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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의 공백- ‘그 사람’의 장례식, 13년 만에야 아버지가 돌아왔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6.16 13:12

<평일 오후 3시의 연인>, <우리 가족: 라멘샵>의 배우 사이토 타쿠미가 감독이 되어 찾아왔다. 7월 4일 개봉 예정인 <13년의 공백>이다. 첫 작품이이라지만 이미 2017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대상, 20회 상하이 국제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3회 시드니 인디 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연출력과 감독성을 인정받았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이 영화로 2017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마츠타 코지를 비롯,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으로 알려진 <어느 가족>의 릴리 프랭키 등 최근 일본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청춘스타와 연기파 배우의 협연과, 배우로 출연한 사이토 타쿠미, 칸노 미스즈, 마츠오카 마유 등의 연기도 관전 포인트이다. 

'그 사람'이 되어버린 아버지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 이미지

어쩌면 이야기의 시작은 우리가 어디선가 보거나 들었던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마츠다 마사토 씨, 가끔 아들과 캐치볼도 해주는 평범한 아버지인 듯하지만 사실은 무능력한 가장이다. 학교에서 상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도박장을 돌아야 하는, 하지만 그 도박으로 생긴 빚을 갚지 못해 집으로 조폭들이 찾아와 가족들이 맘 편하게 밥 한끼 먹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아버지이다. 

카레 냄새를 숨기지 못해 빚쟁이들의 조롱을 받던 어느 저녁, 담뱃값을 놔두고 아버지는 담배를 사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13년, 아버지가 있어도 가난했던 가정의 형편이야 말해 무엇하랴. 아버지 대신 가장의 짐을 떠안은 어머니는 밤낮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빈자리는 남겨진 아이들의 몫이었다, 다친 어머니가 못한 일을 해야 했던 형제들. 책상 앞에만 매달리던 형의 눈빛은 한층 매서워졌고, 아버지가 있을 때도 물려받아 허름하고 어깨가 다 나올 정도였던 동생의 티셔츠는 더 낡은 채 더 마른 동생의 몸에 걸쳐져 있다. 

그렇게 코지와 요시유키 형제와 어머니는 13년의 세월을 견뎠다. 아버지는 '그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13년 만에 찾아온 아버지, 아니 아버지의 소식. 13년이 무거웠던 모자는 그 누구도 '그 사람'을 찾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싫습니다, 그런데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 이미지

마츠다 가족의 비극사를 담담하게, 하지만 그래서 비극의 여운이 울렸던 1부. 하지만 영화는 오프닝을 열었던 마츠다의 장례식장 상황의 블랙코미디를 통해 '반전'을 꾀한다. 똑같은 '마츠다' 씨의 장례식장이라지만 조문객이나 친지들의 구성만으로도 극과 극으로 대비되는 모습, 거기서 살아생전이나 죽어서도 '초라하고 볼품없는' 그 사람 마츠다가 단적으로 보여진다. 

승려의 독경 등 장례 절차가 끝나고 통과의례로 시작된 조문객들의 조문사. 본의 아니게 몇 되지 않은 조문객으로 인해 요상한 면면의 조문객들이 '그 사람'과 어떤 사연으로 엮이게 되었는가가 드러난다. 

'웃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블랙코미디의 전형처럼 도박장의 동료, 직원, 경마 친구, 오갈 데 없어 함께 살게 된 동거인, 병실 이웃 등에게서 때론 구차하고 종종 어이없는, 심지어 막무가내인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일본 영화 특유의 '코믹'한 해프닝으로 이어지며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두 아들 코지와 요시유키의 표정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집을 나간 아버지가 다르게 살지도 않았다.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서도 여전히 마작을 하고, 경마를 하며 살던 대로 살던 아버지. 하지만 여전히 무능력하고 세상 쓸모없어 보이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그의 친구인지 모를 조문객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마지막 가족 대표로 답사를 하게 된 코지, '아버지가 너무나 싫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이고 만다.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 이미지

