’에서 나머지 주변국들은 북미대화에서 성과가 난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참여하는 것으로 돼있었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이후 ‘중재자론’이 힘을 잃은 지금은 중국 뿐 아니라 일본도 비핵화 협상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거듭하는 중이다.

남한으로서는 ‘중재자’의 위치를 다시 되찾거나 다자협상구도를 대비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전자는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어 이루기 쉽지 않다. 후자의 경우 앞서 서술한 미중을 중심으로 한 패권 대결 구도와 이와 연계된 주변국들의 움직임 때문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판을 짜는 것이 쉽지 않다.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4월 미국 방문이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미국을 움직이는 전략에 흥미를 잃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때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재개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장관이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라며 독자적으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하고 미국과는 이후에 협의하라는 주장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 해석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총선 이전에 남북관계에서 의미있는 성과가 나오길 바라는 것 같다. 가시적인 변화가 있다면 다음 총선은 지난 지방선거와 같은 일방적 구도로 치러질 수 있다는 분석이 여의도 주변에서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북핵 문제에 있어서의 성과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극적인 상황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히 선거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는 여기에 목을 매는 것보다는 국민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집중할 때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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