장례식은 그 자체로 영화의 좋은 소재다. '장례식' 자체가 영화가 된 영화로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1996), 그리고 같은 해 임권택 감독의 <축제> 등이 있다. 일본 영화의 고전으로 치는 아타미 주조 감독의 <장례식(1984)>도 빼놓을 수 없다. 장례식은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을 보내는 의식이다. 그리고 그 의식은 각 나라와 지역의 풍습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승과 이별을 하는 통과의례지만, 동시에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의 과정이다. 

임권택 감독은 <축제>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를 통해 가족 간 악연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같은 가족이라지만 처지가 달랐던 삼촌과 조카가 할머니의 장례라는 공간을 통해 해후하고, 장례 과정의 해프닝을 통해 저 밑에 숨겨두었던 앙금들이 드러나고 한판 굿처럼 풀어지며 결국 엔딩의 사진 한 장처럼 웃으며 화해하는 '해피엔딩', 

죽은 자가 펼쳐놓은 마당에서 펼쳐진 산 자의 묵은 해원의 굿풀이라는 점에서 <축제>의 그것과 <13년의 공백>은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화장이라도 다른 장례 풍습처럼 그 해원의 ‘뉘앙스’가 다르다. 

자신들을 버리고 간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자식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이를 유괴해 죽인 범인을 어렵사리 용서하고 찾아간 신애(전도연 분)는 그만 그 범인이 이미 신께 귀의하여 용서를 받았다는 말에 분노를 폭발하고 만다. 신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원한. 그걸 용서할 수 있는 건 역시나 '사람의 몫'이고, 그럴 수 있는 건 결국 '용서받을 자'에 달려있다.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 이미지

자신들을, 어머니를 그토록 고생시킨 아버지. '그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아버지.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아버지가 필요했던 아들들. 그들이 13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수용'할 수 있게 만든 건, 그럼에도 '아버지'였던 아버지의 삶이다. 죽은 뒤에서야, 13년이 흘러서야 알게 된 아버지.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없었지만, 그들을 버렸지만 버리지 않았던 '아버지'로 인해 코지와 요시유키는 자신들의 미움이 사실은 그리움이었음을 13년 만에야 '시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뒤늦게 아내에게 도착한 통지서 한 장은 그녀를 고통 속에 밀어 넣었던 13년을 용서하는 계기가 된다. 

근현대사의 가족사 혹은 개인사의 많은 문제들은 아픔의 왜곡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아픔을 바로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고통의 시간, 그 '트라우마'는 어느새 왜곡되어 어깃장을 넘어 또 다른 질곡의 시작이 된다. 

아버지가 싫어 돈을 벌기 위해 대기업에 들어간 아들. 아버지가 집을 떠나 아니 사실은 아버지가 있어도 야구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싶지만, 야구선수는커녕 자기 몸에 맞는 티셔츠도 입고 자라지 못한 아들. 그들은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아버지의 상실'에 상처받은 아이의 그 상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장례식을 통해 비로소 그들은 아버지를 마주하고, 미움으로만 독해했던 그리움을 시인하고, 아버지를 상실했던 유년의 정체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장례식에 차마 가지 못한 아내 역시 비로소 미움에 봉인해둔 남편을 바라볼 여유를 가진다. 

아버지로 인해 그들을 속박했던 '카르마'로부터 놓여나는 시간이 된 장례식. 아버지가 부재했던 13년의 시간은 아버지의 상실이지만, 동시에 코지와 요시유키가 잃었던 시간이다. 실제 있었던 사연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전혀 다른 구성으로 '실화'의 메시지를 자신만의 색채로 표현해낸 사이토 타쿠미 감독에게 왜 '연출'상이 수여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 특히 2부,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도 같았던 장례식을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을 변주하여 가족의 해원을 여운 있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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